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인권단체들이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주민들을 “집단 처벌”하는 방식으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해 1400여 명을 살해하고 200여 명을 인질로 납치했다.
이후 줄곧 가자 지구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지킬 권리가 있다면서 끝까지 하마스를 파괴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엔(UN)과 인권단체들은 하마스의 행동을 비난하는 한편, 이스라엘에도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 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현재까지 사망한 이들은 1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가자 지구가 “어린이들의 무덤”이 돼가고 있다며 우려했다.
‘국제 인도법’이란?
UN은 그 어떠한 분쟁 상황에도 민간인 보호가 최우선시돼야 하며, 어떤 당사자도 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국제 인도법(IHL)’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영국 에식스대학의 로스쿨 및 ‘인권 센터’의 타라 반 호 부교수는 “한쪽이 법을 어겼다고 해서 다른 한쪽의 위반을 정당화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부, 하마스 간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해서 특정 당사국이 지켜야 할 의무가 바뀌는 건 아닙니다.”
‘제네바 협약’이란?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에선 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UN 설립뿐만 아니라 무력 충돌 시 야기되는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법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1949년 ‘제네바 협약’이 체결됐는데, 주요 원칙 4가지는 다음과 같다:
- 교전 지역의 의료진과 병원은 보호받아야 하며, 자유롭게 일하거나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이들은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 전쟁 포로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
- 전쟁 당사자들은 민간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전력 및 상하수도와 같은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 금지 등을 포함한다)
‘제노사이드’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는 용어는 홀로코스트로 가족 대부분을 잃은 폴란드계 유대인 변호사 라파엘 렘킨이 만든 용어로, 1948년 UN은 ‘제노사이드 협약(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제노사이드’란 무엇일까. 반 호 교수는 “제노사이드는 단순히 개인이나 군 혹은 무장 단체 소속원들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라, 집단의 정체성 때문에 그 집단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구체적인 말살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줘야 하기에 제노사이드는 국제 범죄 중에서도 입증하기 가장 어렵습니다.”
제노사이드에는 살인, 강제 낙태 혹은 불임 수술, 어린이 강제 이송 등도 포함된다.
르완다의 후투족 출신 장-폴 아카예수는 1994년 르완다 사태 당시 투치족 대량 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돼 1998년 UN이 지원한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로 넘겨졌으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제재판소가 제노사이드 혐의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내린 최초의 사례였다.
그 외 UN이 지원한 국제재판소에서 제노사이드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는 1970년대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가 참족과 베트남인을 학살한 사건, 1995년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이슬람교도 남성과 소년 8000명이 학살된 사건이 있다.
‘반인도적 범죄’란?
‘반인도적 범죄’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로, 제노사이드와 달리 특정 민족이나 인종 집단이 강조되지 않는다. 여기엔 살인, 강제 이주, 노예화, 강간, 고문, 강제 실종, 기타 비인도적 행위가 포함된다.
반 호 교수는 “(반인도적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첫째, 실제로 민간인을 직접 겨냥한 공격과 민간인의 피해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분쟁에 참여하고 있는 누군가 혹은 그 성격상 혹은 군사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대상에 대한 공격을 구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 공격하는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격이 광범위하거나 조직적으로 이뤄지며, 가담자들이 자신들도 이 공격의 일부임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범죄’란?
전쟁범죄가 이뤄지려면 국제 또는 국내 무력 충돌이 발생해야 한다.
반 호 교수는 “다양한 조약에서 전쟁범죄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지만, 공통으로 말하는 요소는 전쟁범죄란 보호받아야 할 이들을 불필요하게 해치거나, 인도주의적 단체들의 활동 전개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쟁범죄는 어떻게 기소되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UN의 기구로, 국가가 다른 국가를 ICJ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ICJ는 현재 지난 2017년 미얀마가 군부의 탄압 속 거의 100만 명이 강제로 이주해야만 했던 로힝야족을 상대로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는지를 조사 중이다.
2019년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인 감비아가 제소했다.
한편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쟁범죄나 제노사이드 등을 저지른 개인을 재판하고자 지난 2002년 설립된 기구다. 국가 당국이 기소할 수 없거나 기소하지 않을 때만 개입하기에 최후의 수단과도 같은 성격이 강한 법원이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은 ICC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2015년 ICC에 가입했다.
최근 이집트를 방문했으나, 가자 지구엔 들어가지 못한 카림 칸 ICC 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라엘군에 경고 메시지를 남겼다.
“무고한 민간인이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 영향을 미치는 공격은 전쟁법 및 관습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주택, 학교, 병원, 종교 건물은 보호 상태를 상실하지 않는 한 보호돼야 합니다.”
“(이러한 대상의) 보호 상태가 상실됐음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총기, 미사일, 로켓포를 발사한 측에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는 ICC에 협력하지 않고 있으나, 하마스로부터 공격당한 이스라엘인 피해자들은 ICC에 조사 착수를 호소하고 나섰다.
국제 형사 변호사이자 텔아비브 외곽 소재 라이히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야엘 비아스 그비르스만은 하마스에 의해 살해되거나, 인질로 잡혀갔거나, 실종된 피해자 40여 명의 가족을 대변하고 있다.
그비르스만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이슬람지하드(PIJ)’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그비르스만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ICC가 모든 이들을 위해 이들이 지닌 권한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피해자들은 진실과 정의의 날을 실현할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반 호 교수는 책임 소재 추구가 “가망이 없는” 건 절대 아니라면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권력 역학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가 특정 국가 혹은 무장단체가 (사건에) 필요한 정보 중 일부를 갖고 있다는 점이 ICC엔 중대한 장애물”이라는 반 호 교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은 작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반 호 교수는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제일 먼저 보호하고자 나서면서 책임 소재를 묻고 정의를 실현하기까지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러한 선택에 대한 대가는 민간인들이 치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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