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또 한 번 법정에 섰다. 은행 대출 등을 위해 자산가치를 조작했다는 사기 혐의다. 그런데 법정에서도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이날 뉴욕주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트럼프는 과거 부동산 사업가, 정치인이었던 모습 그대로 증언을 이어 나갔다. 규칙은 무시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건너뛰고, 허풍을 떨며 자랑거리를 늘어놨다.
이렇듯 공격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형사사건 4건 관련 재판에서 트럼프가 피고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이 던진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길 거부하면서 이 재판을 맡은 아서 엔고론 판사의 화를 계속해서 돋궜다.
회계 관련 서류와 날짜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로 답하는 질문에는 자신이 지닌 재산의 엄청난 가치를 자랑하고, 판사와 검사의 당파적 성향을 비판하는 장광설로 답변했다.
재판 도중 “매우 불공평한 재판이다 … 대중이 이를 지켜보고 있길 바란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카메라의 법정 내부 출입이 불가능한 까닭에 그날 기자 수십 명이 그의 증언을 외부에 전달하고자 법정에 모였다.
이를 인식한 듯 트럼프는 평소 SNS나 유세 연설에서 지지층의 분노를 북돋우고자 늘어놓곤 했던 비슷한 논리와 단어로 자신을 열심히 방어했다.
심지어 그날 오후 휴정 시간,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 계정엔 엔고론 판사를 비난하는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어떤 질문엔 검찰총장과 다른 검사들이 “사방팔방에서 나를 뒤쫓고 있다”고 답하기도 한 트럼프는 “모든 민주당원,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모두 좋지 않은 케이스”라면서 “(사법) 무기화. 이들은 (사법 체계를) 무기화한다”고 비난했다.
이렇듯 그의 답변은 가끔은 잘난체하는 듯한 내용이다가도 단순히 그저 이상할 때도 있었다.
일례로 법무장관실 측 케빈 월러스 변호사가 그의 브랜드 가치를 묻자 트럼프는 “나는 내 브랜드 덕에 대통령이 됐다”며 자랑을 늘어놨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신의 골프장에 대한 질문에는 “나는 풍력발전소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갑자기 풍력발전소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트럼프 소유 골프장 앞바다엔 풍력발전소가 설치돼 있다.
오전 내내 이렇듯 얼버무리거나 당파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이에 재판 도중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 측 변호인단에게 “고객을 통제할 수 있느냐”며 “이건 정치적 집회가 아니”라며 일갈했다.
이 외에도 엔고론 판사는 오전 내내 판사석에서 여러 차례 트럼프와 그 변호인단을 중간중간 질책했다.
보통 법정에 선 증인들은 이렇듯 길게 말을 늘어놓기는커녕 이런 식으로도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일반적인 피고가 아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한 엔고론 판사의 질책이 계속 이어지자 트럼프 측 변호인 크리스 키세 또한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고객의 행동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는 특수한 위치와 상황인 만큼 이러한 발언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엔고론 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를 다른 피고처럼 대하기로 결심한 듯했다.
오후 휴정 이후 트럼프는 눈에 띄게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제임스 법무장관에 대해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순간이 있긴 했지만(제임스 법무장관은 이를 그저 무시해버렸다), 오전 대비 짧은 답변을 고수했다.
법무장관 측은 트럼프와 그의 최측근, 그의 회사들이 은행 대출을 용이하게 하고자 재무제표상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혹에 맞서 한때 미국의 45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트럼프는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자랑할 기회를 잡고자 애썼다. 약 10년 전 정치계에 들어설 때 큰 재미를 봤던 방식이다.
이러한 자랑과 분노 표출 중간중간 트럼프는 자신의 자산은 서류상 적힌 숫자보다 훨씬 더 가치 있으며, 자신이 사취한 것으로 알려진 은행 대출들은 전액 상환됐다면서 자신을 방어하고자 했다.
일례로 플로리다주 소재 ‘마라라고’ 별장은 대차대조표에 기재된 숫자보다 “매우 더 큰 숫자”의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했으며, 뉴욕주 맨해튼 5번가 소재 ‘트럼프 타워’는 “뉴욕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한편 트럼프는 이전에도 증인석에 선 적 있다. 사실 이번 재판 초반에도 그의 특정 발언이 법원 직원을 겨냥한 말이라고 판단한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를 증인석에 세웠다.
트럼프는 전 대통령이자, 현 공화당 경선 후보 중 선두 주자이자,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형사재판 4건(이번 건은 민사재판이다)의 피고인으로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재판은 내년에 미국 대선과 맞물려 하나씩 진행될 것이다.
이렇듯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는 트럼프는 점차 발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기성 정치인들로부터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쟁취했던 지난 2016년 당시 거리 싸움꾼의 모습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검찰의 이름도 직접 거론하며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한편 법원 직원들 또한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지난 10월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가 판사 오른쪽에 앉아있던 법원 직원을 비방하는 듯한 주장을 펼치자 법원 비방을 금지한 공표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지금까지 엔고론 판사는 트럼프에게 벌금 1만5000달러(약 1900만원)를 부과했고, 해당 법원 직원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한 트럼프의 변호인에도 공표금지령을 내렸다.
한편 트럼프는 이번 6일 재판에선 중간중간 심지어 판사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이 판사는 항상 내게 불리한 판결을 하기에 (이번에도) 내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에 엔고론 판사는 “당신은 나를 공격할 수 있고,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질문에 대답하라”고 맞받아쳤다.
추가 보도: 매들린 할퍼트, 클로이 킴
Copyright ⓒ BBC News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