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데뷔 이래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들을 선보였던 정지영 감독이 실화극 ‘소년들’로 뚝심 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소년들’은 ‘삼례나라슈퍼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소년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내재돼 있는 약자를 향한 시선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 제기로 강력한 울림과 진한 여운을 선사한다.
지난달 31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한류타임스와 만난 정지영 감독은 개봉을 하루 앞두고 성적에 대한 긴장감보다는 영화 홍보에 한창이었다. 그는 “원래 개봉 앞두고 긴장을 안 한다. 내 긴장 여부와 흥행은 관계가 없으니 열심히 영화 홍보를 하면 된다”며 다른 감독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지영 감독은 40년 동안 영화를 만들어오면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와 오랜 시간 한결같이 지내올 수 있는 원동력을 물어봤다.
“특별한 원동력은 없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 그렇다고 너무 힘을 줘도 안 된다. ‘이 작품 꼭 해야 돼’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임한다. 사회 드라마는 운명 같다. ‘너는 이걸 해라’ 운명이 쥐어진 것 같다. 다른 장르의 작품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선택이 잘 안 됐다. 사회 드라마를 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남들이 안 하니까 하는 거다. 분명히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고, 그걸 내가 하니까 차별화가 돼 버린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소년들’로 교훈을 주기보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시선을 영화를 통해 재점검할 수 있는 일종의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우리가 이웃을 보며 살고 있는데,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지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과 경쟁은 당연한 것이고, 돈 많고 똑똑하고 머리 좋으면 경쟁에서 우선순위에 다가갈 수 있다 보니 못 배우면 뒤처지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소년들’에서 세 소년은 못 배웠기에 사람들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우리들이 시선을 재점검해봤으면 하는 의도가 있었다. 관객들과 한 번 토론하고 싶었다”
정지영 감독은 본인 스스로 예술영화 감독이 아닌 대중영화 감독으로 칭했다. 그의 작품에서 ‘대중’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그는 자신을 대중영화 감독으로 분류했다.
“나는 대중을 상대로 영화를 만든다. 예술가는 누구를 상대로 만드는 게 아니다 보니 난해하거나 평론가가 개입하게 된다. 그러다 성공하면 칭찬을 받는 거다. 나는 일부 지식인과 영화광들에게만 사랑받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다. 많은 관객이 함께 보고 떠들고 토론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적 자세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대중영화 마인드로 영화를 만든다. 감독으로서 기술을 발휘하는 이유는 관객과 소통을 쉽고 재미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대중영화 감독이라 하는 것이다”
대중영화를 만들고 싶은 정지영 감독의 바람에 배우 설경구, 유준상, 진경, 염혜란, 허성태 등이 출연에 흔쾌히 응했다. 여기에 조진웅, 박원상 등이 특별 출연으로 정지영 감독과 의리를 과시했다.
“운이 좋았다. 황 반장 캐릭터는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캐릭터를 가져왔는데, ‘강철중’이 떠올랐다. 강철중이 나이를 먹으면 황 반장처럼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같은 캐릭터로 무모한 모습부터 좌절한 모습까지 해본다는 점이 설경구를 움직이는 데 중요했을 것 같다. 연기자로서 욕심낼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배우들도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이었는데 흔쾌히 하겠다 해서 고마웠다”
그동안 정지영 감독의 작품들이 드라이한 면이 있다면, ‘소년들’은 한결 정서적인 면이 많이 작용한다. 정지영 감독은 그 공을 ‘남영동1985’ 조감독이자 시나리오를 같이 썼던 정상협 작가에게 돌렸다. 정상협 작가는 정지영 감독의 조카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소년들’은 드라이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감정이 많이 풍긴다고 한다. 정상협 작가의 영향력이다. 정상협 작가는 나와 반대되는 사람이다. 정상협 작가가 얼마 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봤다면서 ‘감독님이 원래 감성적인 사람인데, 메마르게 왔었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더라. 이러한 부분은 정지영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지영 감독에게 ‘사회파 감독’이라는 호칭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물었다. 그는 “원래 옛날 사건을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인데, 40주년 회고전을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왜 사회파 감독으로 불렸지?’라고 점검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사회파 감독’이라 불릴 만하다. 한 가지 섭섭한 건, 자유롭게 작품을 하고 싶은데 ‘‘사회파 감독’이라는 걸 꼭 지켜야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정지영 감독은 ‘소년들’을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 어느 지점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영화”라고 소개하며 많은 이들의 관람을 부탁했다.
한편, ‘소년들’은 현재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사진=CJ ENM
조정원 기자 jjw1@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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