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에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숲에서 지내는 유치원이 있다. '야외 학습은 아이들의 건강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어떤 식으로 깨우쳐 주는지'를 에리카 벤케가 살펴봤다.
"이제는 아침이 수월해 졌어요. 제가 '이제 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면 카우코가 '그래, 가자'며 가방을 메고 따라 나서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있는 호피아락소 유치원 숲 교실에 최근 네 살 아들 카우코를 보내기 시작한 유호 피에타릴라가 말했다.
피에타릴라는 이것이 커다란 변화라고 말했다. 유치원을 옮기기 전까지 카우코는 자주 짜증을 내던 아이었기 때문이다.
카우코는 현재 유치원에서 '사무야트' 반에 속해 있다. 사무야트란 옛 핀란드어로 숲에서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을 뜻한다.
카우코가 유치원에 가면 거의 모든 시간을 실외에서 보낸다. 하루 종일 숲에서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에타릴라는 "아이들이 겨울에도 야외로 나가 자연을 탐험한다"고 말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어요. 제 아들은 '사무야트에겐 항상 좋은 날씨'라고 말하죠."
겨울이면 낮 평균 기온이 영하 2도에 머물고 최소 두 달 정도는 눈이 계속되는 헬싱키에 사는 4살 아이다운 말이다.
3~5세 어린이 21명으로 구성된 사무야트 반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 아침마다 최대 40분씩 숲속을 질러 베이스캠프로 찾아 간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7시간 동안 야외 활동을 한다. 개방된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텐트에서 낮잠을 자다 오후가 되면 유치원으로 돌아간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숲 학교와 유치원은 최근 전 세계로 확산중이다. 아이들과 자연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야외 학습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은 아이들이 자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 비만 감소, 정신 건강 개선, 회복력 증가, 빠른 인지 발달 등 여러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연에 대해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줘, 환경 관점에서 생각하는 행동도 키워줄 수 있다고 한다.
야외 학습을 하는 어린이의 인지 발달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지역 공간에 대한 책임감이다. 헬싱키 대학 유아교육학 교수인 애니나 쿠시스토는 "야외에서 학습한 아이들은 쓰레기 줍기와 재활용이 왜 중요한지를 훨씬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습 공간이 어디인가는) 미세한 차이지만 환경에 대한 존중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므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렇게 배운 아이들은 훗날 자연을 보호하고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기 위해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땅이 얼어붙는 11월부터 3월까지 사무야트 반 아이들은 인근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다. 그런 계절에도 아이들은 영하의 추운 날씨에서 5~6시간씩 야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하루는 잘 짜여진 루틴에 따라 흘러가는데, 숲과 해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자유 놀이 시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이들은 나뭇가지로 다리를 만들고, 열매를 따고, 나무에 오르고, 바다 생물을 관찰한다. 아이들 주변은 눈에 잘 띄게 주황색 야광 조끼를 입은 세 명의 교사들이 항상 지키고 있다.
아이들은 목요일에는 헬싱키 내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금요일은 일주일 중 아이들이 유일하게 유치원에서 지내는 '둥지의 날'이다.
"(둥지의 날에도) 아이들은 시간 대부분을 마당에 나가서 지내요. 둥지의 날이 필요한 이유는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죠" 이 반을 맡고 있는 보육 교사, 사무리 라비노비치가 웃으며 말했다.
숲에 있는 토양은 다양한 생물종과 미생물이 다른 환경보다 훨씬 풍부하다. 건강에 유익한 박테리아를 접하는 것은 숲에서 하루 종일 뛰어노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도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핀란드에서 나온 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집 4곳에서 3~5세 아이들을 마당에 있는 헤더(낮은 산·황야 지대에 나는 야생화. 보라색·분홍색·흰색의 꽃이 핌)와 블루베리 나무 같은 풀숲에서 놀게 했더니 28일 만에 면역력이 향상됐다.
연구진은 풀이 우거진 야외에서 자주 놀던 아이들의 피부와 장에서 미생물 다양성이 올라가고, 면역 체계가 더 건강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면역 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T 세포의 수도 더 많아졌으며, 혈장 내 항염증 분자의 비율도 증가했다.
이 연구를 주도한 핀란드 천연자원연구소의 과학자 아키 싱코넨은 이러한 결과가 자연과의 접촉이 자가면역질환이나 알레르기 같은 면역계 질환을 예방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과학계의 연구 결과는 라비노비치가 현장에서 확인한 경험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우리 반 아이들은 항상 입가에 먼지가 묻어 있다"며 "감염 회복력이 더 좋고 감기에도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숲속 반에선 5세 어린이들이 돌아가며 반장 역할을 맡는다. 반장은 베이스캠프를 오가는 경로를 정한다. 내가 찾아간 날에 반장을 맡은 로냐는 바위가 많은 지형에서도 자신감 있게 아이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엔 혹시 빠진 아이는 없는 아이들의 숫자를 확인한 뒤, 노래와 율동 세션을 진행했다.
로냐는 다른 아이들에게 날짜와 일출, 일몰, 날씨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반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열심히 손을 들고 대답 기회를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 풍경에선 연구자들이 말하는 야외 학습의 주요한 심리적 이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학계에선 야외 학습이 행동 개선과 사회적 기술, 자제력, 회복력과 자기주장력 등을 강화시켜 준다고 말한다.
라비노비치는 "이렇게 배운 아이들은 뭐든지 할 수 있고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며 "서로 도우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피곤해도 스스로를 밀어붙인다"고 했다.
라비노비치는 겨울철 야외 교육도 여름철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겐 겨울철 야외가 춥지 않겠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쁜 날씨란 없고 나쁜 옷만 있을 뿐이죠." '추운 날씨에 밖에서 지내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는 외국인들의 질문에 핀란드인은 으레 이렇게 답한다.
호피아락소 유치원은 모든 아이들이 날씨에 상관없이 하루 2시간 이상은 야외에서 보낸다고 말했다. 하루 2시간 이상은 핀란드 보육 시설의 표준이다.
야외로 나가는 아이들은 여러 겹의 보온 의류와 따뜻한 재킷, 방수 코트, 방한복 등 꼼꼼하게 날씨에 대비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다.
카우코의 아버지 피에타릴라는 "이 정도 수준의 장비는 이곳 기후에서는 표준"이라며 "아들이 이 유치원에 다녀서 사는 게 아니라 이곳 주민은 다 기본적으로 갖추는 옷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사무야트 반은 헬싱키의 겨울, 영하의 날씨에 강풍이 불고 젖은 눈이 흩날리는 상황에서 최대 6시간까지 보온을 유지해야 한다. 아이들이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따뜻한 옷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라비노비치는 계속 움직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눈싸움도 하고 스키, 스케이트, 썰매도 타죠.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물론 아이들의 보온 장비도 항상 점검하고요."
어린이는 성인보다 추위에 더 취약한 만큼,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는 체온 조절에 큰 영향을 미치는 피부가 체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성인보다 크다.
노르웨이 북극대학 커뮤니티 의학과 교수인 티나 이카헤이모는 "어린이는 단열재 역할을 하는 피하지방 조직이 적고 근육량이 적기 때문에 몸의 떨림을 통한 체열 생성이 성인보다 덜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무야트 반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추위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일까? 이카헤이모는 항상 옷을 적절하게 입히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피부에 무감각과 통증 또는 창백한 반점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어린이가 동상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신호"라며 "이때는 아이들을 실내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카헤이모는 놀이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아이들이 추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발 상태를 살피지 않습니다. 그건 보호자의 몫이죠."
이카헤이모는 어린이들에겐 손과 발과 같은 사지를 보호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젖은 옷과 부츠는 즉시 교체해줘야 합니다. 충분한 영양 섭취와 따뜻한 수분 섭취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이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감기 대처 측면에서 아이가 성인보다 우월한 장점이 하나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더 활동적이라는 점이다.
이카헤이모는 "운동은 헬싱키보다 기온이 낮은 곳에서도 아이들이 체온을 잃지 않도록 몸에 열을 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소음이 적은 겨울 숲의 장점입니다. 이런 숲에선 기분이 좋아지고, 눈 속에서 게임이나 운동 등 추위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기도 쉬워집니다. 핵심은 계속 움직이는 것입니다. 운동은 몸에 열을 만들어주죠."
영국 포츠머스 대학의 인간 및 응용 생리학 교수인 마이크 팁톤은 추운 환경에 도사리는 위험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핀란드보다 이탈리아처럼 겨울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추위로 인한 부상자가 더 많이 발생합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어린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추위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에, 옷을 적절하게 입으면 안전하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체온을 유지합니다."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다룬 과학적 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 신체가 반복적으로 추위에 노출되면 적응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카헤이모는 "우리 몸은 정기적으로 찬물 수영이나 얼음 수영을 하면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추위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죠."
추위에 익숙해지도록 몸을 움직이면 체온 조절 능력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팁톤은 "인간은 '자동 온도 조절기'라 할 만큼 생물학적으로 체온 조절 기능을 발전시켜 자동차안과 집, 직장 등 모든 곳에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다"면서도 "우리 몸의 다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사용하지 않으면 이러한 기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추위 속에서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열쇠는 아이들의 행동이다.
팁톤은 사무야트와 같은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큰 차이를 낸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추운 환경으로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곳에서 모험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기 때문에 추위에 대한 회복력이 놀라울 정도로 세지는 것이죠."
그렇다면 콘크리트 정글에 사는 아이들이 야외 교육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전 세계적으로 숲 학교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세계은행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6%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에 거주한다. 모든 사람이 숲 학교를 쉽게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란다고 반드시 야외 교육의 이점을 못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도시의 생물 다양성은 숲만큼 풍부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의미가 있다.
쿠시스토는 식물을 돌보는 것이 아이들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애완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식물에 물을 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환경을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식물과 동물이 살아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죠.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아이들에게 자연과 아주 중요한 관계를 맺게 해줍니다."
쿠시스토는 기후 불안증을 앓고 있는 아주 어린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연을 존중하는 관계를 맺으면, 아이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뭔가 걱정거리가 있을 때 이를 덜어내는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장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쿠시스토는 45명의 어린이에게 일주일 동안 아이패드를 주고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을 그림이나 사진, 영상으로 남기게 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자연 환경이 최고였어요. 모든 아이들이 매일 자연을 언급했습니다."
영국에서 교사들의 야외 학습을 돕는 컨설턴트인 캐롤 머독은 학교를 벗어나 도서관이나 슈퍼마켓에 가는 것도 숲에 있는 것만큼이나 유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콘크리트 놀이터도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해 가르치기에 좋은 장소라고 했다.
머독은 최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인근의 작은 마을 스트라스헤이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해양 동물에 대해 가르치는 수업을 열었다.
그녀는 "아이들은 고래가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놀이터에 분필로 고래를 그려보고 얼마나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고래의 크기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실내에서는 의미 있는 형태로 대규모 측정을 해볼 기회가 거의 없지만, 콘크리트 놀이터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헬싱키 호피아락소 유치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얼마 전 라비노비치는 지역 학교 보건교사로부터 일부 아이들의 폐활량과 기본 운동 능력, 전반적인 체력이 평균보다 훨씬 좋다는 전화를 받았다. 보건교사는 부모에게 아이들이 어느 보육원에 다녔는지 물었고, 결국 라비노비치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이다.
라비노비치는 웃으며 "그녀는 제가 '아이들과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라비노비치는 아이들의 뛰어난 신체 조건과 정신 건강을 이야기할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사모야트 반 아이들이 가진 자연과의 끈끈한 유대감이다. "아침에 베이스캠프로 출발할 때면 아이들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리고 오후에 집에 돌아가면 놀이터에 가려고 하지 않아요. 대신 부모님에게 숲에 가자고 계속 조르죠. 숲의 아이들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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