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1931~2023)화백의 마지막 개인전이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점과 해운대점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연초 자신의 SNS를 통해 폐암 투병 소식을 전한 후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0월 14일 타계했다. 이 때문에 이번 개인전은 사실상 유작전(遺作展)이 되었고, 전시기간은 12월 3일까지로 연장되었다.
이번 개인전에는 묘법 연작 25점을 포함해 총 35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수행하듯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은 종이 대신 한지를 사용한 화면 안에 반복적인 선 긋는 행위를 통해 고도의 절제된 세계를 표현한다. 묘법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부상,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1976년 작 ‘묘법 No. 37-75-76’이 2018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00만달러(약 25억 원), 지난 5일 열린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975~1976년 작 ‘묘법 NO 37-75-76’이 2041만 홍콩달러(한화 약 35억 원)에 팔려 최고가를 경신했다.
연필 긋기 작업은 네 살 배기 둘째 아들이 모눈종이에 낙서하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1967년 첫 작품이 나왔고, 1969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생애 첫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선보였다.
도쿄전에서 박서보는 연필긋기 시리즈 작업에 ‘묘법’이라는 제명을 붙였다. 영어로는 묘법과 무관한 듯한 단어 ‘Ecriture(글쓰기)를 달았는데, 프랑스 작가 롤랑 바르트의 저서 ‘글쓰기의 0도’에서 영감 받았다고 전한다.
이번 부산 전시회에서는 세라믹 묘법 6점, 판화 작품 15점과 함께 작가의 미공개 최근작 12점이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 미디어 아트 작가인 손자 박지환이 박서보의 2010년작 ‘연보라 묘법’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초대형 비디오 작품도 눈길을 끈다.
故 박서보 화백은 한국미술의 전위적 흐름을 이끌며 단색화의 기수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던 화가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1년 경북 예천에 태어난 그의 작품은 광복 이후 탈식민지적 고민과 전후 국가 재건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단색화는 박서보 작가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영향을 받은 소수의 회화가들이 당대 화단을 둘러싼 고집스러운 사상에 대한 반발이 일부 작용한 화풍으로, 1970년대 초 한국의 얼과 철학에 대한 작가의 급진적 해석과 서구 추상화의 간접 영향으로 탄생해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단색화는 러시아의 구성주의, 그린버그의 환원주의, 유럽의 제로, 일본의 모노하 (이우환이 이끌었던 전위미술)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회화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비로소 본질적인 표현방식으로 구현된 것은 박서보의 손을 통해서였다. 일, 가족, 공동체, 국가라는 일상의 의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박서보의 실천은 물감, 기질, 손의 특이성에 바탕한 무한에 대한 명상이다.
197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84년 국민훈장 석류상, 1994년 옥관문화훈장, 1999년 자랑스러운 미술인상, 2011년 은관문화훈장, 201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9년 비영리 재단법인 기지재단을 세웠다. 생전 랑앤 파운데이션, 화이트 큐브, 베니스 비엔날레, 삼성미술관 리움, 부산 시립미술관, 리버풀 테이트 갤러리,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등에서 전시했다.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홍콩 M+ 미술관, 아부다비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도쿄 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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