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수만명의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임박한 가운데 중동의 시아파 맹주로 하마스를 지원해온 이란은 지상군 투입 시 통제 불능 상황이 될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이·팔 전쟁이 확전 조짐을 보이자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도 이스라엘을 향해 "자제" "경고" 메시지를 내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15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BBC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변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며 지상 침공을 준비 중이다.
현재까지 이스라엘군은 약 36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했다. 이는 전체 인구의 4%에 해당하는 인원으로, 40만명이 동원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이후 50년만의 최대 규모다.
이스라엘 육군은 주력 메르카바 전차와 나메르 장갑차 수십대를 가자지구 접경지에 배치하고 있으며 공군과 해군도 지상군 엄호사격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해군은 지상 작전 도중 바다를 통해 이스라엘 본토로 침투하려는 하마스 대원들 소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15일 오전 주례 각료회의에서 "하마스는 우리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우리가 그들을 부숴버릴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의 훌륭한 전사들이 전선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들은 온 나라가 그들의 뒤에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안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맞선 괴물들을 척결하기 위해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서 사망자가 4천명을 넘어선데다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피해는 더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여 국제 사회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부는 15일 저녁까지 집계된 누적 사망자가 2천670명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까지 이스라엘 측이 집계한 사망자는 1천500여명으로 양측의 사망자를 합하면 4천100여명에 달한다.
하마스 세력을 뿌리뽑기 위해 지상군까지 투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스라엘군이 연일 공습을 이어가면서 가자지구의 부상자는 1만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자지구의 병원에는 환자들이 밀려들고 있으며 의약품과 연료 등이 바닥을 보여 부상자 중 수천 명이 더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AP 통신이 현지 의료진을 인용해 보도했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 대표는 "전례가 없는 인도적 위기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美 민주당 지지층·중도층, 팔레스타인 우호 여론 확산.. 바이든, 이스라엘에 "자제하라"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스라엘에 대해 가자지구를 재점령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방송된 미 CBS '60분'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와 하마스의 극단주의자들이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이 가자를 다시 점령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간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고, 가자봉쇄에 대한 국제기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보복 조치에 대해선 언급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자제를 촉구한 것이다.
그는 "극단주의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팔레스타인 정부(Palestinian Authority)가 있어야 한다.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독립국가로서 팔레스타인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해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2개국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이 미묘하게 바뀐 것은 국내 여론 변화와 확전 가능성 고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정치권과 여론은 친 이스라엘 성향을 강하게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이·팔 전쟁에 대해서는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친 팔레스타인 성향도 만만치 않은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CNN은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미국의 성인 1천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하마스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전쟁을 놓고 대다수 미국인이 양측 모두의 유혈 사태에 동정을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5일 보도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71%가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에 큰 동정을 표했고, 96%는 최소한 어느 정도 동정을 밝혔다.
또,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침공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전체의 41%가 많은 동정을 밝혔으며, 84%는 어느 정도 동정 입장에 손을 들었다.
무엇보다 민주당 지지층(49%)과 무당층(47%)에서 팔레스타인에 큰 동정을 느낀다는 응답이 우세했으며,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같은 답변이 26%에 불과했다.
즉,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무턱대고 이스라엘 편을 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연령별 격차는 한층 뚜렷했다. 65세 이상에서는 87%가 이스라엘에 큰 동정을 표했고, 팔레스타인에 동일한 감정을 표한 경우는 36%에 불과했다. 반면 35세 이하 젊은 층에서는 61%만이 이스라엘에 큰 동정을 나타냈고, 거의 비슷한 54%가 팔레스타인에 같은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 이란이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압박하면서 제5차 중동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바이든에게는 부담이다.
1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의 이란 대표부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와 대량 학살을 중단하지 않으면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하며 상황이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 책임은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안보리를 막다른 길로 몰아 넣은 국가들에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도 두명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계속 공격하면 이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토르 벤네슬란드 유엔 중동특사에게 "이번 분쟁이 지역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있는 민간인들의 석방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에는 '레드라인'이 있으며,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계속되고 지상전을 실행한다면 이란도 이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므리 압돌라히안 장관은 전날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만난 뒤 기자회견을 열어 "헤즈볼라가 마련한 시나리오에 대해 알고 있다"며 "어떤 조치라도 이스라엘엔 대지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랍연맹·아프리카연합, 이스라엘 지상전 계획 철회 촉구
이처럼 확전 우려가 고조됨에 따라 아랍과 아프리카 등 주변국들도 이스라엘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아라비아반도 및 북아프리카 등지의 아랍권 국가들로 구성된 아랍연맹(AU)은 15일 아프리카 전체 55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는 아프리카연합(AL)과 공동성명을 통해 "늦기 전에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두 기구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내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두고 "전례 없는 규모의 대량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상전 계획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두고 비교적 중립적 태도를 취해온 이집트도 이스라엘군의 지상군 투입을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아랍 매체 알아라비아에 따르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담에서 하마스 공습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은 "정당한 자기방어를 넘어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집단처벌 양상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지원품 전달 방식을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가자지구의 분쟁이 다른 곳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 이스라엘에 '도를 넘었다' 비판 가세.. "안보리 나서야"
중국도 이스라엘 비판에 동참하고 있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이스라엘에 대해 '도를 넘었다'고 직격했다.
15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주임은 전날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 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민간인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반대·규탄한다"며 "이스라엘의 행위는 자위(自衛)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와 유엔 사무총장의 호소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가자 민중에 대한 집단적 징벌을 중단해야 한다"며 "각 당사자는 사태를 고조시키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되고 협상 테이블로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중국은 각 당사자와 집중적인 소통을 통해 휴전을 이끌고 있다"면서 "급선무는 전력으로 민간인의 안전을 보장하고 인도적 구조·지원의 통로를 시급히 열어 가자 민중의 기본적 수요(생활)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이 민족의 권리를 회복하는 정의로운 일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두 국가 방안'이라는 정확한 궤도로 돌아가 전면적이고 공정하며 항구적인 해결을 보도록 이끌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파르한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이행하지 않고 독립된 팔레스타인을 건설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공정하고 항구적인 해결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라며 "사우디는 중국과 함께 국제 인도주의법 준수와 민간인 보호, 안보리의 팔레스타인 결의 이행을 이끌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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