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크던 작던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못마땅해 하고 불편해 한다. 불편함은 상대를 배척하고 절멸하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 저지른 일 가운데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위엄과 업적을 훼손하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오만함은 지적 자산이 축적된 책을 태우고 학자를 흙구덩이에 파묻는 만행으로 나타났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은 2대를 못가 14년 만에 단명했다. 언로를 막고 전체주의를 강요한 예정된 결과다.
나치 역시 책을 불태움으로써 획일적 체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1933년 5월 10일, 베를린 베벨광장은 광기로 가득했다. 광장은 다양한 지식과 폭넓은 토론이 오가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허나 90년 전, 광장에서 비독일 정신으로 지목된 책 2만권이 잿더미로 사라졌다. 나치는 자신들이 낙인찍은 책을 쌓아놓고 불태웠다. 분서 만행은 전국 22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광장에 운집한 추종자들은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환호했다. 이후 나치 이념과 다른 생각은 금지되고 토론이 있던 자리에는 블랙리스트가 나부꼈다.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1, 장남주>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다. 베를린이>
박빙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과 당대표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게 있다.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오만과 광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이념이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는 골프로 치면 300야드를 날릴 실력이 있다. 공이 날아가는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 소용없다”고 했다. 야당의 지나친 발목잡기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말이라고 짐작한다. 그렇다 해도 자신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만 옳다는 건 위험하다. 나아가 옳고 그름은 누가 결정하나. 진시황과 나치도 자신들은 옳다고 믿었고 독선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전체주의 망령이 지배하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행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당이라고 믿기 어렵다. 가결 표를 던진 30여 반란표를 색출하겠다는 광기나 난무했다. “검찰과 한통속 의원들은 속죄하라”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끝까지 추적해 정치 생명을 끊겠다”는 섬찟한 협박이 계속됐다. 이후에도 친명계와 개딸들은 ‘색출’ ‘숙청’을 거론하며 “수박들을 다 박살내자”며 14명을 실명 공개하며 좌표 찍었다. 심지어 “라이플 소총” 살해 협박과 함께 비명계 의원들 사무실로 몰려갔다.
강성 지도부 인사와 극성 지지층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일부 의원들의 처신 또한 한심하다. “나는 부결 표를 던졌다”는 고백과 인증 샷이 이어졌다. 전체주의에 굴복한 어이없는 행태였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다. 자신이 행한 발언과 표결 결과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비밀투표 원칙은 헌신짝이나 다름없다. 국회의원으로서 권위, 국회법보다 공천장이 우선했다. 그들을 국민의 대변인으로 불러야할까. 더불어민주당을 장악한 전체주의 망령은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국민의힘에 등 돌린 시민들이 민주당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다.
괴테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민주당에는 전체주의 괴물이 어른거린다. 어쩌다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극우보수와 닮아 가는지 모를 일이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전체주의는 당장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진 제국 멸망과 나치 정권 몰락에서 확인됐듯 그 끝은 허망하고 참혹하다. 멀리 갈 것 없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앞세워 영원을 기도했지만 처참하게 붕괴했다.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은 획일적인 전체주의와 일사불란함이 초래하는 끝에서 배워야 한다. 당장은 불편한 목소리를 잠재우는 게 편안할지 모르지만 몰락은 별안간 찾아온다.
국민통합과 안정적인 국정운영, 제대로 된 비판과 견제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데서 시작한다. 비판과 논쟁을 통해 바로 선다. 독일 망명 작가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는 나치의 분서와 금서에 숨죽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불태우라’는 신문 기고를 통해 나치의 국가폭력에 저항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에 필요한 건 그라프와 같은 나침반이다. 확증편향을 바로잡아주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침묵하거나 동조한다면 자신과 당, 국가를 망친다. 베벨 광장에서 박수치고 환호했던 광기가 끔찍한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불러왔음을 기억하자.
사마천은 “위아래 언로가 막히면 나라를 망친다(옹패지국상야雍蔽之國傷也)”며 전체주의를 경계했다. 나치가 책을 불태운 베벨 광장 바닥에는 하이네 글귀가 있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 결국 인간도 불태워질 것이다.” 전체주의를 기도하는 권력자들에게 이보다 유효한 경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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