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 내 리말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우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동네에 안전한 곳이 남아있긴 한가?”라고 물었다.
지난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례 없는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전투기가 출동해 해당 지역을 또 한 번 공습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7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 지구 내 민간인 거주지, 통신 회사 건물, 이슬람 대학의 교직원 건물 수십 채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9일 밤 내내 끔찍한 폭발음이 가자 지구를 뒤흔들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으며, 그 누구도 잠들지 못했다.
그날은 가자 지구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가장 조용한 곳으로 알려진 리말 지역 주민들에게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밤으로 남게 됐다.
다음날인 10일 아침 해가 뜨면서 공습이 차츰 줄어들었다. 이에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그 피해 정도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남서부 지역의 사회 기반 시설은 심각하게 파괴됐으며, 이곳으로 통하는 도로 대부분이 끊겼다.
나는 차를 몰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마치 지진이 휩쓸고 간 듯한 현장이었다. 사방에 건물이 무너져 있고, 깨진 유리 조각과 잘린 케이블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었다. 너무나도 파괴된 나머지 원래 알던 건물 옆을 지나가도 미처 알아볼 수 없었다.
길에서 딸 샤흐드와 함께 있던 모하메드 압두 알-카스는 “나는 모든 걸 잃었다. 자녀 다섯과 함께 살던 집이 바로 이 건물에 있었다. 내가 건물 지하에서 운영하던 식료품점도 파괴됐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집을 잃고 거리에 나앉게 됐습니다. 그 어디에도 우리를 위한 피난처도 없으며, 우린 직업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알-카스는 민간인은 겨냥하지 않는다는 이스라엘군의 말은 거짓말이라며 “이스라엘이여, 내 집과 식료품점이 군사적 목표물인가?”라고 물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는 9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약 300명이 사망했으며, 그중 3분의 2가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이날은 지난 수년간 가자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날이었다.
가자 지구 북동부에 자리한, 인구 밀도가 높은 자발리아 난민촌에서도 9일 오후 최소 15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지휘관의 자택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으나, 근처 시장이나 주택에 있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주의적 위기 심화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7일 이후 가자 지구 내 사망자는 어린이 260명을 포함해 900명에 달한다. 그 외에도 4500명이 부상당했다.
안 그래도 이미 위태롭던 인구 과밀의 이 작은 지역에선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지구 “완전 포위” 명령과 함께 가자 지구로의 모든 공급을 끊으면서 이곳에 사는 주민 220만 명은 식량, 연료, 전기, 물 등이 부족한 상태다.
7일 벌어진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이스라엘군에서도 1000명이 사망했으며, 인질로 붙잡혀 경계선 넘어 가자 지구로 끌려간 이들은 100~150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편 리말에 살던 와드 알-무그라비는 무너진 옆집 건물을 바라보며 “21세기에 전기도, 물도 없이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라면서 “내 아기는 기저귀도 갈아줄 수 없고 우유도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게 제 아기였나요?”
7일 이후 처음으로 문을 연 가자 지구 내 가장 큰 슈퍼마켓의 작은 뒷문 앞에는 수십 명이 줄지어 있었다. 이들은 이번 갈등의 장기화를 우려해 먹을만한 무엇이든 살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가자 지구에 공급되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 대부분은 남쪽 지역에서 재배되는데, 연료 부족 문제 심화는 이를 북부로 운송하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2007년 하마스가 안보상의 이유로 이 지역을 장악한 이후 이스라엘과 더불어 가자 지구를 엄격히 봉쇄해온 이집트에서도 현재까지 식량 등 필수품 공급이 없는 상태다.
아울러 이곳 주민들은 이집트와 만나는 라파 경계선을 넘어서도 가자 지구를 탈출할 수 없다. 보통 하루에 400명 정도는 출입이 허용되지만,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 9~10일 이뤄진 이스라엘의 공습 동안 팔레스타인쪽 게이트 입구가 파괴돼 그 어떠한 출입도 막힌 상태라고 한다.
이로 인해 공습으로 살던 집을 잃었거나, 공포에 질려 집을 떠나길 선택한 가자 지구 주민 20만 명 대부분은 UN이 운영하는 학교 건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가자 지구 주민들은 지하에 마련된 대피소로 향하고 있지만, 만약 지상의 건물이 무너지면 그 안에 갇힐 위험이 있다. 실제로 9일 밤에만 약 30가구가 한 지하 공간에 갇혔다.
리말 지역 주민 알-무그라비는 “이전 전쟁까지만 해도 이곳은 이스라엘과 경계선을 맞댄 지역 주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9일 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젠 가자 지구에서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음이 드러났다.
Copyright ⓒ BBC News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