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화상 통화 프로그램에 접속하자 상대방과 연결되었다는 알림이 뜬다. 이어서 화면 위로 연인의 얼굴이 보인다. 데이트에서나 입을 법한 재킷을 걸치고, 머리는 깔끔하게 빗어 넘겼다. 탁자 위에는 미리 골라둔 음식이 올라와 있다. 쑥스럽다는 듯 웃어 보인 이가 묻는다.
“What are we doing today? (오늘은 뭐 할까?)”
“How about watching a movie? (영화 보는 건 어때?)”
제안을 들은 상대가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곧 OTT 사이트에 접속해 함께 화면을 보며 영화를 고르기 시작한다.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줌(Zoom) 데이트’의 풍경이다.
이서영(23) 씨는 작년 대외활동으로 갔던 우간다에서 만난 연인 니콜라스(Nicholas)와 8개월째 장거리 연애 중이다. 6시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연락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 메신저 프로그램 왓츠앱(WhatsApp)으로 문자를 주고받고, 카카오톡으로 음성 통화와 화상 통화를 한다. 상대가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이 씨는 “비록 남자친구와 떨어져 있지만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며 “감정적으로 교류하면서 충분히 충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메신저 서비스와 SNS 등의 영향으로 장거리 연애의 장벽이 낮아졌다. 시차가 몇 시간씩 차이 나는 해외일지라도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언택트’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 나가는 연인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각종 앱과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곽서현(22) 씨는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서 만난 미국인 연인과 사귄 지 4개월이 됐다. 두 사람이 커플이 되자마자 곽 씨가 교환학생 기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이들은 지난봄부터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무려 13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연애는 순항 중이다. I 메시지(I Message), 카카오톡, 스냅챗(Snapchat) 등 다양한 메신저 앱을 사용해 일상을 공유하고, 정기적으로 줌(Zoom)에서 만나 데이트를 한다.
화면 너머로 만나더라도 실제 데이트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한껏 단장한 채 마주한 두 사람은 사전에 메뉴를 통일하거나 배달 앱으로 서로에게 음식을 주문해 준 뒤 화면을 보며 식사한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하는 만큼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새로운 작품을 함께 보고 감상을 나눈다. 대화를 주고받다 정신을 차리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일도 흔하다.
곽 씨는 “처음에는 관계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비대면으로 함께하는 것도 생각 이상으로 즐겁다는 걸 느꼈다”며 “정서적인 유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작년 9월부터 독일인 연인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 조유선(24) 씨는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남자친구와 영상 통화를 한다. 시간 맞춰 넷플릭스를 함께 보거나, 2인용 온라인 비디오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그는 “같이 있던 기간 동안 신뢰가 쌓였다”며 “이 사람과는 장거리 연애를 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조 씨는 물리적 한계가 뚜렷한 관계를 지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충분한 소통을 꼽았다. “두 사람이 재밌게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조유선 씨의 말이다.
이경현(23) 씨는 비트윈(Between)과 같은 앱을 통해 떨어져 있는 연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트윈은 커플을 대상으로 한 폐쇄형 SNS로, 전용 메신저와 추억 앨범, 편지, 캘린더 등의 기능을 지원한다. 이 씨는 해당 앱을 사용하면서 “두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만들어진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물론 직접 상대를 마주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서영 씨는 한때 거리와 시간의 장벽 때문에 연인과의 관계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소울메이트’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장거리 연애를 이어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씨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연락할 때면 더 솔직하게 표현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임윤서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강의초빙교수는 2021년 학술지 ‘사회과학연구’에서 비대면 상황이 소통의 참여자에게 “타인의 감정이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공감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상대에게 집중하는 기회”가 됐다고 보았다.
이처럼 장거리 커플들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통념을 뒤집고 함께할 방법을 부지런히 찾아가고 있다. 곽서현 씨는 “연애에 있어 거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장거리가 연애를 결정하는 우선순위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온전히 즐겁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멀리 있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많잖아요.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지보다는, 누구를 만났을 때 재밌고 행복한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 말하며 곽 씨는 여느 때와 같이 노트북 앞에 앉았다. 화면 너머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이지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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