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작점에서 온 기묘한 윙윙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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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작점에서 온 기묘한 윙윙거림

BBC News 코리아 2023-10-07 11:06: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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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생겨난 이후 태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수십만 년간 과열된 입자로 이루어진 플라즈마(고체, 액체, 기체도 아닌 제4의 물질 상태)를 뚫고 울려퍼졌다.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로 알려진 신비한 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기대하며, 이 소리에 귀를 대고 있다.

별이나 행성이 태어나기 전, 블랙홀 및 백색왜성 보다도 먼저, 심지어 원자나 빛줄기 이전에도 우주는 놀라운 형태, 즉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태고의 윙윙거림이다. 이 소리는 빛의 속도의 절반이 조금 넘는 속도로 중입자와 광자, 암흑 물질로 이루어진 과열된 플라즈마 속으로 퍼져나갔다.

이 소리는 전하를 띤 입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일어난 태고의 강력한 힘들간의 줄다리기에서 나왔다. 소리가 생겨나고 수십만 년이 지난 뒤, 플라즈마는 마치 아침 안개가 걷히듯 사라졌다. 그리고 우주는 갑자기 깊은 침묵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디를 봐야 할지만 안다면, 초기 우주에 퍼졌던 태고 음파의 반향을 아직도 포착할 수 있다. 플라즈마에서 만들어진 잔물결이 우주 주변 물질의 분포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천문학자들에게는 이 물결이 오늘날 우주의 커다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신비한 암흑에너지에 대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중입자 음향 진동(baryon acoustic oscillations, 이하 BAO)'이라고 불리는 태고 음파는 초기 우주에서 입자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를 끌어당기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중국 양저우 대학 '중력 및 우주론 센터'의 교수 라리사 산토스는 "초기 우주에 있던 암흑 물질의 중력이 플라즈마를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전위 우물'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라즈마가 너무 뜨거워서 이와 반대로 바깥으로 나가는 힘도 만들어졌다. "광자는 중력과 싸우는 복사 압력(radiation pressure)을 생성해 모든 것을 다시 밀어냈습니다. 이 싸움이 음향 진동, 즉 음파를 만들어 낸 거죠."

셀 수 없이 많은 전위 우물에서 BAO가 바깥쪽으로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같은 중심을 가지고 확장하는 소리 에너지의 구체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교차하며 플라즈마를 어지럽고 복잡한 3차원의 간섭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만약 BAO 시대에 인간이 존재했다면, 인간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리는 피아노에서 가장 낮은 음보다 약 47옥타브 낮은 음이었다. 주파수 파장은 45만 광년이라는 엄청난 길이였다.

이처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파장에 들을 수조차 없는 웅웅거림은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투과할 수 없는 매질을 통해 퍼저나갔다.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우리가 우주를 더 깊이 들여다 볼수록, 우리는 더 먼 우주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는 우주의 초기 단계에서 어딘가에 결합되지 않은 양성자와 전자에서 나온 전하들을 통해서 빛이 만들어지는 선까지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BAO는 이 매질 안에다 바깥쪽으로 물결치는 패턴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주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초기 우주 BAO에서 온 반향들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플랑크 우주망원경(Planck Space Telescope)'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변환해 냈다.

이후 약 37만 9000년쯤 지나자, 뜨거웠던 우주는 양성자와 전자가 짝을 이루어 최초의 중성 수소 원자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식었다. 플라즈마가 사라졌고, 우주는 갑자기 빛을 투과시킬 수 있게 됐다. 동시에 복사와 중력 사이의 싸움이 끝나고, BAO가 멈췄다. 우주는 침묵에 빠졌다.

우주로 퍼져나가는 빛 에너지 폭발은 매우 강력했다. 그래서 130억 년이 지난 지금도 전파 망원경에 포착되고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CMBR)'라는 신호로 물리학자들을 흥분시킨다.

이 'CMB(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는 초기 우주와 관련된 가장 오래되고 자세한 시각적 기록이다.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도 과학자들은 우주 최초의 소리에 대해 "화석처럼 남아있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산토스는 "그 기록들이 CMB와 우주의 대규모 구조에도 각인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태고 음파를 분석하는 새로운 국제 전파 망원경 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그 흔적은 약 5억 광년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됩니다."

BAO 흔적은 초기 우주의 소리가 어떠했는지를 암시해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현상인 암흑에너지의 영향을 측정하는 잣대 역할도 한다.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팽창시킨다. 암흑에너지의 영향은 어디든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구에서 다양한 거리에 있는 BAO 시그니처의 규모를 연구하면, 암흑 에너지의 영향이 우주의 역사와 함께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산토스는 "우리는 이것을 표준 잣대라고 부른다"고 했다. "우리에겐 이 고정 척도가 있죠. 이것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를 통해서, 시간이 흐르며 우주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현재 브라질 북동부 파라이바 주에 건설 중인전파 망원경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빙고(Bingo는 BAOs form Integrated Neutral Gas Observations의 약자)'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우주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풍부한 원자인 수소의 독특한 복사 신호에 맞춰져 있다.

수소 원자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파 망원경으로는 감지할 수 있는 21cm 파장의 수소선을 방출한다. 더 멀리 떨어진 수소 구름에서 방출된 이 수소선은 암흑에너지에 의해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지구에서 관측되는 파장도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이동한 거리가 멀어질수록, 늘어나는 파장의 길이도 길어진다.

산토스는 "측정하고자 하는 우주의 시기에 맞춰 전파 망원경의 주파수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빙고 프로젝트는 10억 광년에서 40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의 수소 분포를 매핑하도록 설계됐다. 우주의 공간과 시간 규모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점들이다.

빙고에서 두 개의 우뚝 솟은 포물선 모양 거울은 이 태고 복사를 "뿔"이라고 알려진 50개의 파형 검출기들로 반사한다. 망원경의 주요 움직이는 부위는 사실 망원경이 설치된 행성이다. 자전하는 지구는 망원경을 별들 밑으로 이동시켜, 천체를 15도씩 200도까지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통계적 계산을 활용해 산토스는 그 데이터를 분석할 것이다. 수백만 개의 은하 위치를 찾아내고, 서로간의 상대적 거리를 조사하고, 암흑 에너지가 그 시대의 BAO 패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서다.

그는 "빙고는 암흑 에너지가 이미 우주 팽창을 지배한 후기 우주를 살펴볼 것"이라며 "다른 실험들과 매우 상호보완적인 실험"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많은 실험들이 이미 진행중이거나 계획되어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수소 밀도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신시아 치앙은 "수소 강도 매핑은 원칙적으로 현재부터 CMB까지 우주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다"며 "탐사할 수 있는 양이 방대하다"고 말했다. "빙고와 다른 유사한 실험들은 은하 내부에 존재하는 가스를 찾습니다. 그 물질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는 것이죠."

치앙은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맞춰 조율된 기구들에 흥미를 갖고 있지만, 우주 나머지 역사에 대한 답도 갈망하고 있다.

그는 웃으며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야심찬 접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암흑기'에 해당하는 주파수에 맞춰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암흑기는 CMB가 형성된 직후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와 관련된 우주론은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지금까지 다뤄진 적이 없었어요."

중입자 플라즈마가 CMB로 넘어간 "마지막 산란의 표면"과 첫 별빛이 비친 "우주의 새벽" 사이에는 2억5천만 년에서 3억5천만 년의 시간이 존재한다. BAO는 성긴 줄무늬로 뭉쳐진 수소 구름들을 남겨놓았다. 마치 모래에 잔물결을 남기는 썰물처럼 말이다.

치앙이 이 시대의 21cm 수소선에 접근하려면, 먼저 우리 은하에서 더 오래된 데이터를 가려버릴 수 있는 최근의 신호들을 걸러 낼 수 있도록 실험 설계를 해야 한다.

그는 "이 첫 번째 실험은 아직 우주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목표는 이 주파수에서 은하수 방출을 매우 높은 해상도로 매핑해 천체가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파악하는 첫 단추를 꿰는 겁니다. 그게 잘 된다면, 다음에는 그것을 빼고 우주론에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암흑기에 우주는 매우 어둡고 지루한 곳이었습니다. 그때 관측되는 신호는 거의 이 수소 벽에서 나오는 균일한 21센티미터 수소선 방출이죠. 그러나 밀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희미한 밝기 변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차가운 지점들과 고온의 지점들도 있고요."

그는 CMB가 우주 진화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순간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포착해놓은 사진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암흑기의 수소 밀도를 매핑하면, 그 직후 수억 년의 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치양은 "이것은 탐사가 가능한 3차원 형태"이라고 말했다. "CMB와 같은 종류의 정보를 측정할 수 있지만, 대신 수소에 반영된 정보를 측정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어 우주론에 더 가까워 질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해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되겠죠. 하지만 매우 멀고 험난한 길입니다."

빙고 망원경 프로젝트와 함께 치앙이 계획한 실험은 BAO의 역사, 우주의 대규모 구조, 은하를 갈라놓은 보이지 않는 암흑에너지 등을 풀어내는 혁신적인 관측 장비가 될 것이다.

산토스는 "천체을 측정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측정한다"고 말했다. "CMB와 중성 수소, 은하의 지점들 등 이런 모든 것들을 측정하죠. 우리는 무엇이 우주론적 신호이고, 무엇이 그것에 속하지 않는 것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산토스는 BAO가 우주의 과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다. 즉 37만 9000년 두께의 플라즈마 벽을 뚫고, 우주의 '급팽창 시대(대부분의 우주론자들은 이 시대에 우주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팽창했다고 생각한다)'에 대한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주 급팽창 이론은 우주가 작고 뜨겁고 밀도가 높은 초기 상태에서 오늘날의 우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중에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이론은 수많은 탄생과 변형,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이 이론에선 테스트와 검증을 거친 강력한 예측이 많이 나오지만, 아직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산토스는 "이미 많은 급팽창 이론들이 관측을 통해 폐기됐다"고 말했다. "우리가 확인하려는 측정들이 가능해진다면, 어떤 이론이 그 측정과 가장 잘 일치하는지 가려내고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있겠죠."

BAO가 존재했던 기간은 우주 초기 수십만 년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우주의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중입자 음향 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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