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제도에서 소외된 일본의 동성 커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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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제도에서 소외된 일본의 동성 커플들

BBC News 코리아 2023-10-05 11:41: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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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키아 히카리 커플 사진
BBC
아키와 히카리는 7년째 함께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이들의 관계는 비밀이다

일본에 사는 아키와 히카리 커플이 도쿄에서 함께 집을 구하러 다닐 때였다.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날 때마다 부동산 중개인은 “커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아키와 히카리가 “우리도 커플”이라고 답하면 “남녀 커플을 위한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둘 다 30대 여성인 아키와 히카리는 7년째 함께 하는 사이로, 이젠 아들도 함께 키우고 있다. 여느 부부들처럼 이들은 아기의 작은 몸짓에도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며 정성을 다한다.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교대로 돌아가며 아기를 재우며, 새로 구입한 분유 제조기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일본의 법과 정부, 보수적인 사회의 시선에서 이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아니다. 주위에서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으나, 여전히 이들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비밀로 하고 있다. 실명을 밝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키와 히카리는 동성 커플이 터부시되는 상황에서 아들을 위해 특히 조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키는 “우리 3명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로 일본은 G7 국가 중 동성 결혼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거나, 동성 커플에게 명확한 법적 보호 장치를 제공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로, 이에 일본의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에서 투명 인간과 같이 취약한 존재라고 느낀다.

BBC 또한 아키와 히카리의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한편 일부 지방 법원에서 동성 결혼 불인정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현재 일본에서도 동성 결혼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정치 지도부의 반대에 부딪혀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개정안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동성 결혼 관련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를 반영해 어느 정도 진전이 이뤄지긴 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성소수자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했다. 아울러 정부는 성소수자 권리 증진에 초점을 맞춘 직책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다루는 새로운 법률도 신설했다.

그러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여전히 이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인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동성 결혼 합법화에는 미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운동가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모든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조치한다는 법안의 표현에 분노했다.

이러한 표현이 사회 다수의 권리를 우선시하고 있으며, 성소수자 공동체의 존재가 다른 이들의 마음의 평안을 위협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일본 성소수자 합법화 연합(J-ALL)’의 니시야마 아키라 사무차장은 “이미 많은 정치인들이 해당 법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학교 및 기업 내 교육과 활동을 제한하고 싶어 한다”면서 “이러한 의도가 매우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키와 히카리와 같은 실제 동성 커플들은 법적 인정의 부재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서 매일 삶을 더욱더 힘들게 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아기 손을 잡고 있는 모습
JIRO AKIBA/BBC
아키와 히카리는 장차 아들이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례로 아키와 히카리 커플이 받아들이고자 애쓰고 있는 현실적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친권이다. 이들이 함께 키우는 아기의 친권은 실제 출산을 한 아키에게만 있다.

아키는 “나는 출산 중 내가 사망할 경우 내 파트너를 우리 아들의 법정 후견인으로 임명하겠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히카리의 양육권을 보장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파트너가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도 파트너를 대신해 서류를 작성하거나 동의서에 서명할 권리가 없으며, 공동 주택 담보 대출을 받기도 힘들다. 아울러 파트너가 사망할 경우에도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없다.

각각의 상황마다 특별 허용을 신청할 순 있으나, 그 결정권 또한 관련 당국의 재량에 달린 게 현실이다.

히카리와 아키는 부모가 되면서부터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털어놓게 됐으며, 결혼을 생각하게 됐다.

아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세상에서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에서 결혼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혼인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거절당하자, 히카리가 대학을 나온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아키는 “우리는 (일본 정부에) 우리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일본에선 자신들이 투명 인간같이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보수적인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는 아키는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동성애자임을 알았고, 이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강하게 시달렸다. 숨어 살았다 …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니시야마 사무차장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보면서도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생각 … 혹은 가부장제를 지키고자 한다”면서 여전히 권력자들이 변화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거의 10년간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한 저로서는 정말 싸워야한다는 생각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답답합니다. 물론 성소수자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외국으로 건너가 살 수 있겠지만, 일본 사회를 바꾸고 싶고, 제 권리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아직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동성 결혼 허용을 외치는 일본 사회 운동가들의 모습
Getty Images
일본은 G7 국가 중 유일하게 동성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다

절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니시야마 사무차장 또한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에 지치고 낙담하는 듯했다.

한편 조금 더 나이가 있는 동성애 커플들은 더욱 희망에 찬 모습이다. 40대 초반인 케이타로와 10살 더 많은 히데키는 1년여 전 발레 수업에서 처음 만나 각별한 사이로 발전했다.

이들은 성소수자 파트너십 제도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법적 보호는 받지 못하지만, 케이타로와 히데키에게 이는 자신들의 결합의 상징과도 같다.

케이타로는 “진정한 결합은 법적 결혼 그 이상이다. 만약 진정한 파트너를 찾았다면 사회가 그 관계를 어떻게 분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케이타로는 10대 때 커밍아웃을 한 이후 줄곧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살아왔다. 반면 히데키는 아직 가족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도쿄 근교의 보수적인 시골 지역에 살고 있는 히데키는 90살 노모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아 케이타로와 동거하는 대신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히데키는 “일본에선 아직도 차별이 심하다”면서 “내 주변 환경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케이타로는 “이중생활을 할 필요가 없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면서 “개인적으로 [법적 보호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 그리고 편견이 적어진다면 커밍아웃에 대한 불안감도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키와 히카리 커플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이들은 언젠가 일본에서 합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아, 아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아키와 히카리는 앞으로 아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어떻게 지내게 될지 걱정되면서도 궁금해한다. 그렇기에 자신들과 같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변화를 원한다는 게 아키의 설명이다.

“동성 부모의 자녀들이 살아가기에 더 쉬운 사회를 바란다”는 아키는 “성소수자들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보호받을 수 있길 바란다. 더 이상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숨기는 건 옳지 않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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