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데 가격은 그대로 지불해야 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경제가 회복되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더라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마트 계산대에서 내는 금액은 그대로인데 구입한 물건의 양이 줄어든 것 같은 경험을 해봤는가?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를 경험하고 있다.
제품의 크기나 양을 줄이면서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만연하고 있다. 현재 세계 경제는 원자재 비용 상승, 공급망 적체, 팬데믹 이후의 노동자 임금 상승 등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 이 가운데서 생산 비용 급등의 부담을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주로 인플레이션 시기에 발생하는 이 관행은 현재 전 세계 마트나 시장에서 포착되고 있다. 화장지든 과자든 제품 종류에 상관 없이 말이다. 최근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는 가격 인하 없이 제품의 내용물이 적어졌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스티커를 제품에 부착하기도 했다.
소비자들도 포장된 제품의 양이 줄어드는 현상을 자각하고 있다. 당연히 불만스러워 하고 있는데, 특히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구매력이 이미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제품에 붙은 슈링크플레이션 안내 스티커는 지금 당장은 불만 수준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인플레이션이 끝난다고 해서 슈링크플레이션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기업에게 가격 책정을 교육하는 단체인 ‘임팩트 프라이싱’의 수석 교육자 마크 스티빙은 소비자의 불만과 관련해 “소비자들은 크기 감소보다 가격 인상을 더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업들이 가격을 “덜 고통스럽게” 올리기 위해 슈링크플레이션을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옥스퍼드 대학 사이드 경영대에서 소비자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 캐미 크로릭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가 지갑에 미치는 영향을 많이 신경쓰기 때문에 “포장 제품의 내용물이 줄어들 때 ‘없어진’ 제품 양보다 가격 상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항상 변화를 즉시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년 전에는 340g 병에 담겨 판매되던 인기 음료가 지금은 가격은 같지만, 크기가 283g으로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크기나 용량의 제품이 시중에 한 번 출시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한다. 식품 산업 분석가이자 슈퍼마켓 관련 웹사이트 ‘슈퍼마켓구루’의 에디터인 필 렘퍼트는 구매자들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소비자들의 선택이 더 나은 가치를 가진 제품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렘퍼트에 따르면, 슈링크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브랜드 충성도는 급격히 하락한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종종 가격과 양 측면에서 우월한 유통사의 자체 브랜드 제품을 선택한다. 하지만 생필품의 경우엔 소비자의 선택폭이 넓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기에게 분유를 꼭 먹여야 하는데 매장에서 한 가지 제품만 판다면, 제품 브랜드에 상관 없이 가격표대로 돈을 내고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현재 까르푸에서 판매하는 네슬레의 유아용 분유는 그 크기가 900g에서 830g으로 줄었다.
크로릭은 슈링크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제 문제가 완화되더라도 제품의 크기가 반등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드문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더 적은 재료를 사용해 같은 양을 만들거나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미국 소비자 권리 변호사 출신으로 ‘컨슈머 월드’를 창업한 에드가 드워르스키는 “제품의 크기가 반복적으로 줄어들면 제조업체가 종종 크기가 더 큰 새 버전을 출시하며 멋진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는 새로 출시된 제품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드워르스키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인해 크기가 계속 작아지고 있는 감자칩을 예로 들었다. 펩시코의 스넥 자회사인 레이는 과거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다가 결국 대형 사이즈 감자칩을 다시 출시하고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도록 ‘파티 사이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드워르스키는 또 수십 년 동안 크기가 줄어들고 있는 화장지도 거론했다. 그는 소비자가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화장지가 작아지기 시작하자, 제조업체들은 다시 큰 사이즈를 시장에 출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더 큰 패키지를 진열대에 올리면서, ‘차민’을 비롯한 기업들은 “더블”, “트리플”, 심지어 “메가” 롤이라는 이름으로 마케팅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슈링크플레이션의 시기인 터라 차민의 울트라 소프트 “슈퍼 메가” 롤 조차도 작아지고 있다.)
식료품점에서 스티커를 사용해 구매자에게 경고를 하든 말든, 슈링크플레이션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특히 저소득층에게는 더욱 타격이 크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더라도 가격이 다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는 마트나 시장에서 쇼핑을 할 때 계속해서 예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진열대에 올라와 있는 ‘초대형 슈퍼-두퍼’ 사이즈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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