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 토요일 오전 11시,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에 앉아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인강(인터넷 강의)을 시청하는 학생부터 사설 모의고사를 푸는 학생까지. 문제가 풀리지 않아 한숨을 푹 쉬는 학생을 학원 강사가 봐준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마이러닝랩 학원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유현진(29) 씨는 분당 마이러닝랩 학원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친다. 그는 킬러문항 배제 정책이 발표된 이후에도 학생 수는 똑같다고 밝혔다.
유 씨는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이 때문에 해당 정책은 사교육을 줄이는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양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좁은 계단을 열댓 명의 학생이 내려온다. 오후 10시,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2차로의 골목을 지나 집에 가고 있다. 한 학생은 자신을 데리러 온 회색 차에 타고 있고, 다른 학생들은 골목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구리 파워영어수학학원에서 고3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정진호(25) 씨 역시 정책 발표 이후에도 학생 수는 그대로라고 했다. 오히려 킬러문항이 사라진 틈을 타 학생들이 학원에 더욱 의존한다고 밝혔다. 어려운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성적을 올리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 씨는 “준킬러문항 대비를 위한 수업을 진행 중인데, 상위권이지만 킬러문항을 맞출 실력은 안 되는 학생들에게 (이 수업이) 도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인 킬러 문항을 배제할 것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사교육비 증가를 막고 공교육에 힘을 싣고자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킬러문항 배제’ 정책이 나온 지 약 세 달이 지난 지금도 학원 강사들은 사교육 감소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험생들은 해당 정책에 영향을 받았을까? 기자가 고3 학생들도 만나봤다.
심서윤(18) 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낮에도 학원을 간다. 올해 수능을 보는 심 씨는 정책 발표 이후에도 공부 방법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수능 난이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쉬운 문제만 풀 수 없기 때문에, 킬러문항을 계속해서 풀고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올해 수능을 보는 이관영(18)씨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탐구 과목의 인강을 수강 중이다. 수능에서 치르는 전 과목을 인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씨 역시 정책이 발표 이후에도 공부 방법은 동일하다고 밝혔다. 그는 “학교 수업만으로 수능을 대비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친구들 역시 여전히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교육과의 전쟁 선포했지만 현장은 그대로
'다 같이 점수 올라' 정책 실효성 있는지 의문
정부는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킬러문항 배제’를 선포했다. 그러나 ‘킬러 문항’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급하게 발표된 정책 탓에 교육 현장은 전혀 변화하지 못했다.
실제로 종로학원에서 고3 수험생과 졸업생 671명을 대상으로 7월 14일~21일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 ‘출제기조 변화에 따라 본인의 수능 준비가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답변이 67.6%였다. ‘9월 모의평가 이후 결정하겠다’는 답변은 18.9%였다.
기자가 만난 수험생들 역시 킬러문항 배제 정책에 반대했다. 해당 정책이 상대평가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관영씨는 “킬러문항이 사라지면 지금 당장 내 점수는 높아질 수 있으나, 다같이 성적이 오르기 때문에 (해당 정책이) 좋은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서윤씨는 “상대평가인 이상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킬러문항 배제 정책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해당 정책은 보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사 유현진씨는 “킬러문항을 풀이할 수 있는 학생은 극소수고 대부분의 학생은 문제를 찍기 때문에, 차라리 준킬러문항을 출제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런 사안은 충분히 논의되고 시간이 확보된 상태에서 발표돼야 하는데, 그런 절차 없이 급하게 도입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박수현 고려대 가정교육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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