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공기가 자살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BBC 퓨처팀이 그 증거를 살펴봤다.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쉬운 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 자살은 공중 보건의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70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WHO는 매년 세계 자살 예방의 날(올해는 9월 10일)을 통해, 자살로 인한 사망 규모와 그 원인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자살률은 약 40% 증가했다. 작년만 해도 미국에서 약 5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1분마다 한 명씩 세상을 떠난 셈이다. 현재 미국은 부유한 선진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군(한국의 자살 사망자는 2020년 통계 결과, 인구 10만명당 24.1명으로, OECD 평균 자살률 11.1명의 2배를 넘는 수치다)에 속한다.
이러한 죽음을 막는 일은 굉장히 까다롭고 특효약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학계에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정치인과 공중 보건 당국이 자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특히 이 방법은 정신 건강 관리 서비스 제공에 투자하거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 등 기존의 대응책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덴마크가 예가 될 수 있다. 2018년 사이언스 저널에 실린 한 연구는 덴마크가 가장 위험한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자살 예방 클리닉을 세워 자살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에 언뜻 봐서는 관련 없어 보일 수 있는 '대기질 개선'이 잠재적 자살 예방 연구에서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대기 오염도 증가와 자살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한 여러 연구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증거를 활용해 무엇을 해야 할까?
연구 결과는?
2021년, 예일 대학의 허슬기 교수 연구팀은 대기 오염과 자살 사이의 연관성을 다룬 18개의 연구를 리뷰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특정한 요인들이 자살 위험 증가와 유의미한 연관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무 화덕과 산불에서 나오는 물질, 건설 먼지 등이 그 요인에 속했다. 또한 산업 시설에서도 나오고, 화석 연료 연소 과정 및 일부 차량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황 및 이산화질소가 자살 위험 증가와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인 것이다.
이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LC)의 이소벨 브라이트웨이트가 이끈 2019년 연구 리뷰와도 맥을 같이 한다.
브라이트웨이트와 동료들은 다양한 연구의 데이터를 분석해 부유성 고형물(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 3일간 자살 위험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 리뷰는 또한 장기간 대기 오염에 노출되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가설도 지지했다.
이러한 연구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많이 진행됐다. 하지만 최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국립경제연구국에서 발표한 미국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미국 도시에서 제곱미터당 미세먼지가 1마이크로그램 증가하면 일간 자살률이 최대 0.5%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논문은 다른 연구와 달리, 동료 심사를 거친 저널에 게재되지 않았다.)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확실하게 그 매커니즘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우선 폐로 유입되는 대기 오염은 혈류와 뇌로 가는 산소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자살과 관련이 없는 도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이는 다른 영향 중에서도 인지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자살 위험의 경우, 연구자들은 공해가 뇌에 염증을 일으키고 세로토닌 결핍을 유발하며 스트레스 반응 경로를 방해해, 우울한 상태에서 나오는 행동과 충동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오염된 공기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브레인 포그'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예일대와 UCL 연구팀의 연구 리뷰는 공해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메커니즘과 요인을 완전히 밝히기보다는 통계를 비교하는 식으로 연관성을 살펴본 것들이다
상관관계를 조사하는 모든 연구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다른 환경적 영향이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허 교수와 동료들은 자살과 고온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연구를 검토한 결과, 더운 날과 자살률 증가 사이에도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공동 저자인 예일대학교의 미셸 벨은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기온이 7℃ 상승하면 자살률이 9%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이 더워지면 더워질수록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 오염을 조사한 많은 연구들은 더운 날씨가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 오염과 더운 날씨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때문에 두 가지의 영향을 분리하기는 쉽지 않다.
허 교수와 동료들은 기온이 높아지면 대기 오염이 급증할 수 있고, 사람들은 더운 날 창문을 열어 대기 오염을 흡입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썼다.
과학계에서 확실하게 밝히지 못한 또 다른 영역은 대기 오염이 남성과 여성의 자살 충동에 차등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다. (자살 충동은 남성에게 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작년 자살자의 약 80 %가 남성이었다.)
대기 오염 자체가 이미 대중에겐 나쁜 소식 아닌가?
오염된 대기를 흡입하는 게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좋지 않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9월 7일은 유엔이 정한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청정 대기의 날'이었다. 이날과 관련된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은 대기 오염이 가진 건강상의 위험을 강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오염 입자가 폐, 혈류 및 신체 깊숙이 침투하여 뇌졸중, 만성 호흡기 질환 및 폐암으로 인한 사망의 약 3분의 1 및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의 4분의 1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지식이 자살 예방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덴마크 등의 경험에 따르면, 자살률을 성공적으로 낮추려면 지역 및 국가 차원의 다양한 개입이 필요하다. 대기 오염은 자살 가능성을 몇 퍼센트 포인트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대기 오염을 제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허 교수와 동료들은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자살과 대기오염의 연관성이 확인되고 그 연관에 대한 설명이 보다 정교해지면, 공기의 질이 나빠질 때 대중에게 경고하고 인지 활동을 벌여야 할 더 많은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사막화와 가뭄,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며, 이 모든 것이 대기 오염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문제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면, 이에 대한 보다 시급한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를 방문하거나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등에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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