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대낮에 뜬 별, 고흐 -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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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대낮에 뜬 별, 고흐 -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문화매거진 2023-09-11 10:23:40 신고

▲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빈센트 반 고흐, 1888년경,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92x72.5 cm, 오르세 미술관
▲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빈센트 반 고흐, 1888년경,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92x72.5 cm, 오르세 미술관


[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생기 넘치는 것들조차 자취를 감추고 차분해지는 시간,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 돼서야 미미했던 낮의 존재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아무리 빛나도 낮엔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이 무색하게, 밤에는 오직 자체 발광하는 것들만이 살아남는다.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함부터 은근한 평안함까지 주는 밤하늘은 대낮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이보다 밝게 빛나는 별은 꿈에도 본 적 없다. 고흐의 화폭에 등장하는 별은 마치 눈 위를 처음 걸어간 발자국처럼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눈에 비친 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헤아릴 수 있다.

이토록 멋진 밤을 그려낸 고흐가 사랑에 빠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이 아닌 빛이었다. 그가 당시 머물던 프랑스 파리의 햇빛에 만족하지 못하고, 긴 여름과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남쪽, 아를로 향했다. 이곳에서 탄생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론강을 배경으로, 가로수와 건물들, 강에 비친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들이 아름답게 등장한다. 아를에 오기 전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고흐의 삶은 남쪽의 햇살과 함께 조금은 따사로워졌음이 분명하다.

빛과 어둠이 반목하지 않고 서로에게 없는 것을 밀고 당기며 채워준다. 하늘과 강, 땅과 연인은 모두 하나 되어 존재할 수 있음을 고흐는 그림으로 힘차게 전한다. 검은색 대신 푸른색으로 표현한 어둠, 그와 대비되는 노란색으로 표현된 빛은 각자의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며, 밤의 무서움을 너무나도 손쉽게 걷어버린다. 

한 세기를 훌쩍 넘은 그림이지만 캔버스에 올라간 물감은 막 바른 듯 생생하다. 한편, 수백 번을 칠해 매끄러운 화면을 완성했던 전통적인 그림과 달리 고흐의 붓질은 눈에 훤하게 남는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 것인지 정돈되지 않고, 짧게 끊어진 붓 터치는 감정과 함께 요동친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거친 붓 터치 등으로 왜곡된 화면을 보여주는 고흐의 그림에는 무엇 하나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재현 대신 개성적인 표현으로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그의 위치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비치는 표현 방법은 수많은 화가 중 고흐의 그림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해준다.

정답이 없는 예술계에서 고흐의 인상은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면서 좌중을 압도한다. 신비로움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로 그림을 보자마자 감정을 일렁이게 만들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고흐의 그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혹평은 물론 고흐가 살아있는 동안 판매된 작품은 단 한 점으로, 직업 화가로서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평생 빛을 쫓았기 때문일까. 애석하게도 세상을 등지고서야 세상이 정의한 빛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차츰 자리를 잡고 있던 인상주의 화풍과 더불어 고흐의 기구한 삶이 세상에 알려지며, 졸작의 평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한 번쯤은 간절히 만나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

생전 고흐에게 아직 밤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 그는 단 한 순간도 밝게 빛나지 않은 적 없다. 때에 맞지 않게 빛나던 고흐에게,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긴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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