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4일 오후 1시, 가게 안은 적막하다. 선반 위 친환경 제품들엔 먼지가 가득한 가운데 빗소리만 가게를 가득 채웠다. “지구한테 미안해서”, 제로웨이스트샵 ‘지미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김유리(37) 씨는 가게 겸 사무실의 축소 이전을 준비 중이다. 보통 한 달간 가게에 방문하는 손님이 한 손에 꼽을 정도여서다. 기자와 2시간 동안 대화하는 중에도 내놓은 가게를 보러 온 사람 외에는 아무도 만나볼 수 없었다.
‘제로웨이스트’란 재활용과 재사용을 권장하면서 자원이 낭비되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자원 보호 원칙을 말한다. 완성된 제품뿐 아니라 포장재, 원료의 모든 생산, 소비, 회수 과정에서 자원을 보호하고자 한다. 제로웨이스트샵은 그러한 활동을 실천하고 이끄는 가게로, 주로 친환경 세제나 대나무 칫솔 등 친환경 생활용품들을 판매한다.
2021년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10여 개에 불과했던 가게가 200여 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가게는 2022년부터 하나둘 문을 닫았고, 겨우 살아남은 가게들도 최소한의 인건비만 건지는 수준에서 연명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알맹상점’을 운영 중인 고금숙(46) 씨는 “제로웨이스트의 유행이 한풀 꺾이고 더는 신선하게 여겨지지 않자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알맹상점은 서울 마포구 망원역과 서울역 쪽에 두 개의 지점을 운영하는데, 어렵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18일 방문한 망원역 지점은 넓은 가게 안에 재활용 컵, 리필용 세제, 유기농 면 생리대, 실리콘 지퍼백 등 많은 제품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직원들은 애꿎게 제품을 반복해서 정리하거나 연신 타자를 두들겼다. 알맹상점을 한두 차례 이용해 본 박재현(22) 씨는 “우선 너무 멀어서 잘 안 가게 되고 한 번 체험해 보는 데 그치게 됐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샵 점주들은 팬데믹 여파로 손님이 없다고 위로했지만, 팬데믹이 끝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의 적극적 참여자가 아닌 한, 사람들은 값싼 제품을 편리하게 사는 것을 선호했다. 주부 전경진(50) 씨는 “제로웨이스트샵 제품들은 가격이 비싼 편이며 가게가 멀리 있어서 그냥 집 앞 마트에서 생필품을 구입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가게가 많지 않아서 제품을 사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한 차례 제로웨이스트샵을 이용해 본 정지안(21) 씨는 “대형 제로웨이스트샵을 제외하곤 제품군이 다양하지 않다”며 “샵을 이용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편이라 자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님이 줄면서 제로웨이스트의 근본 취지마저 훼손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지미프로젝트’를 공동 운영하는 이현승(34) 씨는 “제품은 판매가 안 되면 다 재고로 남아 결국 폐기되므로 ‘제로웨이스트’라는 의도가 무색해진다”고 했다. 사람들이 안 사면 제품은 폐기되어 제로웨이스트 정신과 반대로 오히려 낭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울시 지원에도 수익 나지 않아
"친환경 제품에 익숙한 날 기다려"
서울시는 작년부터 ‘제로마켓’ 사업을 시행해 가게당 약 200만 원을 지급해 테이블과 키오스크 등 필요 물품을 일부 구매하고 교육홍보비로 사용하도록 했다. 교육홍보비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직원이나 지역주민을 교육하는 비용이다. 즉 외부 강사에게 지급되는 돈이기에 가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씨는 “결국 샵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게 없고, 교육 진행 시 장소에 대한 홍보 효과는 있어도 미미하다”고 전했다. 이번 2023년 지원금은 약 250만 원으로 늘었지만, 작년에 지원금을 받은 가게는 제외되고 2호점 이상 분점이 있는 사업자만 해당이 됐다. 지원이 없으면 폐업의 위기를 겪을 가게들은 도움조차 얻을 수 없었다. 지원책이 마련된다기에 기대했던 대표들은 불만에 열을 올렸다. 제로샵 커뮤니티에서 담당자에게 건의도 해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성동구에서 ‘베러얼스’를 운영하는 문혜민(42) 씨도 체감되는 지원책이나 제도가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았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대표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원하고 있다. 분점이 없는 사업자들도, 월세처럼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비용을 지원받고 싶다고 말한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투리빙’ 대표 엄익선(29) 씨도 “운영에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인건비와 월세 지원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는 단순히 사업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구색을 맞추는 일시적인 캠페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많은 이들이 친환경 제품과 제로웨이스트에 익숙해지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억지로 ‘환경을 위해 행동하라’가 아니라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제로웨이스트샵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표들은 단순히 돈 잘 버는 가게가 아니라 ‘모두가 친환경 제품에 익숙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지원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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