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는 장내 박테리아를 완전히 파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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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는 장내 박테리아를 완전히 파괴할까?

BBC News 코리아 2023-09-02 11:47: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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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 접시 위 박테리아 배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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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는 현대 의학의 필수품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상적인 박테리아 시스템도 손상시킬 수 있다.

우리 몸에는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그 수는 수 조에 달할 정도로 많은데, 특히 장에 가장 많이 모여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항생제를 복용할 때마다, 이들 역시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것은 아닐까?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대장항문외과 고문인 제임스 킨로스는 “인간의 장에 있는 미생물 생태계는 미생물 및 이들이 우리 체내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로 구성된 복잡한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는 면역 체계를 조절하고 소화를 돕는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 생태계에 대한 가장 커다란 위협 중 하나가 항생제라고 말한다.

박테리아 감염 치료 및 예방에 주로 사용되는 항생제는 현대 의학의 초석이다. 그러나 항생제는 감염의 원인이 된 박테리아를 없애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우리 몸속에 있는 다른 박테리아도 손상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과학자들 사이에서 ‘늘어나는 항생제 의존은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0년부터 2015년 새, 전 세계 항생제 처방량은 65% 늘었다. 이로 인한 문제는 크게 장내 미생물 생태계 손상과 항생제에 대한 박테리아의 내성 증가 2가지다.

손에 놓인 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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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는 현대 의학의 초석이지만, 남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 의대 교수인 가우탐 단타스는 “항생제는 복잡한 장내 미생물 군집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박테리아가 내성 유전자를 병원성 박테리아에 전해주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장내 미생물이 다양하면, 장 건강에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항생제는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성 박테리아만 죽이지 않는다. 장 안에 있는 모든 박테리아를 공격해, 항생제를 복용할 때마다 장내 박테리아의 다양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단타스는 “항생제에는 (치료 외에) 부차적인 영향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숲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상황이라고 해보죠. 우리가 항생제를 사용하는 방식은 숲에 융단 폭격을 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죽이는 겁니다.”

단타스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감염 후 항생제를 복용한 사람들의 미생물 군집을 추적 조사한 결과 미생물 군집 다양성은 대부분 몇 달 안에 회복됐다. 하지만 유익한 박테리아가 다시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단타스 연구팀은 연구실과 연계된 소아병원에서 치료받는 아이들의 분변 샘플을 연구해 왔다. 감염 및 항생제 투여 전에 정기적으로 채취된 샘플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나중에 감염이 생겨 항생제를 복용한 어린이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려 했다.

단타스 연구팀은 샘플을 36주 이전에 태어난 조산아와 36주 이후에 태어난 만삭아 등 2개 집단으로 나눴다. 그리고 항생제 투여 이후 장내 미생물 군집의 변화를 비교했다.

그는 “항생제 사용 후 성인에게 나타나는 효과가 아기에게선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며 “미생물 군집 다양성이 더 크게 감소하고 약물 내성 유전자가 급증한다”고 말했다.

항생제로 인한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고, 나이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한 번의 항생제 복용으로도 영구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킨로스는 “어떤 사람들은 항생제로 인해 체내 미생물 생태계가 쉽게 손상된다”며 “그렇게 생태계가 극적으로 달라지고 나면, 항생제 복용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다양성이 손실되고 있습니다. 수십만 년 동안 우리를 지탱해 온 중요한 미생물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과학자들은 항생제 사용이 장내 미생물 군집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이에 따라 건강에 나타나는 효과를 여전히 밝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박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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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성 박테리아가 항생제 치료에서 살아남은 양성 박테리아로부터 내성을 얻어낼 수도 있다

킨로스는 “항생제는 체내 미생물 생태계의 모든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수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직 모르는 복잡하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미생물의 기능에 영향을 줍니다.”

킨로스는 장내 박테리아에 대한 영향뿐만 아니라, 면역 체계 발달에 대한 부차적인 영향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연구에 따르면, 항생제를 반복적으로 복용하면 그 효과가 누적된다. 또한 폭넓은 효능을 지닌 항생제를 복용하면 그 영향이 더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흔히 “다중 충격 가설”이라고 부른다.

단타스는 “이러한 무차별적 확장은 때로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항생제를 복용하는 것은 마치 스스로를 대상으로 괴상한 진화 실험을 하는 것과 같죠.”

항생제 장기 복용의 또 다른 위험은 내성이다. 박테리아 군집이 항생제에 노출되면, 보통 항생제에 내성 유전자가 없는 박테리아가 죽는다. 반면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가진 박테리아(환경으로부터 획득한 유전자나 자연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는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항생제는 항생제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를 적극적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이러한 적응에 따른 보상을 병원성 박테리아가 가져갈 때 문제가 발생한다.

단타스는 “항생제를 사용하면 장내 미생물 군집에서 약물 내성 유전자가 증가할 가능성도 이에 비례해 커진다”며 “그렇게 되면 나중에 출현하는 병원균이 이러한 내성 유전자 중 일부를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진화 및 미생물학을 가르치는 크레이그 맥린은 이 과정이 장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내성 박테리아는 장에서 다른 부위로 이동할 수 있어서, 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 몸의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항생제가 체내에서 작용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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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은 장 건강과 광범위한 면역 체계에 장기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항생제의 해로운 영향과 항생제가 생명에 미치는 영향은 전 세계 과학자들을 괴롭히는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아직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항생제의 해로운 영향을 완화할 방법은 있다.

킨로스는 “항생제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놀라운 의약품”이라며 “매우 귀중하고 필수 불가결한 자원이지만, 정확한 타겟팅 방법을 알고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린에 따르면, 현재 학계에선 특정 박테리아를 표적으로 하는 항생제와 신체 부위를 보다 세밀하게 공략하는 항생제를 연구하고 있다. 제거하고자 하는 박테리아만 제거하고, 장내 유익한 박테리아는 남겨두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리즈 대학 미생물학과 교수인 앤서니 버클리는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은 식단이라고 말했다. “체내 미생물 생태계의 구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영양”이라는 것이다.

리즈 대학의 의료 감염 연구팀은 지난 20년 동안 항생제가 체내 미생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리즈 대학 의학 및 보건학부 연구원인 이네스 모우라는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장내 미생물의 종류도 다양해진다”며 “특히 섬유질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다양한 영양소가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항생제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방법을 실험 중이다.

버클리는 식이섬유가 체내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단쇄지방산을 생성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쇄지방산은 결장을 감싸고 있는 세포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단쇄지방산을 생성하는 미생물이 고갈돼,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식이 섬유를 섭취하면 미생물이 성장하고 단쇄지방산을 생산할 수 있는 기질(결합조직의 기본물질)이 만들어져, 다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이론이죠.”

요거트와 과일, 곡물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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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질이 풍부한 식단은 건강에 이로운 박테리아에 유리한 장내 환경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항생제 사용의 근본적 역설은 항생제를 복용할 때마다 우리 몸의 감염 퇴치 능력이 저하돼, 항생제 의존도가 더 높아진다는 점이다.

킨로스는 “(감염 대처에서) 항생제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대신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해 체내 생태계의 생물학적 회복력에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생후 초기에는 항생제가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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