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한국 증시는 장기 횡보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라는 유동성 모르핀을 맞았던 2020년 장세가 예외였을 뿐 코스피는 다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박스권으로 회귀하고 있다.
중국의 고성장을 등에 업고 코스피가 처음 2,000p대에 도달했던 시기는 2007년 7월이다. 이후 16년이 넘게 지났지만 코스피는 2,500p대에 머물러 있다. 2,000p대 도달 이후 16년 동안 코스피 상승률은 25.6%, 연평균 수익률은 1.4%에 불과하다. 배당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지만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이 투자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돌려줬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증시 역사에서 코스피의 장기 횡보는 드문 일이 아니다. 1979~84년 코스피의 연율화 수익률은 -1.7%였고, 1989~2003년에도 연평균 수익률이 -0.7%로 부진했다. 코스피가 안정적으로 3년 이상 상승했던 장기 강세장은 3차례 있었는데, 모두 한국 경제의 활력이 넘칠 때 나타났다.
중동 건설 붐이 있었던 1972~78년(28.9%), 3저 호황이 있었던 1985~88년(58.5%), 중국 특수를 누렸던 2004~07년(23.6%)에 코스피가 추세적으로 상승했다.
최근 경험하는 코스피의 장기 정체는 한국 경제의 활력 저하와 맞물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특수의 약화 때문이다.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에서 '차이나 리스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시기가 대략 10여 년 전쯤이고, 이후 중국 고성장의 최대 수혜를 누렸던 한국 증시도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가는 기업이익의 그림자다. 기업이익이 꼭 거시경제 사이클을 복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조업 강국인 한국 주식시장에는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기 순환형 종목들이 많이 포진돼 있어, GDP(국내총생산)를 비롯한 전반적인 매크로 성장이 코스피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해왔다.
코스피의 장기 정체는 투자자의 미덕으로 거론되는 'Buy & Hold'(매수 후 보유) 전략의 실효성을 낮춘다. 코스피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에선 장기 보유의 실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증시의 변동성이 기조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도 어떤 면에서는 투자자들의 운신 폭을 좁힌다. 코스피의 변동성은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1990년대 코스피는 500~1,000p의 장기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시장에서는 위험과 기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곤 했다.
시장의 변동성이 크면 트레이딩을 통한 수익률 제고를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코스피 변동의 진폭이 매우 축소된 요즘 한국 증시에서는 이런 기회를 잡기 힘들다. 단기 트레이딩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 투자의 실익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트레이딩을 통한 수익 제고도 여의찮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 증시의 변동성 축소는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역동성은 약화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시장의 평균적인 성과를 나타내는 코스피를 추종하는 투자를 하면 장기 투자든, 단기 트레이딩이든 큰 성과를 보기 힘든 시장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ETF 투자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추종 ETF보다 각종 테마·섹터 ETF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상황의 반영이다.
한편 코스피의 장기 정체는 주가 양극화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다수 종목군이 정체되고, 소수 종목군이 상승하는 흐름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코스피는 20개 세부 업종지수로 구성돼 있는데, 코스피가 2,000p대에 올라섰던 2007년 7월 이후 연율화 수익률 1.4%에 불과했던 코스피보다 성과가 나았던 업종은 5개에 불과했다.
전기전자·비금속광물·의약품·화학·서비스 등 5개 업종만이 코스피 대비 초과수익을 기록했다. 반도체와 바이오·배터리·플랫폼 등 성장에 대한 기대가 투영될 수 있었던 종목들이 속해 있던 일부 업종만 좋은 성과를 기록한 셈이다.
한국 증시에서의 투자는 숲보다 나무를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고, 시장 추종적인 순수한 패시브(passive) 투자보다 철저하게 종목별로 투자하는 바텁업(bottom-up)식 접근이 요구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sigo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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