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가상자산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된 가운데 여야가 본인만 공개할 수 있도록 합의한 내용을 두고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진행하는 국회의원 코인 보유·거래 내역 전수조사가 '구색 갖추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여론 안팎에선 코인 내역을 본인만 공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본인뿐 아니라 가족 등 전부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사건건 싸움 일삼던 국회, 가상자산 전수조사는 '본인만 공개'로 일사천리 합의
지난 5월 김남국 무소속 의원(전 더불어민주당)의 코인 대량 보유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전수조사 움직임이 등장했다. 최초 코인 전수조사를 제의한 것은 정의당이다. 당시 정의당은 권익위에 자당 의원들의 금융거래 조사를 요청했다. 정의당은 의원 모두가 개인 정보 활용동의서를 제출해 권익위가 코인 지갑과 금융기관 사이의 돈이 오간 정황을 확인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정황상 이상 흐름이 생기면 해당 의원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것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가상자산 전수조사 관련 논의는 2달이 넘도록 이어졌고 결국 배우자와 가족은 제외하고 국회의원 본인에 한정하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여야 합의에 따라 전수조사는 국회의원 본인만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당초 권익위가 본인과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코인 보유·거래 현황을 조사하기 위한 동의서 양식을 국회에 보냈으나 국회의원들이 거부한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현재로선 공직자 누구도 가상자산에 대해 공개 등록할 의무가 없다"며 "가상자산 전수조사는 국회의원만이라도 지금까지 거래 내역에 대해 공개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적 의무가 없는 것을 국회의원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이 동의하도록 하는 게 법적으로 바람직한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법적으로 권익위가 조사할 권한이 있는 게 아니고 저희가 위임해 권익위가 조사하는 것이다"며 "국회에서 어떤 범위로 동의하는지에 따라 권익위 업무 범위가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익위 동의서 양식을 수용할 건가 말건가의 문제는 아니고 필요하면 여·야가 권익위와 협의해 동의서 양식을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고 밝혔다.
사사건건 부딪히던 양당은 가상자산 전수조사 문제만큼은 통일된 모습을 보였다. 양당은 소속 의원 전원으로부터 권익위 전수조사를 위한 본인의 개인 정보 제공 동의서 서명 작업을 마무리했다. 코인 거래소 계좌와 입·출금 거래를 한 타 계좌의 거래내역에 대한 정보제공 동의도 받아 권익위에 제출할 계획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국회의원 가상자산 조사에 여론 반발…"K-국회 코미디"
가상자산이 처음 등장하면서 이를 재산에 포함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말들이 많았다. 결국 국회는 논의를 거친 뒤 공직자윤리법과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가상자산을 등록재산에 포함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국회의원과 배우자, 직계존비속도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국회가 공직자윤리법·국회법 개정안에는 기존의 재산공개 기준처럼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가상자산도 포함돼 있다. 단지 법 개정 효력이 발효되는 시점이 올해 말이다. 법 개정 효력이 발효되기 전까지는 효력이 없다는 의미다. 법 개정의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제기된 것이 전수조사다. 제도의 개정 취지대로라면 당연히 배우자와 가족을 이번 전수조사 대상에 포함해야 하지만 실상은 다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 안팎에선 이번 가상자산 전수조사가 사실상 '보여주기'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국회의원 본인에 한정된 조사는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이해충돌의 해소를 위한 전수조사라는 사회적인 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드시 국회의원 본인을 포함해 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김용태 국민의힘 前 최고위원은 개인 SNS를 통해 "다른 종목의 공직자 재산신고 기준을 고려할 때 직계 가족의 내역도 공개하는 게 당연하다"며 "그럼에도 본인 한정 합의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 반드시 설명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K-국회의 코미디다"고 비꼬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관계자는 "가상자산도 재산공개에 포함돼야 하고 전수조사 및 공개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다만 개인의 재산 중 일부의 경우 본인의 자발적인 신고가 뒷받침돼야 하는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귀금속이나 무기명 채권, 현금 등과 마찬가지로 탈중앙화된 가상자산은 타인이 이를 추적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전수조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권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가상자산을 통해 사회통념을 벗어나는 경제적 이익을 취한 사례가 있었고 의정활동과 관련한 이해충돌 의혹도 제기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본인에 한정된 조사는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국민 관심이 뜨거울 때는 다 공개할 것처럼 하다가 말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코인 거래 목적 자체가 세금 탈루 및 재산은닉에 있어 회피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유층의)코인 거래의 주목적은 세금탈루 및 재산은닉에 있다"며 "따라서 가상자산 거래가 공직자윤리법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어서 전수조사에 당연히 배우자와 가족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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