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K 등 대기업과 여러 스타트업에서 근무단축 시행
[아시아타임즈=오승혁 기자] 1926년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토요일과 일요일에 기계의 운행을 강제로 중단했다. 이렇게 시작된 '주5일제'는 빠르게 미국의 여러 기업에 전파되었다. 노동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시작한 이 제도는 12년 뒤인 1938년에 미 정부가 법령을 제정하고 근로시간을 주40시간으로 줄이면서 정착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다양한 산업군에서 여러 기업이 주40시간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주4일제' 근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진행한 매출액 1000대 기업 인사 및 노무 담당자 대상 '근로시간제도 운영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67%는 생산성 및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향상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한 기업 10곳 중 7곳은 임직원 복지 및 워라밸 상승을 돕는 새로운 문화의 도입 및 정착이 회사의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약 3년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취업준비생과 직장인 모두의 워라밸에 대한 니즈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평생 직장'이라는 표현 자체가 해묵은 사전 속 단어처럼 여겨지는 시대상 속에서 2030 세대 직장인들은 일보다는 개인의 삶과 가정 생활을 우위에 둔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19∼29세 근로자 중 2021년 일을 우선시한다고 답한 이는 35.8%로 2년 전의 2019년 조사 결과에 비해 약 15% 줄었다. 반면 가정생활을 우선한다는 응답은 약 20%로 5% 넘게 늘었다.
이런 시대상과 구성원 및 미래 인재의 요구에 맞춰 삼성과 SK를 비롯한 대기업과 여기어때를 비롯한 스타트업들이 주4일제로 여겨지는 근로 시간 단축 및 근로 형태 변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주4일제를 시도했던 카카오와 에듀윌 등은 다시 원래의 근무형태로 복귀하는 등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부터 노사 협의에 따라 반도체 부문에서는 '패밀리데이', 디바이스경험 부문에는 '디벨롭먼트데이'로 이름 붙인 새로운 문화를 도입했다. 부문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필수 근무시간을 모두 채우면 연차 소진 없이 21일(급여 지급일)이 들어있는 주의 금요일을 쉴 수 있다.
필수 근무시간을 모두 채워야 하는 만큼 월 1회라도 완전한 주4일제를 도입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족, 개발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이름에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시간을 통해 삼성전자의 구성원들은 쉼과 성장을 모두 이룰 수 있다.
이보다 3년 앞서 SK텔레콤은 2020년부터 그리고 SK하이닉스는 지난해부터 '해피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부분 주4일제를 시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매달 둘째주 금요일에 SK텔레콤과 SK스퀘어는 격주 금요일에 필수 인력을 제한 모두가 출근하지 않는다. 회사 전체가 쉬는 셈이다. 어쩔 수 없이 근무한 인력도 다른 날에 쉴 수 있어 사용률이 거의 100%에 달한다.
여행 및 숙박 플랫폼 여기어때는 전 직원이 4.5일제 근무를 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오전까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1시에 출근하는 것이다. 토스의 경우 모든 구성원이 '얼리 프라이데이'(Early Friday) 제도를 통해 금요일 오후 2시 이후에는 자유롭게 퇴근한다. 문화의 정착을 위해 금요일 오후 시간에는 미팅, 인터뷰 등을 잡지 않는다.
하지만 대대적으로 주4일제 근무를 지하철역 광고 등을 통해 홍보하던 교육 기업 에듀윌은 업계 최로로 2019년에 도입했던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를 올해 초에 포기했다. 주4일제 실험이 기업에 효과적인 성장을 안겼다는 몇몇 기업과 달리 경영 악화에 따라 주4일제를 철회하자 기존 직원들의 퇴사가 이어져 더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업계의 후문이 나온다.
부분적인 주4일제 도입과 매월 특정한 주 금요일에 전 직원 반차 등을 도입해 임직원의 자기개발 및 휴식을 더 늘리는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의 몇몇 기업이 사회 실험처럼 진행하면서 스타트업 등에 퍼졌다. 그리고 이 문화가 대기업으로까지 확장된 것으로 본다.
허나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미국에서 주5일제가 안착된 뒤에도 70년 넘는 세월 동안 여러 반대 여론과 기우를 거친 끝에야 주40시간 근무는 한국 시장에 안착될 수 있었다. 지난 1988년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 뒤 도입 자체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었다.
경제 단체들이 지난 2002년에 신문에 광고한 주5일제 반대 목소리
그러나 1997년의 IMF 사태 전까지는 '빠른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불발되었고 그 이후에는 경제 위기 극복을 이유로 거절되었다. 2003년의 주40시간 법 통과 직전까지도 경제 단체들은 주5일제 근무는 한국 사회에 위기를 안길 것일며 여러 일간지에 광고를 내는 등 주6일제 근무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7월 전국의 모든 은행이 선제적으로 주5일 근무를 시작했다. 학교와 공기업은 2005년부터 100인 이상 사업장은 2006년부터 주40시간 근무에 들어갔다. 이후 2011년에 5인 이상 사업장으로까지 적용이 확장되었다.
주5일제를 시행하면 경제와 산업이 침체되고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적당한 휴식을 통해 취미와 여행, 교육 등의 각종 산업은 성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삶의 질을 높인 근로자들이 생산성 또한 높이면서 산업 전반에서의 성장세 역시 이상 없이 이어졌다.
주4일제 도입으로 더 큰 성장을 기록했다고 말하는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주4일제는 시기상조라는 걱정과 정반대의 결과를 낸 것이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두는 대기업이 근로시간 단축 실험을 진행하고 유지하는 것 역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HR 업계에서는 "주4일제 역시 정부 차원에서 법령을 도입하고 제도적으로 시행해야 전국에 확산될 것이다"라는 의견과 함께 "주4일제로 성과를 낸 기업의 사례가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적용이 확대되고 보편적인 근무 환경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이들 주장 모두 주4일제 역시 주5일제가 정착한 것처럼 언젠가는 당연해질 미래라고 보는 점은 같다. 이에 주4일제의 적용이 어떤 방식으로 언제 이뤄질지에 대해 산업 각층의 관심이 집중된다.
Copyright ⓒ 아시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