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과 용병 계약을 맺고 조기 석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죄수가 귀국 이후 다시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용의자 데미안 케보르키얀(31)은 지난 2016년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바 있으며, 최근 퇴근하던 젊은 남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케보르키얀은 혐의를 부인한다.
한편 BBC 취재 결과 케보르키얀 외에도 용병 계약을 맺고 조기 석방된 이후 다시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죄수들이 더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 SNS 채널에 올라온 전 재소자의 증언에 따르면 케보르키얀은 지난해 8월 31일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교도소를 방문해 모집한 재소자 150명 중 하나라고 한다.
BBC는 출소한 케보르키얀이 이후 고향 마을인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의 프리도로스나야에서 목격됐다는 소식과 함께,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은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돌아왔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한편 타티아나 모스티코(19)는 이번에 케보르키얀의 손에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모스티코의 어머니 나데즈다는 분홍색과 파란색 점프슈트를 입고 아이들의 파티에서 춤을 추고 게임을 주도하는 딸의 모습을 보여줬다. 모스티코는 어린이 파티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엔터테이너로 일했다.
나데즈다는 “딸은 자신의 직업을 참 좋아했다”면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들이 그날 무엇을 했고, 얼마나 아이들이 즐거워했는지 웃으면서 얘기해줬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모스티코는 지난 4월 28일 끝으로 다시는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상사 키릴 추브코가 모스티코를 자신의 차로 집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그러다 타이어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이들은 러시아 남서부 베레잔스카야 근처 갓길에 차를 세웠다.
추브코의 아내 다리야의 현지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추브코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귀가가 늦어질 것이라면서도 주변에 있던 청년 몇몇이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리야는 그날 이후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돼도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다리야는 경찰에 신고했다.
주민 수백 명이 경찰을 도와 이 외딴 시골 지역을 수색했다. 시베리아에 살던 모스티코의 어머니 또한 비행기, 기차를 타고 6시간을 달려 수색 현장을 찾았다.
나데즈다는 “비행기에서 내려 휴대전화 전원을 다시 켰는데 메시지가 끝도 없이 많이 와 있었던 순간이 가장 끔찍했다”면서 “정말 패닉 상태였다. 휴대전화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이 모든 게 의미하는 건 단 하나의 상황밖에 없었다. 모든 게 끝나버린 최악의 상황 말이다”고 덧붙였다.
“동물적인 육감으로 느껴지는 공포였습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후 케보르키얀을 포함해 총 3명이 용의자로 체포됐다. 다른 두 용의자는 아나톨리 드보이니코프와 아람 타토시안으로, 이들은 불에 탄 채 발견된 추브코의 차량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에 임시로 시신을 매장해 둔 곳으로 형사들을 이끌었다.
추브코와 모스티코에게선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됐다. 특히 경찰은 모스티코의 시신에선 “폭력적인 죽음을 당한 징후”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드보이니코프와 타토시안은 이후 강도 및 살인죄를 자백하는 한편 케보르키얀이 주범이라고 주장했으나, 케보르키얀은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한편 나데즈다는 과거 매우 비슷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18년 형을 선고받은 케보르키얀이 자유인의 몸으로 길거리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케보르키얀은 2028년 이후에나 출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케보르키얀은 갱단을 이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 갱단은 모스티코가 살해된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차량을 납치해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금품을 빼앗고 그중 한 명을 총으로 쏴 죽인 바 있다.
나데즈다는 “대체 어떤 법적 근거로 석방된 것인가”라고 물었다. 러시아 법에 따르면 재소자는 형기의 최소 3분의 2는 복역한 뒤에나 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데즈다는 “케보르키얀은 최소 12년 형은 살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고작 6년 만에 풀려났다”고 강조하면서 만약 제대로 법이 지켜졌다면 딸의 잔혹한 죽음을 막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힘겨워했다.
풀려난 이들은 누구인가?
한편 프리고진이 러시아의 한 교도소에서 똑같은 검은색 털모자를 쓴 채 일렬로 서 있는 죄수들을 향해 연설하는 모습이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해당 영상에서 프리고진은 자신은 여러 번 살해를 저질러본 이들이나 공무원 혹은 경찰관을 구타해 수감된 이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그러한 범죄적 재능이 필요하다”는 프리고진은 이어 용병의 10~15%는 “아연으로 된 관”에 실린 채 고국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만약 최전선에서 6개월을 살아남는다면 보너스로 10만루블(약 135만원)을 받고 집에 돌아갈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사면을 받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올해 6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돌아온 죄수들을 사면한다는 명령에 서명했다고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재범 비율은?
프리고진은 지난 1년 동안 무려 재소자 4만9000명을 모집했으며, 이중 3만2000명만이 살아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이는 모집 당시 약속했던 비율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살아 돌아온 죄수는 2만 명 정도로, 이보다 훨씬 더 적다고 한다.
한편 프리고진은 지난 1월 전과자였던 이들의 귀국을 환영한다는 영상을 통해 “당신들은 한 때 범죄자였으나, 이젠 전쟁 영웅이 됐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영웅” 중엔 현재 다시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이들이 적지 않다.
BBC는 강간, 살인 등을 포함한 약 20건의 중범죄 사건의 용의자가 과거 바그너 그룹에 고용돼 조기 출소한 죄수들인 것으로 확인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용병 출신 죄수들의 재범 비율은 일반적인 범죄자들에 비해 10~20% 낮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재소자 인권 단체인 ‘러시아 비하인드 바’의 올가 로마노바 소장은 기록되지 않은 범죄가 많다면서,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로마노바 소장은 이번에 새로 제정된 법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소위 “특별 군사 작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음해할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한편 다른 피해자의 가족들 또한 전과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고, 게다가 전쟁에서의 경험으로 더욱 잔혹해진 상태로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옥사나 페크텔레바에겐 베라라는 이름의 23살 난 딸이 있었다. 베라는 100여 차례 흉기에 찔린 뒤 전깃줄에 목이 졸려 죽었다. 너무나도 끔찍한 죽음이었기에 러시아 전역에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베라의 전 남자친구인 블라디스라프 카니우스가 살인죄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옥사나는 딸을 죽인 카니우스가 고작 1년도 안 돼 다른 곳에서 발견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5월부터 SNS에 카니우스의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진 속 카니우스는 군복 차림으로 총을 들고 있었다. 옥사나는 조작된 사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1달 후 옥사나는 당국으로부터 카니우스가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의 한 교도소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해당 교도소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용병으로 자원한 죄수들이 집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옥사나는 법원에 카니우스의 소재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국가 기밀이기에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옥사나는 마지막으로 알려진 위치와 군복 차림의 사진을 종합해보면, 현재 카니우스가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으리라 추정한다. 정말 사실이라면 카니우스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돌아올 경우 공식적으로 사면받게 될 것이다. 즉 자유인으로서 다시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이는 지난 몇 달간 딸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고자 투쟁했던 어머니 옥사나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다.
“(카니우스가 풀려나는 건) 마치 신성모독과도 같다”는 옥사나는 “이는 사회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사회의 모든 쓰레기 같은 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든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꼴”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한편 법조인 다수가 취재진에게 이러한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칙적으로 개인을 같은 사건에 대해 한 번 더 재판장에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을 다시 교도소로 돌려보낼 유일한 방법은 이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길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스티코의 어머니 나데즈다 등 피해자 유가족은 더욱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나데즈다는 자신은 케보르키얀에게 유죄 판결과 함께 종신형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을 모으는 일밖에 할 수 없다고 느낀다. 이미 해당 청원서엔 수만 명이 서명한 상태다.
나데즈다는 눈물을 훔치며 “집에선 이에 대해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나는 딸을 강탈당했고, 발밑에 땅이 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딸의 죽음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도, 이번이 그 범인의 첫 범죄도 아니라는 점도 잘 압니다 … 그래서 힘듭니다 … 그러나 전 멍청하지 않습니다. 저들은 범인에게 종신형을 선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가 보도: 로나 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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