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삼성의 신입사원 150여명이 전북 부안군 새만금을 찾았다. 현재 입사 후 직무연수 중인 이들이 서울에서 뜬금없이 새만금에 온 이유는 '환경미화'를 위해서다.
삼성이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잼버리) 정상화를 위해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4일부터 6일까지 주말 사이 연달아 지원책을 내놓고 잼버리 현장이 인력과 장비 등을 급파했다. 7일부터는 임직원을 투입, 참가자를 위한 활동도 펼친다. 삼성이 '계륵'으로 전락한 잼버리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재계 맏형 삼성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잼버리 삼폐소생에 나서자 주요 기업들도 이에 지원에 동참하면서 혼란스럽던 현장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불편한 기류도 감지된다. 정부 또는 지자체의 관리 부실을 기업들이 메워주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삼성, 잼버리 현장에 신입사원까지 투입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날부터 신입사원 150여명을 잼버리 현장에 급파했다. 이들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비롯한 환경미화를 돕는다.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는 그룹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동행 철학을 체득하자는 취지에서다. 이 회장은 지난해 회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협력사 사업장을 챙기는 등 상생협력과 동반 성장의 중요성을 거듭 역설해왔다.
삼성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회사 생활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체감하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 이전부터 신입사원 입문 교육에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포함시켜 왔다"며 "올해는 잼버리 혐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을 돕게 된다"고 설명했다.
잼버리 참가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을 시작했다. 평택·화성 반도체공장, 수원 삼성이노베이션 뮤지엄(SIM)을 견학할 수 있는 오픈 캠퍼스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하루 550여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참여 가능하다.
행사 정상화를 위한 인력, 물품 지원도 발빠르게 나섰다. 삼성병원 의료지원단은 지난 5일부터 진료활동을 시작했다. 온열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의료인력의 교대근무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백이 생기자 의료진을 급파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의사 5명, 간호사 4명, 지원인력 2명 등 총11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단은 12일까지 현장에 머무른다. 참가자 대부분이 청소년인 만큼, 소아청소년과 전문위를 중심으로 지원단을 구성하고, 응급의약품이 구비된 진료버스 1대, 구급차 1대도 파견했다.
부족했던 부대시설 역시 삼성의 지원으로 보충됐다. 삼성물산은 에어컨을 장착한 간이 화장실 7세트, 살수차 5대, 발전기 5대도 지난 5일 설치한 데 이어 행사장 내 이동을 돕기 위해 골프장 전동 카트 11대, 전기차 2대를 제공했다. 또 참가자들의 수분 보충을 위해 이온음료·비타민음료 각 10만개씩 총 20만개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제공했다.
재계 주요기업, 잼버리 정상화 총력 지원
삼성이 주말 동안 잼버리 지원 규모를 늘리며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자 재계 주요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LG그룹은 LG유플러스·LG생활건강 같은 주요 계열사들과 함께 지원활동에 돌입했다. 생수·이온음료 총 20만병을 제공하고 넥쿨러 1만개, 그늘막(MQ텐트) 300동, 휴대용 선풍기 1만대, 여행용 세면도구와 모기기피제·세제 등 위생용품 5만개를 지원했다. 냉방용품을 사용할 수 있게 보조배터리, 냉동탑차 6대를 투입했고, 12일 행사가 종료될 때까지 무료 충전스테이션을 운영한다.
또 안정적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이동기지국을 비롯해 5세대(5G) 이동통신 무선 와이파이 라우터, 유선 와이파이를 지원했다.
이와 별도로 그룹의 미래기술과 핵심 주력제품을 연구하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내 이노베이션갤러리릴 비롯해 LG전자 창원·구미 사업장의 스마트팩토리 견학, 경기 광주 생태수목원 화담숲의 자연 생태 체험 등 관광·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LG그룹은 야외 활동으로 폭염에 노출된 참가자들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상황에 따라 추가적 지원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그룹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건강하게 안전하게 참가자들이 일정을 마치는 게 중요하다"면서 "향후 추가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전북 완주에 있는 공장을 잼버리 참가자를 위해 열었다. HD현대 또한 지난 5일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3사 임직원 봉사단 120여명을 파견했고, 행사장 시설 보강에 들어갔다. 와 HD현대1%나눔재단이 함께 임직원으로 구성된 봉사단 120여 명을 긴급 지원했다고 밝혔다. 화장실 등 대회장 시설 정비를 비롯한 긴급 지원을 시작했으며 향후 대회기간 동안 위생 및 안전 관리 지원에도 나설 계획이다.
포스코그룹·SPC그룹·이마트도 지원군으로 나섰다. 포스코그룹은 쿨스카프 1만장을 보냈고, SPC그룹은 매일 빵·아이스크림 3만5000개를 행사가 끝날 때까지 참가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마트는 총 70만병의 생수를 지원한다.
기업들의 후원 속에 잼버리에 참가했던 기업들은 황급히 '뒷수습'에 들어갔다. 2배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 바가지 논란을 일었던 GS25는 지난 4일부터 생수 4만개를 매일 무상 공급 중이다. 그늘 텐트와 냉방 설비, 휴대폰 무료 충전 서비스도 추가했다. 잼버리 단체급식을 맡았던 아워홈은 부랴부랴 식단을 바꿨다. 단백질과 수분, 비타민 보충을 할 수 있도록 과일류를 대폭 늘리고 얼음, 냉수, 아이스크림을 제공한다. 또 배식대를 늘려 참가자들의 편의를 제고한다.
경제단체들도 지원의 손길을 보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냉동 생수 10만개, 대한상공회의소는 대형 아이스박스 400여개를 긴급 지원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아성다이소와 함께 쿨스카프 4만5000개를 보냈다.
'기업이 만능 치트키냐' 볼멘소리도
기업들이 잼버리 정상화에 발 벗고 나선 건은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경영과 무관치 않다. 잼버리 참가자는 세계 각국 청소년을 주축으로 구성돼 있다. 인원만 4만3000여명에 이른다.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고객에서 브랜딩을 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마케팅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국내 기업들의 발빠른 대응은 해당 기업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기 때문에 참재고객층을 확대하는 절호의 찬스인 것"이라며 "수십억 수백억의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현재 행사 정상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자체에선 스카우트 학생들에게 추억이 되는 잼버리가 되도록만 신경 써 달라"고 지시했다. 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을 맡는 컨트롤타워를 가동시켰고 △냉방 대형 버스와 냉장·냉동 탑차 무제한 공급 △관광 체험 프로그램 추가가 이뤄졌다.
문제는 정부의 총력전은 기업의 지원이 전제됐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주요 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지금 단계에선 최대한 신속하게 수습해 무사히 마치는 게 중요하다"며 "다만 원인제공자 따로, 뒷수습 따로인 상황인 것은 편치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얼마나 매끄럽게 사태를 봉합하느냐, 이 책임을 기업들이 진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는 조직위원회의 졸속 추진에서 비롯됐다. 폭염 대책을 제대로 강구하지 않았고, 행사장 시설 또한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됐다. 화장실, 샤워시설, 텐트와 같은 기본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응급의료인력도 충분히 지원되지 않아 생존게임'을 자초했다는 비판이다. 이미 영국·미국 등 주요국 대표단이 조기 철수한 가운데 관리 미흡으로 영내에서 성범죄까지 발생하면서 참가국 추가 이탈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경쟁국에 밀리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국제 행사 운영 능력에 의구심이 확대되는 걸 막아야 한다. 실제 외신에서 잼버리의 총체적 부실을 문제삼는 보도가 연일 쏟아져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기업들이 국격 실추를 막고,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심폐소생' 역할을 떠맡은 격이 됐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삼성의 경우, 잼버리 후원사인 삼성전자를 통해 참가자 전원에서 보조배터리를 지급했다. 최소로 잡아도 10억원 이상의 물품을 지원한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다급한 요청에 임직원까지 동원, 수습에 나섰다.
재계에서는 '친기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규제 완화 등이 전폭적으로 이뤄질 것을 기대해왔다. 투자 활성화를 촉진하고자 법인세 등을 완화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쉬울 때만 민관 협,력 원코리아를 강조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주요 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업은 소비자의 사랑을 먹고 자라기에 사회에 마땅히 기여해야 한다"면서도 "산불이나 집중호우, 지진 같은 '재해'는 아니지 않느냐. 정부와 지자체가 친 사고 수습을 기업들이 떠맡는 게 합당한 일인가라는 점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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