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범죄의 45%가 '우발적 동기'
좌절 경험 누적되면서 불특정 다수 향한 범죄로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분노와 충동 조절 장애는 개인적 감정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잔혹한 범죄로 분출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화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분노범죄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이고 만연한 현상이 된 지 오래다.
경찰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발생한 범죄 124만7천680건 중 23만8천243건(19.1%)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범죄였다. 경찰이 파악한 범행 동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욱'하는 감정을 순간적으로 참지 못해 저지르는 범죄가 전체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셈이다.
우발적 범행 동기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범죄에서 더욱 뚜렷한 경향성을 보인다.
2021년 발생한 폭행 등 폭력범죄 26만4천229건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범죄는 11만8천254건(44.7%)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실 불만'도 1천742건(0.7%)이었다.
또 살인·살인 미수 716건 중 246건(34.4%)이 우발적으로 발생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실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살인·살인미수도 39건(5.4%)이었다.
전문가들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분노가 질시, 열등감과 결합되면서 극단화하면 잔인한 계획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세간의 비상한 관심사가 된 또래여성 살해범 정유정(23)의 범죄가 이같은 축적된 분노가 잔인한 계획범죄로 이어진 사례다.
정유정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이면서도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피해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 범죄를 저질렀다.
범행 동기에 대해 검찰은 정유정의 공소장에 "자신의 분노를 소위 '묻지마 살인'의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적었다.
지난달 충격을 던진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역시 범죄 동기에서 긴 시간 쌓인 분노를 찾아볼 수 있다.
흉기난동범 조선(33)은 경찰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흉기난동이라는 방식이 혼란스럽고 즉흥적 형태로 보이지만 조선은 범행 전 해외의 흉기난동 사건과 급소를 검색해보는 등 계획적 범죄의 정황이 드러났다.
개인간 갈등이 원인인 범죄와 달리 사회와 타인을 향한 분노가 발단이 된 범죄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곤 해 범인의 표적을 종잡을 수 없어 예방이 더 힘들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 속에서 사회적 불만과 스트레스가 누적된 분노 감정이 폭발하면서 타인에 대한 공격적 범죄 형태로 표출된다고 분석한다.
한민 아주대 심리학과 겸임교수는 "소위 'N포세대'라 불리는 20∼30대는 특히 사회가 더 경직되고 취업이나 내 집 마련 등이 어려워지면서 좌절 경험이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림동 사건의 경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즉 불특정 다수에게 열등감이 표출된 것"이라며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행동화'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행동화란 말보다 행동을 통해 강한 감정을 표현하는 미숙한 자기 방어기제 중 하나로, 부정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무의식적 욕구나 소망을 억제하지 않고 즉각적이고 충동적 행동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분노 범죄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분노 조절 장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 구축에 눈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처벌과 함께 정신적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림동 흉기난동범처럼 과거 여러차례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고도 교화가 되지 않은 전과자는 언제든지 사회적 불만을 이유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재범을 저지른 전과자의 28.1%가 우발적 원인이 범행 동기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 교수도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개개인의 좌절 경험이 줄어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사회 안전망 확보 등 장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분노범죄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이뤄지는 것과 별개로 경찰은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분노범죄는 다른 말로 '이상 동기 범죄'라고도 부르는데 범행의 동기가 통상적이지 않은 범죄를 의미한다"며 "경찰도 분노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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