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의 거리 38.4만 km”
‘더 문’ 포스터에 적힌 문구처럼 지구와 달의 거리가 너무 멀었던 탓일까? ‘하이퍼리얼리즘’을 내세우며 과감하게 달을 향해 띄웠던 김용화 감독의 우주선 ‘더 문’호의 여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비단 SF를 즐기지 않는 관객 성향 때문은 아니다. 우주 영화가 가져야 할 미덕은 줄였고, 누군가는 ‘휴머니즘’이라 칭송하고, 누군가는 ‘신파’라 폄하하던 김용화식 드라마의 비중은 늘었다. 하여 280억을 쏟아부은 ‘우주’라는 배경에 “굳이?”라는 물음표가 달린다.
답습이란 양날의 검이다. 보장된 재미와 뻔한 이야기의 경계를 오간다. 하지만 ‘쌍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용화 감독의 작법이라면 이는 절세보검에 가깝다. 감독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관객은 눈물을 흘렸다. 스키점프장에서도, 심지어 구천지옥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하염없이 울다 보면 언젠가는 눈물도 마르는 법. 중력이 미치지 않는 우주, 그리고 달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저 눈가를 떠나 칠흑 같은 어둠으로 방울방울 표류할 뿐이다.
‘더 문’은 시작부터 슬픔을 위한 장치를 마련한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사연에 얽혔다. 심지어 초반에 우주에서 산화하는 2 명의 대원들(김래원, 이이경 분) 역시 지구에 임신 중인 아내와 가족을 두고 있다. 초반 5분을 장식하는 캐릭터의 사연부터 이리 구구절절하니, 설경구-김희애-도경수 등 주연급의 인과는 말할 것도 없다.
“우주에서 아이의 이름을 지어오겠다”는 대원과 아들이 좋아하는 고릴라(감독의 전작인 ‘미스터 고’로 추정된다) 인형을 흔드는 대원의 이야기가 어찌 눈물샘을 자극할 것인지, 이미 관객들은 충분히 알고 있다. 더불어 목숨을 날리기 딱 좋은 우주, 그것도 촌각을 다투는 와중에도 영화는 감정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을 우선한다. ‘더 문’을 SF가 아닌 드라마라 불러야 하는 이유다.
감정 몰입을 종용하는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는 패착에 가깝다. 특히 지구 쪽에 남아있는 배우들이 심각하다. 박병은, 조한철, 최병모 등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니 결국 전체를 조망했을 감독의 디렉션을 탓하게 된다. 여러모로 톤 조율에 실패한 모양새다. 긴박한 순간에도 느릿하고 평온한 대사가 이어지며, 맞지 않은 상황에 유머가 튀어나온다.
나아가 소위 말하는 옛날 스타일의 연기가 이어진다. 사고가 일어나는 영화 초반엔 긴박한 상황은 차치하고 대사마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음향 혹은 후시 녹음 탓일 수도 있다. 다행인 건 영화의 한 축인 설경구가 톤을 잡고 고군분투한다는 점이다. 지구 센터 안에서 유일하게 우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도경수 역시 달에 도착한 후엔 연기 톤이 정리된다.
CG와 VFX의 컷을 자주 나눈 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방편이었을 터다. 하지만 컷 전환이 빠르다 보니 우주 재난 상황 속에 긴박감이 방해된다. 우주 유영 상황과 세트를 활용했을 때를 비교해 보면 몰입도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더 문’ 주된 목적은 감동 코드에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우주여야 했을까?’라는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우리나라 영화로 우주를 그려냈으니 도전이라 부를만하다. 다만 달 착륙 우주선을 스크린에 띄우는데 280억 원이 들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SF를 표방했던 8부작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고요의 바다’도 약 2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아무리 스크린 속 세상이지만 우주라는 건 그토록 돈이 많이 드는 곳이다. 상업 영화라면 분명 헤아리고 가야 할 고난의 길이다.
그렇게 선택한 달을 향한 항해다. ‘더 문’이 내세운 카피처럼 관객으로부터 달까지 거리는 38.4만 km. SF를 선호하지 않는 국내 관객 특성을 알면서도 쏘아 올린 유인우주선이다. 달의 뒷편은 분명 미지의 세계이니 토끼가 살지는 않더라도 신비롭고 낯설어야 할 터, 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건 자주 봤기에 너무나 익숙한 김용화식 휴머니즘 감동 신파 뿐이다. 과연 그토록 멀고 먼 방대한 우주를 꼭 눈물바다로만 채워야 했을까?
영화 ‘더 문’은 오는 2일 개봉한다.
사진=CJ ENM
권구현 기자 kkh9@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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