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가족을 ‘인질’ 삼아 해외 거주 위구르인의 입을 막는 중국 정부

남은 가족을 ‘인질’ 삼아 해외 거주 위구르인의 입을 막는 중국 정부

BBC News 코리아 2023-08-01 12:18:15 신고

3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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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중국 당국이 해외에 거주하며 인권 운동을 펼치는 위구르인들의 입을 막을 수단으로 본국에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구르족 출신 망명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당국의 협박 전술로 위구르족 공동체가 분열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깜박거리는 화면에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랑하는 아들아, 살아생전에 널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구나.”

알림(가명)은 어머니와 화상 통화하던 그 순간 여러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고 회상했다. 그 영상통화는 알림이 영국으로 망명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접촉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통제하에 이뤄진 영상통화였기에 씁쓸함을 감출 순 없었다.

다른 모든 위구르인(주로 중국 북서부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 소수민족)처럼 알림의 어머니 또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 살아간다.

알림 모자는 절대 서로에게 직접 전화를 걸 수 없다.

대신 중개인이 휴대전화 2개를 사용해 알림과 알림의 어머니에게 각각 영상통화를 건다. 그리고 휴대전화 2개의 화면을 마주 보게 두면 비로소 알림 모자는 흔들리고 깜빡이는 화면 너머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잘 들리지 않는 스피커 너머로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알림은 어머니와 자신은 거의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며 통화를 마쳤다고 했다.

알림은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어머니 뒤로 보이는 흰색 민무늬 벽이 신장 자치구에 있는 어머니의 집인지, 혹은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 100만 명 이상을 구금한 것으로 의심되는 수용소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이러한 의혹을 오랫동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알림은 어머니와의 이번 통화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자의 전화를 중개해준 인물이 다름 아닌 중국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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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사는 위구르인들은 철저한 감시 아래 살고 있으며, 위구르인 100만 명 이상이 수용소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2019년 촬영된 자료 사진)

어머니와의 통화 후 알림은 그 경찰에게 다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위구르 인권 운동가들의 모임에 참석한 뒤 정보를 수집해 중국 당국에 보내라고 했다.

“영국 런던에서 반중 시위가 열릴 때마다 저들은 내게 전화를 걸어 참석자 명단을 물어봤다”는 알림은 스파이로 일하라는 통화 내용을 녹음해 BBC에 들려줬다.

그들은 알림에게 금전적 대가도 주겠다고 제안했다. 많은 이들이 영국 국적인 인권 운동가들과 가까워지고, 이들에게 밥도 사주는 식으로 친구가 되라는 설명이었다.

또한 그 경찰관은 알림에게 갑작스럽게 돈이 생겨 의심받을 때를 대비해 위장 회사도 설립하라고 제안했다. 이미 정확히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여러 사업체가 설립됐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을 거절하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위협으로 인해 알림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알림은 “저들은 내 가족을 인질로 삼고 있다”면서 “정말 암울한 순간을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정부가 해외 거주 자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이러한 수단을 초국가적 억압 행위라고 부른다.

연구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본국에 있는 가족과의 접촉을 화상 통화로 통제하는 등의 억압 행위는 특히 중국 경찰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영국 셰필드대의 데이비드 토빈 박사는 동료 니롤라 엘리마와 함께 이 주제에 대해 가장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해 온 전문가이다.

지금껏 중국 외 지역에 거주하는 위구르족 200여 명을 인터뷰하고 조사한 토빈 박사는 이들 모두가 초국가적 억압 행위의 희생자라고 지적했다.

토빈 박사는 “가족 분리가 가장 핵심적인 전술”이라고 설명했다. 즉 물리적으로 전화 신호가 통해 통화가 가능한 곳일지라 해도 중국에 사는 이들의 가족이나 친척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통화 내용이 감시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자유롭게 소통하다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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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빈 박사는 해외에 거주하는 위구르인 모두가 초국가적 억압 행위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이렇게 가족 간 연락을 두절시키면 중국 경찰이 영상 통화 등을 이용해 개입한다. 이들 위구르 가족이 자신들의 엄격한 관리하에 접촉하도록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가족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인은 약 400명으로, 토비 박사는 이 중 48명을 인터뷰했다. 이 중 3분의 2는 중국 경찰이 직접 연락을 해왔다고 밝히면서 스파이로 나서라는 강요를 받기도 하고, 인권 운동 및 언론과의 대화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국에 사는 위구르인들보다 상황이 더 나쁜 이들도 있다.

튀르키예는 과거부터 해외 거주 위구르인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로, 이곳에 사는 위구르인들만 5만여 명이다. 그런데 이들 중 148명을 인터뷰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유사한 위협을 받은 바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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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두레힘 파락은 1년 전 중국을 떠나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왔다.

파락은 “튀르키예는 우리가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경찰의 괴롭힘도 없었다”면서 “이러한 삶이 가능한지 믿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튀르키예 거주 위구르인들의 상황은 바뀌었다.

중국에 기반을 둔 경찰이 일부 위구르인들을 압박해 서로를 감시하게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들 공동체가 와해되고 연대 의식에 금이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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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튀르키예로 건너온 파락은 위구르족의 안전한 피난처였던 튀르키예가 중국 당국의 이간질 전술로 위험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엔 또래 친구들에게 붙잡혀 구타 당한 듯한 모습의 위구르족 청년이 중국 중앙 정부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음을 고백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어떻게 이런 영상이 촬영된 것인지 그 상황은 불명확하나, 이 영상은 위구르인들에 널리 퍼져나갔으며, 이 청년에겐 큰 비난이 쏟아졌다.

파락은 이러한 이야기가 점점 더 자주 들려오면서 위구르족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은 위구르족 관련 시위나 모임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그곳에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다며 우려하는 것”이라는 파락은 “중국 당국의 (이간질) 계획이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토빈 박사는 튀르키예 당국 또한 자국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빠르게 대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정 국가가 중국의 투자에 더욱 의존하게 될수록 (이러한 사안에 대해) 중국 당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거나, 상황을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로 튀르키예가 최근 몇 년간 중국과 가까워지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과연 위구르족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와 관련해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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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이 자신들보다 경제력이 약한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겨냥하는 건 아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위구르 인권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미국인 줄리 밀삽은 중국당국이 남편의 가족을 통해 자신을 압박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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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인권 운동가 밀삽은 자신이 위구르인들과 협력한다는 이유로 중국 경찰이 중국에 있는 남편의 가족들을 괴롭힌다고 주장했다

밀삽의 남편은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한족 출신으로, 이 두 사람은 중국에서 만나 지난 2020년 함께 워싱턴 DC로 이사했다.

그런데 밀삽이 위구르인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 현지 경찰들이 “친구가 되고 싶다”며 중국에 거주하는 밀삽의 시댁 식구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밀삽은 시누이로부터 밀삽의 아이들이 “고아가 될 수도 있다”는 위협적인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밀삽은 “그러나 이는 시누이의 평소 언어 습관과 달랐다”면서 경찰이 이러한 메시지를 보내라고 시누이를 강요한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최근 밀삽의 남편이 중국에 있는 여동생과 영상 통화를 하던 중 중국 경찰이 우연히 들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밀삽은 이 순간을 녹화하는 한편 경찰관 중 한 명과 직접 대면했다.

“그 경찰관은 말을 더듬으며 우리에게 자신의 의도를 오해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 경찰관은 밀삽에게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의 “미묘한” 관계로 인해 이 지역 주민 중 미국에 친척이 있는 이들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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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삽은 중국에 사는 시누이의 집을 방문한 경찰관과 직접 대면했다

한편 밀삽 또한 백인 미국인과 한족 출신 중국인의 상황은 위구르인들보다 어느 정도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시들 또한 “여전히 경찰이 괴롭히고 협박을 하기도 하며, 상황이 좋지 않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밀삽은 중국 당국이 너무 당연하게 외국인들마저 겨냥하고, 이들을 조종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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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3월 미 상원은 ‘초국가적 억압 정책법’을 내놨다. 해당 법은 다른 국가에 사는 가족들의 안전에 대한 협박을 포함한 “대리적 강제” 등 억압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만약 해당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 경우 위협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며, 미 의회는 최대한 가해 집단을 제재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노르웨이에서 위구르족 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압둘라 아유프는 미국의 이러한 법안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서방 정부들이 이보다 더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국가적 억압과 관련한 사건이 접수될 때마다 신고자 가족의 안전이 보장돼야 하며,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에 직접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유프는 “우리도 당신들의 시민이자 이웃이며 납세자다. 정부는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빈 박사는 이러한 문제는 다루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예를 들어 ‘당신 가족과 이야기하고 싶은가’라고 말하는 건 범죄가 아니”라는 토빈 박사는 “그러나 우린 이게 협박임을 알고 있다. 이러한 발언이 (해외 거주) 위구르족 공동체를 이간질하고, 이로 인해 정신 건강 문제와 트라우마를 일으킨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영국에서 범죄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영국 내무부는 해외 인권운동가들을 협박하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초국가적 억압 행위에 대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며, 관련한 모든 사건은 사법 기관에 보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 주재 중국 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중국 당국의 초국가적 억압 행위 의혹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위구르인들과 그들의 해외 거주 친척들 간 의사소통을 법에 따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알림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진 않았으나, 런던에 있는 어느 위구르 인권 운동 단체엔 알렸다.

위구르 인권 운동 단체를 이끄는 한 인물은 BBC에 이러한 스파이 요청은 매우 흔하다면서 공동체의 결속성을 뒤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권 운동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경험상 대부분 이들이 이를 거절한다고 설명했다.

알림 또한 결정을 내리기 전 매우 고민했으나 결국 “내 가족을 위해 다른 위구르족들을 배신한다는 건 결국 조국을 팔아넘긴다는 의미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느꼈다.

알림은 “만약 그게 내가 (가족과 통화한)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라”는 말과 함께 당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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