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김혜윤은 반짝이는 비늘로 뒤덮인 커다란 구렁이가 배로 뛰어드는 완연한 태몽 후 태어났다. “뱀이면 여자아이고 구렁이면 남자아이인데 구렁이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진지하게 설명하다 깔깔 웃는 김혜윤의 모습에 신경질을 내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SKY 캐슬〉 속 예서의 찡그린 얼굴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 단오의 장난스럽고 천진한 얼굴이 겹친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SKY 캐슬〉 열풍에 일조하기까지 김혜윤은 반듯이 쓴 글씨처럼 연기를 배웠다. “관종이라고 해야 하나.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서 춤추고 장기자랑하는 걸 좋아했어요. 막상 누가 잘한다 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즐거웠어요. TV 드라마가 저를 키운 것 같아요. ‘애기야 가자’ 이런 대사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웃음) 드라마 속 누가 파티시에를 하면 저도 그게 되고 싶을 정도로 영향을 받았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연기학원을 다니며 오디션을 보고 단역을 따내 현장을 익혔다. 첫 촬영장에서는 전체 화면을 찍을 동안 멀뚱히 있을 정도였지만 차차 비중과 연기력을 늘려갔다. 진로를 연기로 굳힌 후에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현장의 문을 두드리면서도 장학금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대학 졸업할 무렵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미래가 안 보이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내가 직업 배우라고 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배우로 인정받는 걸까 하는 고민이 있었죠. 무기력해지니까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정해 이거라도 해보자 했어요. 영화 한 편 보기나 독후감 쓰기를 했는데, 소소하지만 돌이켜보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어두운 장막을 걷어준 극적인 발탁은 김혜윤이 오랫동안 해온 연기를 비로소 인정받는 결정적인 지점이 되었다. 오디션이 아닌 캐스팅으로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로맨틱한 청춘을 살아보고 〈어사와 조이〉로 사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순조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아갈 무렵 김혜윤은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로 커다란 균열을 낸다. 후줄근한 반팔 티셔츠에 팔토시를 찬 혜영은 팔에 용 문신을 새긴 입이 거친 스무 살. 120분 동안 욕을 내뱉으며 악에 받쳐 끓어오르는 혜영의 처절한 모습은 불도저가 건물을 부수듯 보는 이의 마음을 깨고 뭉갠다. 외형적으로 특별한 변신을 꾀하지 않았는데도 김혜윤은 본 적 없는 얼굴로 내내 영화를 이끈다.
“영화 홍보를 위해 무대 인사 할 때 인상적인 대사를 묻는데, 할 말이 욕밖에 없더라고요.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서도 아침 8시에 얘기할 영화는 아니라고 하고.(웃음) 혜영이가 매 장면마다 힘든 상황에 처하니까 저절로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다만 제가 잘하고 있나 항상 고민을 한 작품이었어요.”
프리랜스 에디터/ 박의령 헤어&메이크업/ 백은영 스타일리스트/ 김지원 트 스타일리스트/ 이예슬 어시스턴트/ 허지수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사진/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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