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양원모 기자] 국내 대표 헌법학자인 성낙인 서울대 전 총장(사진)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정부 형태인가의 문제와 별개로 여소야대 상황이 꾸준히 전개된다면 이원정부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여야가 극한의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 속 내년 4월 야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 대통령과 내각이 ‘투 트랙’으로 움직이는 이원(二元)정부제로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 전 총장은 지난 13일 <한국일보> 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하며 ‘타협의 정치’가 실종된 현 상황에 쓴소리를 던졌다. 한국일보>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권과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1년간 야당 대표 및 원내대표와 회담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 됐으며, 1년 새 야권이 추진한 법안에 2번이나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노사정 대화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유혈 진압 논란 이후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하면서 7년 만에 노사정 공식 대화 창구가 닫히게 됐다. 한국노총은 최근 민주당과 ‘노동탄압 대책TF’를 발족하는 야당과 접촉면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난맥상에 대해 성 전 총장은 “국가적 불행”이라며 윤 대통령이 야당, 노조에 좀 더 귀를 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성 전 총장은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무리 야당 대표라고 해도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람(이재명)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범죄 혐의를 부정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반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정치적 탄압을 받아서 재판받고 있는 것이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도 잘못된 것은 당연히 바꿔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노조 자체에 대한 존재 이유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며 “유럽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취임하면 노조위원장을 최우선적으로 만난다. 정치적 셈법이 있기도 하겠지만,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정부에서도 만들어줘야 진정한 사회 연대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세다.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 악재가 겹치며 주요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에도 ‘여소야대’ 정국이 구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성 전 총장은 “정치 헌법학 이론에서는 가장 최근에 국민의 정당성을 획득한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며 “지금 시점에서는 지난해 대선이 가장 최근이었다. 일단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내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그때는 야당에 더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상호 이해가 전제돼야 하는데, 지금 정치권을 보면 이런 게 없다.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성 전 총장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내비쳤다.
성 전 총장은 “제도화된 권력보다 통치자가 개인적 카리스마로 더 강한 권력을 누리는 경우가 이어지면서 ‘권력의 인격화’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며 “(현재는) 이를 극복하면서 안정적 통치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한 시대”라고 조언했다.
권력의 인격화는 1970년대 발간된 책 제목으로, 책 표지에는 존. F. 케네디(미국), 샤를 드골(프랑스), 윈스턴 처칠(영국), 니키타 흐루쇼프(러시아), 마오쩌둥(중국)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성 전 총장은 “이 통치자들은 제도화된 권력보다 개인의 카리스마로 더 센 권력을 누렸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등 예외가 아니다”라며 “이를 극복해야 안정적인 통치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권력 내부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 전 총장은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오해를 일으켜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윤 대통령은 그간 민주화의 상징과 같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의 오월 정신으로 회복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바로 헌법 정신”이라고 말하고, 최근 임명한 차관들에게 “내정도, 외치도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등 ‘자유민주주의’를 부각하는 발언을 이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자기 자유만 자유”(유시민)라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성 전 총장은 이에 대해 “자유주의만이 나라의 갈 길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며 “자유는 평등과 함께 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윤 대통령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가운데 자유가 불타올라야 한다. 그게 아닌 정부는 성공할 수 없다”며 “정부에서 (이를) 말과 행동으로 직접 보여줘야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2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성 전 총장은 서울대 법대 학장과 제26대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현재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인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에서 한덕수 총리와 함께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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