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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2일, 27세의 전도유망한 콜롬비아 축구 선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Andres Escobar)가 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숨지기 직전 열린 ‘1994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미국’ 대회 미국과의 조별 리그에서 자책골을 넣었던 선수였고 이로 인해 죽었다.
콜롬비아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그도 그럴 것이 콜롬비아는 남미 지역 예선에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던 아르헨티나를 5대 0으로 이기는 등 최상의 전력을 자랑했다. 콜롬비아 국민들의 미국 월드컵에 대한 기대는 한껏 부풀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정작 본선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루마니아에 1대 3으로 진 콜롬비아는 1994년 6월 22일 열린 2차전에서 개최국인 미국과 만났다. 콜롬비아로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던 이날 경기였지만 승리의 여신은 미국의 손을 들었다.
당시 A조 최약체로 평가되던 미국에마저 1대 2로 지면서 콜롬비아는 충격에 빠졌는데, 자책골을 넣은 센터백 에스코바르가 이 경기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에스코바르가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 34분 미국의 하크스가 올린 크로스를 차단하려다 오히려 볼의 방향을 바꿔 콜롬비아의 골문으로 굴러 들어가게 했던 것이다.
결국 콜롬비아는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맛봤다. 월드컵 첫 우승을 꿈꾸던 콜롬비아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특히 에스코바르에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콜롬비아의 악명 높은 마약 조직 ‘메데인카르텔’은 “선수들이 귀국하는 대로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이에 콜롬비아 선수단은 실제로 귀국을 주저했고 당시 마투라나 감독은 에콰도르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의 친척 집에 가려던 에스코바르는 죄책감 탓에 당초 계획을 바꿔 홀로 귀국했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가 월드컵에서 탈락한 지 닷새가 지난 1994년 7월 2일 오전 3시께 여자친구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메데인의 한 술집에 갔다가 괴한의 총격을 받고 만다. 그의 여자친구 증언에 따르면 괴한은 ‘자살골 참 고맙다(Gracias por el autogol)’라고 비아냥거렸으며 12발의 총탄을 발사하면서 한 발씩 쏠 때마다 ‘골(Gol)’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괴한은 에스코바르에게 총을 쏜 직후 도요타 픽업트럭을 타고 도주했고 에스코바르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45분 후 사망했다. 범인은 에스코바르 살해 이튿날 체포됐는데, 그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경호원인 움베르토 무뇨스 카스트로(Humberto Munoz Castro)로 밝혀졌다. 카스트로는 1995년 징역 43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2005년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에스코바르의 장례식에는 12만 명 이상의 콜롬비아 국민들이 참석했다. 2002년 7월 메데인 시는 에스코바르를 추모하는 동상을 제작했다. 그의 사망 12주기인 2006년 7월 2일엔 FIFA 공인 길거리 축구 대회가 처음 개최됐는데, 이 대회의 우승컵은 에스코바르를 기리기 위해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컵’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의 죽음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던 ‘자살골’이라는 용어가 점차 사라지고 ‘자책골’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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