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공정 수능’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 2024학년도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없애기로 하고, 예시 문항 26개를 공개했다. 수험생들에게 ‘이런 문제는 안 나온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킬러 문항이 수험생을 괴롭히고, 사교육 수요를 유발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조치로 해석된다. 킬러 문항만 배제하면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전봇대만 뽑으면 모든 규제를 완화하는 것처럼 떠들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달을 보지 못한 채 손가락만 보는 꼴이다.
대학에 있다 보니 킬러 문항 논란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필자 또한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마다 비슷한 고민을 한다. 무작정 쉽게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부러 어렵게 하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첫째, 강의에 충실한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서술할 수 있고, 둘째, 종합적 사고를 묻는 문항 하나쯤은 포함할 것이다. 굳이 변별력을 따지는 건 상대평가 제도 때문이다. A학점 이상 30% 이내(±5%), B학점 이상 40%(±5%), B+ 이상 50% 등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다. 기계적인 상대평가 방식은 못마땅하지만 규정상 도리가 없다. 그렇다 해도 불필요하게 문제를 꼬는 건 내키지 않는다.
‘킬러 예시’ 문항을 훑어봤다. 졸업한지 오래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난수표에 가깝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은 그렇다 쳐도 인문학적 사유를 가늠하는 국어 문제조차 답은커녕 지문마저 이해하기 어렵다면 변별력 확보를 넘어 고문이나 다름없다. 이러니 일타강사만 배불리고 수험생을 혹사시킨다는 원성이 나온다. 언론보도(중앙일보)에 따르면 서울지역 학원은 편의점보다 세 배 많다. 지난달 기준 학원 2만4284곳, 편의점 8597곳이다. 동네 골목마다 있는 편의점보다 학원이 세 배가량 많다니 믿기지 않는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전체 사교육비는 25조9538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무려 72.4%(18조8028억 원)가 학원에 집중됐다.
킬러 문항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 공방은 한심하다.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패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쪽(국민의힘)은 킬러 문항이 난이도를 높여 사교육 수요를 유발해왔기에 이를 없애면 사교육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민주당)은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 투자를 늘려 학교 교육 질을 높이고 대학 서열화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며 맞서고 있다. 언뜻 보면 둘 다 옳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대증요법에 불과한데다, ‘어떻게?’라는 물음 앞에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을 입시 전문가로 치켜세우는 여당의 낯 뜨거운 ‘윤비어천가’에 이르면 아연하다.
킬러 문항 논란에서 돌아볼게 있다면 당연시해온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경쟁교육에 대한 성찰이다. 사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문제의 근간에는 경쟁교육이 똬리를 틀고 있다. 경쟁교육은 대학 서열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좋은 대학은 좋은 직장과 윤택한 삶으로 연결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이런 배경에서 ‘스카이캐슬’이 나오고, 모든 국민이 기를 쓰고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올인한다. 지인이 들려준 네 살짜리 손녀딸의 영어유치원은 우리교육이 얼마나 멍들었는지 보여준다. 월 140~150만원에 달하지만 입학조차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한다. 유치원부터 시작된 사교육 열풍이 아이들을 끊임없는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김누리 교수(중앙대학)는 경쟁교육 폐지를 주창한다. 김 교수는 우리사회는 연대와 약자에 대한 연민이 사라진 정글이 됐다며 경쟁교육 해체만이 대안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대학입시와 대학서열화, 대학등록금 폐지를 주장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에서 그는 독일 교육 사례를 들어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 또한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 비슷한 논지를 펼쳤다. 그는 능력주의와 경쟁교육 아래서 미국사회는 약육강식이 판치는 오만한 사회로 전락했다며 경쟁교육과 능력주의 폐해를 경고했다. 김 교수는 “독일은 1970년부터 경쟁교육을 폐지했지만 오늘날 독일 교육은 세계 최고 인재를 기르고 있다”면서 “경쟁교육을 맹신하는 우리사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하다는> 우리의>
거듭 말하지만 킬러 문항을 넣느냐 빼느냐는 핵심이 아니다. 사교육 공화국의 근본을 봐야한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 변별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킬러 문항을) 스크리닝하겠다.” 교육부 관료와 교육 전문가라는 이들이 이런 정도 수준에서 교육개혁을 입에 올린다면 유치하다. 더불어 “대입 제도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전문가”, “대통령한테 진짜 많이 배운다”는 민망한 아부도 해결책은 아니다. 어떻게 할 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지, 또 어떤 교육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기를지를 고민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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