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볼란테. 팬츠 에스티유 오피스. 슈즈 아식스 스포츠스타일. 워치 오데마피게 by 빈티크. 벨트, 링, 이어커프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화보 촬영할 때 스태프들과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남희 씨 자유분방함이 거의 신생아 수준인 것 같다고.
A (웃음) 화보라고 막 모델처럼 멋있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이런 건 제가 생각해도 저한테 잘 안 맞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자유롭게 내 감정이 가는 대로 해봐야겠다 한 거죠. 시안에서 자유 연기 같은 느낌을 원한다고 하셔서 또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저한테 맞는 걸 잘 찾아주셨어요.
Q 저는 사실 그런 부탁을 드려놓고는 내심 걱정도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상상 초월이더라고요. 마지막에 온몸을 써서 무언극 같은 걸 하실 때는 소름까지 돋았습니다.
A 주문하신 ‘연극적인 느낌’이 저한테는 차라리 편하더라고요. 그동안 무대에서 해왔던 것들, 수업 들었던 것들에서 가져올 소스가 많으니까요. 정말 기행적이고 이상한 것들을 많이 하거든요. 오늘 한 건 그중 10분의 1 정도만 꺼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A 아뇨. 옛날에 받은 거죠. 그래서 기억이 잘 안 나서 10분의 1만 나온 것 같기도 하고.(웃음) 지금은 수업은 아니고, 저한테 연기 알려주셨던 스승님한테 한 번씩 코칭받는 정도예요. 그 스승님한테 배운 게 다 떠올랐다면 더 많은 것을 내놓을 수 있었을 거예요.
Q 그 스승님이 설마 고2 때 동네에 있었다는 그 지하의 연기학원 선생님인가요?
A 맞아요. 위치는 바뀌었는데, 그 선생님이 아직도 코칭을 해주고 계세요.
Q 고등학생 때 우연히 연기를 배웠던 집 근처 연기학원 선생님이 아직도 코칭을 해주는 스승님이라니. 잘 맞는 부분이 있었나 보네요.
A 사실 그분이 거의 다 만드신 거예요, 저라는 배우를. 일단 제가 그분을 통해 연기를 접하게 됐으니까 그분 덕분에 다시 태어난 거라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그때 배운 걸로 지금까지도 해나가는 것 같아요.
Q 연기에는 ‘타고난다’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물론 저는 지금껏 스스로가 타고났다고 말하는 배우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요.
A (웃음) 그런데 저는 배우들이 어느 정도 다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타고난 게 있으니까 계속 해나갈 수 있다고 보거든요. 또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다들 자기 멋에 취해 있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싶고요.
Q 와, 결국 제가 처음으로 이런 답을 들어보게 되네요. 그럼 남희 씨는 배우로서 어떤 부분을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A 저는 지구력이 좀 없는 편이라, 꾸준히 노력하고 이런 부분에 좀 약하지만 대신 즉흥성에는 강한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 배우와 연기를 하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냥 그 감정에 훅 들어가버리는 부분은 제가 그래도 나름 타고나지 않았나 생각하고요.
Q 지구력이 약하다고 했는데, 1000회가 넘어간 고전 명작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한 적도 있어요. 그 지구력과 이 지구력은 다른 의미겠죠?
A 맞아요. 〈전원일기〉는 회차는 많은데 그 안에서 계속 새로운 사건이 나오고 새로운 상황이 제시되잖아요. 그런데 그 상황 속 인물들은 일관성을 갖고 있죠. 연기를 보면, 그냥 뭐 배우들이 그 인물로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체화가 될 정도로 오래 연기해서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나보고 싶은 거예요. 요새는 한 작품이 길어야 16부작이고, 더 짧아져서 10부작, 12부작씩 가기도 하잖아요. 시간이 정말 부족하죠.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도 또 혼자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연기는 함께 만들어나가는 부분이 크잖아요.
Q 소위 말하는 ‘센’ 캐릭터를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생활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는 걸까 했어요.
A 아, 그것도 있죠. 아무래도 제가 그동안 한 캐릭터들이 잔인한 악역이거나, 아니면 아예 바보 같거나 이렇게 극단적인 부분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정말 오랜만에 생활 연기를 해본 것 같아요. 그것도 오랜만에 하려니까 좀 어색했는데, 결과물 보니까 다행히 재미있더라고요. 감독님이 워낙 훌륭하셔서.
재킷, 링 모두 알렉산더 맥퀸. 이너 슬리브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A 네. 그래서 처음에는 겸사겸사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참여한 거였는데요.
Q 하하하.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셨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어서 설마 그거랑 연관이 있으려나 했는데 정말이었군요.
A 대본을 받아서 읽기도 전에 “일단 나는 한다고 전해달라”고 했죠. 폴란드 올 로케라고 하길래.(웃음) 촬영 전 일주일 정도 미리 가서 있으면 되겠다 싶었던 거예요. 그게 그냥 제 사심인 것만은 아닌 게, 폴란드 유학생 역할이니까 왜 폴란드 문화도 좀 알아야 하고 관광지도 잘 아는 느낌이 나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이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생각처럼 안 됐어요. 하루 전날까지 한국에서 촬영을 하고 14시간, 15시간 비행기 타고 가서 바로 촬영에 들어가게 됐죠.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재미있게 찍었어요. 혼자 숙소 생활하는 것도 좋았고 촬영 끝나고 공원이랑 시내 돌아다니면서 놀았고요.
Q 바로 전날까지 다른 인물을 연기하다가 다음 날 곧장 완전히 다른 인물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A 사실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미리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태로 캐릭터에 들어가야 하는데, 때로는 제가 준비가 좀 덜 된 상태에서 촬영하면서 점점 잡아나가게 되기도 해요. 저는 그럴 때는 감독님이나 연출가한테 캐릭터나 톤을 같이 잡아달라고 솔직하게 얘기하죠. 연출자의 생각을 파악해서 제가 그거에 최대한 맞추면서 쌓아나가는 거예요. 그게 장점이 있기도 한데…. 이제는 작품 수를 좀 줄이려고요. 올해부터는 작품 수를 1년에 1개, 2개 정도만 해서 온전히 준비를 하려고 해요. 연기의 완성도가 떨어지니까 스스로도 힘들고, 다작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더라고요.
Q 작품을 쉴 새 없이 했는데, 그 틈틈이 예능까지 했잖아요. 예능은 남희 씨에게 어떤 의미예요?
A 처음에는 부담이 됐죠. 그런데 한두 번 나가다 보니까 유명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그 사람들이랑 그 프로그램 안에서 같이 얘기하는 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생각해보니 평소에 제가 놀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없어요. 그냥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거나, 야구나 축구를 하거나.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어 재밌네?’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거기 나가서 뭘 홍보해야겠다, 내 매력을 보여줘야겠다, 이런 욕심은 전혀 없어요. 말 그대로 놀러 가는 거죠.
Q 왜 배우들이 예능을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촬영의 호흡이 다르다는 부분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배우는 스스로를 포착하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인데, 평소와 다르게 카메라가 멈추질 않고 계속 돌아가니까.
A 맞아요. 그런 피로감은 무조건 있어요. 며칠 전에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스튜디오에서 한 5시간 정도 녹화를 하는데 스스로 지쳐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옆에 있는 전문 예능인들을 보면 그들도 피곤해해요. 인간이니까.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어떻게든 만들어나가는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좀 배우기도 하고, 센스 같은 걸 느끼기도 하는 거예요.
Q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어떤 자세로 일을 하는가를 보고 배우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인 거군요.
A 이번에 한 〈아주 사적인 동남아〉가 말씀하신 촬영 시간 측면에서 힘들긴 했어요. 그건 말 그대로 화장실 가는 것 빼고는 다 찍었거든요. 자는 것까지 찍는데, 처음에는 정말 부담스러워서 죽겠더라고요. 그 프로그램도 바로 전날까지 촬영하다가 2시간 자고 간 거라서 컨디션이 안 좋기도 했고. 아무튼 나중에는 그것도 익숙해지니까 이제 카메라가 있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행동하게 되긴 했는데요. 그때는 또 너무 편해서 문제가 되더라고요. 정말 찍은 것 중에 방송에 못 나가는 게 90%는 됐을 것 같거든요. 다들 아무 얘기나 다 하고, 피곤하면 그냥 자버리고, 나가서 놀고 싶으면 ‘우리는 나가서 놀게’ 하고 그냥 찢어져서 놀고.(웃음) 뭐 나중에 보니까 오히려 그래서 좀 더 재미있게 담긴 것 같기도 했지만요.
Q 맞아요. 정말로 그냥 한국 남자 네 명이 휴가 간 걸 보는 듯한 매력이 있었어요.
A 아까 이번 화보 시안 얘기하면서도 언뜻 말씀드렸는데, 제가 그런 게 있어요. 막 따뜻하고 멋있게 보이는 거에 대한 반동 기질이라고 할까요. 저는 만약 TV에서 남자들끼리 여행 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데 거기 나오는 사람들이 다들 너무 착하고 성실하고 배려하고 그러면 ‘친한 친구들 친한 형들이랑 놀러 가면 정말 저럴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하게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아주 사적인 동남아〉는 현장에 가보니까 넷 다 그런 기질이 있더라고요. (이)선균이 형, (장)항준이 형, (김)도현이 형, 저까지 다. 본인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다른 식으로 보여줘야 하는 걸 힘들어하는 거예요. 다행히 PD님도 그걸 잘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촬영한 뒤에 잘 만들어주신 것 같아서, 좋았어요 저는.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이규원 STYLIST 박선용 HAIR & MAKEUP 이소연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Copyright ⓒ 에스콰이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