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날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정치권이 떠들썩해졌다.
민주당에서는 친명계와 비명계가 한 목소리로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호평을 보냈으나 국민의힘은 지금까지 수차례 체포동의안을 부결한 것에 대한 "사과부터 하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으로 향후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수사는 오히려 더 부담스러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날 연설 말미에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며 "검찰이 10번이 아니라 100번이라도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는 사전에 언론에 배포된 연설문에는 없던 내용으로 대표연설 직전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가 고심 끝에 해당 내용을 추가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자신들의 무능과 비리는 숨기고 오직 상대에게만 ‘사정 칼날’을 휘두르며 방탄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집권여당의 유일한 전략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간파하고 있다"며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갈등과 균열을 노리는데 이제 그 빌미마저 주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이날 연설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한 배경을 묻는 말에 "정쟁이 아니라 정치를 해야 되고, 당이나 정치의 집단들의 이익이 아니라 민생과 나라 살림을 챙겨야 할 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문제로 논란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이 대표의 발언에 여야의 반응은 극명히 갈렸다. 민주당은 비명계도 박수를 보냈고, 국민의힘은 "사과부터 하라"며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재명답다. 국민과 정의의 승리를 믿는다"라고 밝혔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에 "(불체포특권 포기를) 만류하고 반대했으나, (이 대표가)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과 맨몸으로 맞서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고 전했다.
비명계 이상민 의원도 페이스북에 "매우 잘한 결정"이라며 "이 대표 자신과 민주당의 대공민 공약을 지킨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방탄국회·방탄정당 부정적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호평했다.
■ 친명·비명, 한목소리로 "매우 잘한 결정".. 與 "이미 수차례 방탄.. 사과부터 하라"
반면, 국민의힘은 이 대표 발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 대표는 19일 오후 국회에서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는 자신의 불법과 비리를 여전히 정치 탄압으로 포장하고 있다"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언급하며 쇄신의 모습, 개혁적 모습을 연출하려 애썼지만 먼저 사과부터 했어야 옳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이 여러 차례 보여줬던 공수표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 대표가 구체적으로 약속을 어떻게 실천한 것인지 밝히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이미 겹겹이 방탄조끼를 입어놓고서 사과 한마디 없이 큰 결단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제 와 ‘구속영장이 오면 응하겠다’는 모습은 5분 신상 발언을 보는 듯한 ‘몰염치의 극치’”라고 깎아내렸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 대표의 마지막 방탄 '김은경 혁신위' 자체가 위기에 봉착하니 마지못해 내놓은 혁신 쇼의 하이라이트로 불체포특권 포기 쇼로 이어진 것 아니냐"면서 "훗날 이 대표에게 진짜 추가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을 때 '불체포특권 포기한다고 하니까 진짜 포기하는지 알더라'면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전주혜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본인의 사법리스크, 쩐당대회 돈봉투 살포, 김남국 코인 투자, 이래경 혁신위원장 망언에 이어 싱하이밍 훈계까지, 당대표로서 잇따라 터진 악재를 덮고자 하는 다급한 마음은 알겠으나, 국민의 생명과 어민의 생계를 볼모로 잡는 것이 과연 정치인, 그것도 제1야당의 대표가 취할 행동인지는 의문"이라며 "이 대표와 함께한 민주당의 지난 1년은 '방탄정당', '돈봉투당', '내로남불당', '無도덕당'으로 요약된다. 오늘 자신에 대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이 대표의 외침이 과연 진심인지 아니면 국면전환용 '쇼'인지는 국민들이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체포동의안과 관련해 민주당과 연일 각을 세웠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적어도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에 따라 그 절차 내에서 행동하겠다는 말은 기존에 했던 말보단 좋은 얘기인 것 같다"면서도 "다만 어떻게 그걸 실천할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국민과 똑같이 형사사법시스템 내에서 자기 방어를 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돈 봉투 의혹 체포동의안 표결 이전에 이 선언이 나왔더라면, 진즉에 대선공약이 제대로 이행됐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굴 수 없다"라며, "오늘 약속을 계기로 국회의원의 특권이 하나둘 사라지고 국회가 방탄 의혹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에서 "많이 늦었고 부족하지만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한 이재명 대표의 선언이 민주당이 방탄 정당의 오명을 씻고 혁신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김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의 자성과 혁신, 민생을 위한 실천과 실력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 연설이었다"며 "정권 심판의 주요 고비마다 민주당의 부패비리정치, 구태정치가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온 현실을 분명히 마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당에 "노동 현안에 대한 민주당의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기대하며 공동 대응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에 맞선 전환점을 함께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 현행법상 개인 자격 불체포특권 포기는 불가능.. 향후 검찰 수사 오히려 부담 커져
한편, 이날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회기 중 개인 자격으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2012년 발간한 '이슈와 논점'에 따르면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에 자주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게 하려는 것이므로 개인의 특권이자 국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의원 개인은 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돼있다.
결국 이 대표의 선언이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올 경우, 본인이 대표로서 '체포안 가결'을 당론으로 정하거나 의원들에게 가결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실제 투표 결과 부결이 되면 구속영장 실질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른 방법은 국회가 열리지 않는 시기에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것이다. 앞서 2018년에 강원랜드 채용청탁 혐의에 휩싸였던 권성동 의원도 임시국회 소집 시기를 늦춰 국회가 열리지 않았던 기간에 영장 심사를 받은 바 있다.
현재 검찰이 이 대표를 겨냥하고 있는 수사 목록 가운데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비리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지난 2월 부결됐다.
앞으로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과 정자동 한국가스공사 부지 개발 특혜 의혹,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으로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부의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상황에서 검찰이 확실한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될 경우 검찰의 수사 동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지금까지는 체포동의안을 본회의에 올리는 것만으로 '방탄국회'라는 비판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실제로 구속영장 실질심사까지 이어질 것을 염두에 둬야 해 검찰도 부담스러운 입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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