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황정일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 국정조사를 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본 여야가 물밑에서는 조사 범위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여야는 지난주 국정조사 기간과 범위 등을 놓고 협의를 벌였지만, 세부 사항에 대해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 협의는 국민의힘이 국정조사 카드를 먼저 꺼내 들고, 민주당이 이에 호응하면서 이뤄졌다.
여야의 지난 1일 협의에서는 큰 이견이 노출되지 않았다. 국민적 공분이 큰 사안인데다 청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정 채용'이 논란이 된 만큼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이후 실무협의 과정에서 입장 차가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앞서 논란이 된 '북한발 선관위 해킹 시도'에 대한 '국가정보원 보안 점검 거부'에 대해서도 국정조사에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번 국정조사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만 집중하고 범위를 넓히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채용 의혹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범위를 넓히려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 길들이기 의도'가 깔려있다는 의심이다.
국민의힘이 이번 의혹을 계기로 노태악 선관위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점도 민주당이 해킹 의혹까지 국조 범위를 넓히자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도록 하는 요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입장문을 내고 "특정 정당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노골적인 선관위 장악 시도"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국회 검증특위 설치와 상임위별 청문회 개최 방안을 요구하는 '딜'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는 국정조사 수용을 지렛대 삼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고조시키는 방안을 관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국조 범위에 대한 의견의 차이만 해소하면 국정조사 착수까지 이후 과정은 순탄하게 흘러갈 걸로 전망된다.
이르면 이달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관위를 대상으로 한 국정조사 계획안이 의결될 수도 있다. 계획안에 따라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조사 기한도 정해진다.
국정조사 특위는 국정조사법에 따라 선관위에 관련 서류 제출을 요청할 수 있고, 증인을 불러 청문회도 열 수 있다. 박찬진 전 선관위 사무총장 등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의 당사자들이 증인으로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오는 12일 본회의 국정조사안 의결을 목표로 '선관위원 전원사퇴'를 촉구하며 선관위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국민의힘 "선관위, 文정권 정치적 편향성 논란...민주당 방패삼아 은폐·기득권 지키겠다는 것"
특히 국민의힘은 이번 선관위 국정조사를 계기로 선관위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친야(親野) 성향'으로 치우쳤다고 판단해 이를 바로잡을 생각이다.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지난 5일 논평에서 "지난 문(文)정권에서 임명한 권순일, 노정희,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모두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있었다"며 "이들이 '공정한 선거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던 사이에 선거관리 시스템과 내부 기강은 무너져 버렸다"고 비난했다.
윤 대변인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 주요 선거에서 선관위는 ‘내로남불, 무능, 위선’ 등 민주당에 불리한 현수막 문구는 모조리 금지하는 대신 ‘토착왜구’,‘ 투표로 친일 청산’ 등과 같은 저급한 막말은 용인하는 등 편파 행정의 끝을 보여줬다"며 "그 와중에 소쿠리 투표, 고용 세습, 북한 해킹 공격 노출 등 무능함과 부도덕성도 한껏 드러내며 선거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키웠다"고 직격했다.
이어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선관위를 정파적으로 활용한 것은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 인사를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던 문(文) 정권이 처음이다"며 "선관위는 민주당 뒷배를 믿고 저리도 뻗대며, 민주당은 자신들을 감쌌던 선관위에 보은을 하는 것은 아닌지 국민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날을 세웠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긴급의총에서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고 민주당이 수적 우위인 국정조사를 고집하는 것은 민주당을 방패 삼아 은폐하고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원내대표는 "노태악 선거관리위원장은 하루라도 빨리 선관위원장을 사퇴하는 것이 선관위의 쇄신을 앞당기는 것"이라며 "내부에서 어느 한 사람도 자정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한 몸처럼 선관위 쇄신을 막고 있는 선거관리위원들도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지난주말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긴급 의원총회에서도 거듭 선관위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며 "하루라도 빨리 썩은 부분을 찾아 도려내야 한다"며 노태악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국민의힘은 6일 현충일에도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공정성이 생명인 선관위가 불공정의 상징이 되어 가고 있는데도 이 순간만 모면하려 애쓰고 있다"며 "위기 앞에 머리를 처박은 덩치 큰 타조 같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만장일치로 감사원 감사 거부를 의결한 중앙선관위원 전원과 중앙선관위원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장 대변인은 "선관위를 마냥 두둔해온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국정조사만큼은 대충 뭉개거나 터무니없는 조건을 달며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중립성을 명분으로 감사를 회피하고 있는 선관위도 의심받기 딱 좋은 더불어민주당의 구애가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선관위도 더불어민주당도 이번만큼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것"이라고 선관위와 민주당의 연계성을 공격했다.
또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오는 8일 이른바 '아빠찬스 방지법'인 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발의할 계획이다. 이 개정안은 경력직 공무원 채용 시에 고위공직자의 가족·친척은 동일한 기관에 경력직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선관위와 민주당을 공격해 '친여(親與)' 성향의 인사를 앉히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반발한다.
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 5월 29일 공동성명을 통해 "선관위원장은 자녀 경력 채용과 무관하다"라며 "특혜 채용은 현 선관위원장 임기 중에 발생한 일이 아닌데, 국민의힘은 무조건 책임을 지라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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