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한 곳에서 부유한 국가 중 한한 곳으로 급상승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성공적인 벤치마킹이다. 수많은 한국 방문단이 경제와 행정 또는 정치 분야 등에서 성공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다른 나라의 기업이나 관청 또는 연구소를 찾았고, 이는 주제별로 보면 모든 분야에 해당했다.
◇ 해외 사례로부터 배우다
한국 사람들은 벤치마킹에 대해 거의 강박적인 수준이었으며, 이를 통해 지금과 달리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도 외국에 나가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물론 벤치마킹 본연의 목적에 따라 해외 사례로부터 보고 배우려는 자세가 매우 강했기 때문에 벤치마킹은 한국을 발전시키는 데 소중한 기여를 했다.
예를 들면 신생 한국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부터 사법 제도나 행정 분야의 발전 또는 독일 통일 사례에 이르기까지 벤치마킹의 범위는 실로 광범위했다.
우리 한스자이델 재단이 한국에서 꾸준하게 수행해 왔던 주제인 독일 통일만 해도 우리 재단은 지난 35년간 그야말로 셀 수 없이 한국의 많은 연수단을 독일로 초청해 민주화 또는 민영화, 실업 등과 같은 굵직한 주제들을 포함해 분단 시절 동서독 간의 엘베(Elbe)강 유역 치수(治水) 협력 또는 통일 이후 산림정책 등과 같은 세부 주제에 이르기까지 독일 통일과 관련된 주제를 폭넓게 다뤘다.
◇ 벤치마킹 대상으로 성장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한국 속담의 의미와 같이 이런 벤치마킹을 통한 한국 사람들의 배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한국은 스스로 다른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변화했다.
한국의 빠른 성장을 배우고자 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나 몽골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이 그에 속한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 또한 한국의 첨단 연구 현황을 살피기 위해 방한단을 파견하고 있다.
개별 기업이나 이벤트 또는 K팝 스타들과 같은 개별 인물을 통해 이러한 벤치마킹이 유발된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이 함께 작용해 한국을 매력적인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경제 측면에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무역 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이미 최소한 20년 전이며, 이 밖에도 반도체를 비롯해 휴대전화, 자동차, 건설 산업 등의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K팝이나 K드라마, 한식 등의 K 열풍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으며, 실제로 유럽인이나 미국인을 비롯해 이전에는 전혀 한국을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의 의식 속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영화나 연작 드라마들이 인기를 얻는 데는 간접적으로 코로나19도 한몫했는데, 대면 활동이 제한되면서 많은 사람이 집에서 TV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해당 작품을 시청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에서 널리 사용돼 경제적인 이득과도 연관이 있는 영어나 스페인어 또는 프랑스어 등과 달리 현실적인 이득이 없음에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 대학에서는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긴 하지만 한국학 관련 강좌 및 한국어 강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이 틈새시장을 메우는 희귀한 전공이 아니라 일본학이나 중국학과 경쟁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 지역 선도 국가로 발돋움할 때
경제와 문화는 중요하고 상승효과를 내는 요소다. K팝 스타를 통해 한국 제품을 알리고 판매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더 큰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북한 주제만을 주요 현안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부상(浮上)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지구환경 문제 등과 같이 인류가 처한 주제들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책임 있는 지역 선도 국가로서의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최근 많은 한국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모든 정책 수립에서 대북 관계를 염두에 두는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한국 대표부를 설치한 것과 대일 화해정책이 이의 대표적인 정책 결정 사례다. 박근혜 정부가 실시했던 적극적인 대중(對中)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남북정책이 있었지만 이들 정책은 한반도 대결 상황을 감안한 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들이었지, 대한민국을 위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계획들은 아니었다.
야당을 비롯한 비판론자들은 윤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소홀히 다룬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장기적인 위상을 감안할 때 그 위치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전략적 강점과 파트너십
이런 배경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자 많은 경제 및 정치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경제 및 문화 그리고 정치 측면에서 한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현명하면서도 필수적이다.
이 세 분야는 서로 뭉치면 더 강해지며, 한국은 그런 상승효과를 통해 다국적 세계 질서로 인한 이익을 취하는 것뿐 아니라 해당 세계 질서를 선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자만하지 말고 여러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여러 분야에서 배울 내용이 많으며 한국은 주어진 기회를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동시에 다른 나라들에 모범사례가 될 만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독일 정치인이 방한하면 DMZ(비무장지대) 방문이나 독일 기업 간담회와 같은 일정을 많이 잡았다. 물론 지금도 그런 일정이 계속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제는 예를 들면 자율 주행이나 드론 택시 또는 메타버스와 같이 한국이 앞서 나가는 분야를 보고 싶어 하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해당 분야의 기술이나 규정 측면에서 한국이 반드시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자율 주행이나 드론 택시와 관련해 처음으로 포괄적인 규정들을 정했다. 하지만 신기술의 적용 측면에서 한국이 독일보다 훨씬 더 빠르다. 이는 많은 한국 사람이 얼리어답터인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인이 지닌 실용성과 미래에 대한 커다란 낙관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5월 2~5일 각국에서 많은 관련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10회 국제전기차엑스포는 위에서 말한 한국인의 성향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한독 간 에너지 협력과 같은 전략적 파트너십은 양국 간의 지속 가능하며 신속한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을 '따라쟁이'라고 비웃던 시절은 예전에 지나갔다. 한국은 이제 자신이 가진 전략적 강점들을 크게 발휘하며 그것이 많은 국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독일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옮긴이: 김영수(독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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