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채한도가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도 유사한 형태의 명목상 부채한도를 지닌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미 경제 전문 매체 CNBC가 24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세계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법으로 나라의 부채한도를 정해 놓은 것은 미국과 덴마크뿐이다.
대다수 나라는 의회가 국가 부채 증가를 꺼리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이유 등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
부채란 쉽게 말해 빚이다. 그러니 '부채한도'는 말 그대로 빚을 질 수 있는 상한선이다. 부채한도 초과는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자꾸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은 1939년 처음 부채한도를 도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부채한도는 450억달러였다.
1960년 이후 미국의 부채한도는 78번 상향됐다. 마지막으로 2021년 12월 2조5000억달러가 추가돼 현재 31조3810억달러(약 4경1450조원)로 높아졌다.
미국에서 부채한도 상향 토론은 점차 벼랑 끝 정치 전술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2011년 이후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가 지출 삭감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협 수단으로 이용했다.
덴마크가 부채한도를 도입한 것은 1993년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상한선을 워낙 높게 책정해놓아 그동안 정부와 의회가 힘겨루기할 일은 없었다. 사실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코펜하겐대학의 라우라 순더-플라스만 경제학 부교수에 따르면 이는 덴마크의 부채한도가 인위적 헌법조항으로 설계돼 정부에 필요한 차입금이 반복적으로 상한선에 부딪쳐도 '정치 협상카드'가 되지 않도록 매우 높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부채한도는 덴마크어로 '갤슬러프드'(gældsloft)다.
순더-플라스만 부교수는 덴마크의 정치가 미국보다 덜 양극화해 있는 데다 의회에 두 개의 큰 정당과 12개가 넘는 작지만 중요한 정당들이 포진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CNBC에 보낸 이메일에서 "대다수 선진국이 명목 금액 대신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에 대한 구속력 없는 한도를 택했다"면서 "이것이 완벽하지 않을진 몰라도 적어도 미국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논쟁은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덴마크의 부채한도는 1993년 정부의 구조조정 이후 헌법조항으로 도입됐다. 당시 책정된 한도는 9500억덴마크크로네(약 1375억달러)다.
덴마크 정치인들은 부채한도를 의회와 국민에게 정부가 자의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한 요소로 간주한다.
역사적으로 덴마크는 강력한 재정상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경험했다.
이로써 2010년 부채한도가 2조덴마크크로네로 상향됐다. 인구 약 600만명의 작은 나라 덴마크로서는 엄청나게 높은 한도다.
덴마크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덴마크의 국가부채는 3230억덴마크크로네(약 61조6640억원)다.
덴마크는 재정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부채는 크게 감소했다.
GDP 대비 국가 부채는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증가만 제외하면 꾸준히 줄어 지난해 말 GDP의 3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다시 감소했다.
코펜하겐경영대학원의 예스퍼 랑비드 금융학 교수는 덴마크 시스템에서 재정정책에 대한 정치적 결정이 각 연도의 세금과 지출에 대한 공공예산으로 한정돼 있다며 부채한도는 완전히 별도의 형식적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덴마크에서 부채한도가 문제되지 않기 때문에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며 "물론 정부 예산이 수년간 흑자를 기록해 부채가 감소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랑비드 교수는 "지출과 세금 등을 정할 때 다양한 정치적 논의가 이어진다"면서도 "그러나 미국과 크게 다른 것은 부채한도가 이를 제한해선 안 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덴마크의 다양한 정당이 재정정책에 대해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지만 미국과 크게 다른 것은 이런 논의가 연례 예산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라며 "따라서 정부의 다른 기능들이 야당의 요구에 인질로 잡힐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진수 선임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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