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황정일 기자] 한화그룹에 인수된 대우조선해양이 대우를 뒤로하고 한화오션으로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한화오션의 출항으로 조선사 ‘빅3’로 굳건해져 우리나라의 조선 경쟁력 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45년 만에 ‘대우’ 간판을 뗀 한화오션이 23일 공식 출항했다. 김동관 부회장을 중심으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며 한화오션은 경영 정상화 등 산적한 과제 해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한화오션 출범을 계기로 기존의 우주·지상 방산에서 해양까지 아우르는 ‘육해공 통합시스템’을 갖춰 글로벌 방산 기업으로의 성장 토대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한화를 ‘한국판 록히드마틴’으로 만들겠다는 김승연 회장의 숙원도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한화는 방산을 미래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에 따라 그룹 내 계열사 3곳에 분산됐던 방산 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통합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30년까지 ‘글로벌 방산 톱10’으로 도약해 한국판 록히드마틴이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한화는 방산 사업 통합 외에도 태양광 사업 강화를 위해 한화솔루션 내 비(非)태양광 사업 부문을 분할하는 등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왔다.
세계 굴지의 선박용 엔진 생산업체 중 하나인 HSD엔진의 인수작업까지 마무리되면 김동관 부회장이 중점 추진 중인 한화의 사업 재편은 일단락된다.
한화오션의 첫 수장을 맡게 된 권혁웅 ㈜한화 지원부문 부회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출신으로 한화에너지와 한화토탈에너지스 대표이사를 역임한 에너지 전문가다.
한화 측은 내정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소·암모니아, 해상풍력 가치사슬(밸류체인) 등 조선과 에너지 사업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글로벌 해양·에너지 전문기업으로의 성장을 견인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권 부회장이 2020년부터 ㈜한화 지원 부문 사장을 맡아 한화그룹의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고 회사 간 시너지를 높이는 데 주력해 온 데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단 20년 넘게 산업은행의 그늘에 있었던 한화오션의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 주요 계열사 대표를 역임한 김종서 전 한화토탈에너지스 대표와 정인섭 전 한화에너지 대표도 이사진에 합류해 한화의 DNA를 투입, 해양·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이끈다.
특히 김동관 부회장이 기타 비상무이사를 맡아 한화오션의 빠른 체질 개선과 경영 정상화를 지원하고 양사의 결합 시너지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당장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대우조선은 2021년 1조7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낸 데 이어 작년에도 1조6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적자 규모를 줄이기는 했지만, 올해 1분기에도 62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1858.3%까지 치솟았다.
대우조선 핵심 인력 유출 등에 따른 인력 확보도 시급한 상황이다. 조선업 전반에서 인력난이 심각한 가운데 대우조선에서는 작년 한 해 160명이 넘는 직원이 경쟁 회사로 옮겼다.
특히 실무 업무 주축인 대리·과장급과 특수선 설계 인력의 유출이 문제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가운데 10년 전 1만3000명에 달했던 대우조선 임직원 수는 작년 말 8300명으로 5000명가량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한화는 당분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인력 확충과 재배치 등의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우조선도 설계, 생산관리, 사업관리, 품질·안전 등 대부분 사업 부문에 걸쳐 신입·경력 직원 공개채용에 나섰다.
생산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결속력이 강한 노조와의 관계 정립도 한화에는 큰 과제다. 협력업체 종사자를 뺀 대우조선 전체 직원 중 4800여명이 금속노조 대우조선 지회 소속 노조원이다.
노조는 이번에 회사 매각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당사자 참여 보장, 고용 보장, 단체협약 승계, 회사·지역 발전 계획 등 4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회사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화는 “임시 주총을 통해 모든 인수작업을 마무리한 이후 적절한 시점에 직원들의 처우 개선, 지역과의 상생발전 등을 포함한 회사의 비전을 발표하고 공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 노조는 한화에 ‘인수 위로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한화는 대우조선 경영 상황을 고려할 때 위로금 지급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와 관련해 한화와 대우조선 노조는 지난 19일 실무협의체를 열어 목표 달성 시 기준 임금의 3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 조선사 ‘빅3’ 환영, 한국 친환경선 경쟁력 강화 도움
국내 ‘빅3’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이 한화오션이라는 사명으로 새롭게 출발하면서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국내 조선업 ‘빅3’ 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3강 구도 유지에 따른 과당 경쟁 등의 우려가 있지만, 지금과 같은 조선업 초호황기에는 빅3의 굳건한 유지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조선업 세계 1위를 사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화오션은 20년 넘게 이어져 온 ‘주인 없는 체제’가 청산되고 새 회사로 출범하는 것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이날 한화오션 직원들은 입주가 결정된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7~8층으로 이주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원래 대우조선해양의 서울 사무소는 남대문 그랜드센트럴빌딩에 있었다.
한화오션은 당분간은 장교동과 남대문 두 사옥 체제로 운영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장교동에는 재무 등 지원 파트 직원들이 근무하고, 남대문에는 설계 직군이 남아 일하게 된다.
다만 이날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박두선 대우조선 사장을 비롯해 기존 임원 28명이 물러난 것을 두고 내부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장경험이 중요한 조선업 특성을 고려할 때 옥포조선소 임원 대부분이 물러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그러나 한화가 조선과 연관성이 높은 에너지·방산 분야 전문기업이라는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화그룹이라는 한 둥지에서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에 따른 것이다.
또 한화오션 대표로 김승연 회장의 최측근이자 에너지 분야 전문가인 권혁웅 ㈜한화 지원 부문 부회장이 선임된 데 대해서도 긍정적인 분위기가 우세하다.
조선업계는 옛 대우조선이 한화오션으로 출범한 것을 두고 “공정한 경쟁 여건이 마련됐다”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대우조선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에서 최고 기술력을 가진 세계 4위의 조선업체지만, ‘리더십 부재’로 인해 선사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 결과 다른 조선업체들보다 낮은 가격에 수주하는 사례가 생겼고, 2016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불황을 맞아 저가 수주로 국내 업체 간 출혈 경쟁을 유도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한화오션 출범으로 경영이 정상화되면 빅3가 ‘제값 받기’ 등을 통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아가 수주는 몰리지만, 인력난에 허덕이는 지금과 같은 초호황기에는 참여기업 수를 늘려 조선산업 규모를 키우는 것이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업계에 압도적으로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 산하에서 공기업과 같았던 기업이 민간화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특히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는 한화오션의 출범은 한국 조선업의 친환경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오션의 출범으로 국내 조선업의 기존 3강 체제는 더 굳건해질 전망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전 세계 발주량의 80%가량을 독점하는 LNG 운반선 시황이 우호적이고, 빅3 모두 3년 치가 넘는 수주잔량(남은 건조량)을 보유하고 있어 경쟁 심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다.
특히 한화가 한화오션을 LNG, 수소·암모니아 등 에너지와 조선을 포괄하는 해양·에너지 전문기업으로의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빅3가 주력 분야를 차별화할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빅3 내 인력 유출 논란을 야기하는 조선업 인력난은 하루빨리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부족한 조선업 생산직 인력은 1만2872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빅3 사이 인력 유출 논란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만큼 국내 조선업 규모 유지를 위해 정부 지원이 더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내 조선산업 규모 확대가 필수인데, 이를 위해선 정부가 빅3 외에도 중소 조선사에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국내에서 중형 조선사는 HJ중공업과 케이조선, 대한조선, 대선조선 등 4개사가 유일하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한화오션 출범은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을 올리고, 중국과의 기술 경쟁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에너지 전환에 따라 벌크선 등 중소선박의 교체 수요가 많아질 텐데 그런 부분을 담당하는 중소 조선사들이 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정부를 넘어 시중은행도 지원에 나서야 중국 조선업을 크게 따돌리고 나머지 시장을 가져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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