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유럽 한 도시의 광장,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던 제비 한 마리가 하룻밤 묵기 적당한 조각상 아래 내려앉는다. 그런데 제비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올려다보니 빗방울이 아닌, 눈물이었다. ‘행복한 왕자’ 조각상이 흘린 눈물이다. 두 눈엔 사파이어가, 손에 쥔 칼자루에는 루비가, 또 온몸은 황금으로 덮여 있는 행복한 왕자의 눈물은 떠나려는 제비의 발을 붙든다.
지난달 29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한 ‘행복한 왕자’는 1988년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자신의 두 아들을 위해 쓴 동화지만, 그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읽는 책’이라고 정의했다. 이 작품이 단순히 동심, 즉 어린아이의 마음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보기에도 좋지만,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무려 135년 전에 나온 ‘행복한 왕자’는 혹자에겐 진부한 주제, 다 아는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린 시절 봤던 이 동화책은 현재도 유효한 주제다. 오히려 어린 시절과는 또 다른 시각, 또 다른 마음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신선한 경험을 안긴다.
예컨대 만화 ‘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둘리보다 길동이가 더 이해되면 어른이 된 것이라는 이야기와 비슷한 이치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모든 걸 내어주는 행복한 왕자에게 동화됐다면, 성인이 된 지금은 타인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왕자를 바라보는, 그럼에도 그를 떠나지 못하는 제비의 사랑에 더 마음이 쓰인다.
제비는 갈대를 사랑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후에 행복한 왕자를 만나 또 다시 사랑에 빠진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왕자에게 희생의 가치를 배우고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준 왕자는 결국 또 제비의 곁을 떠난다. 제비는 반복된 사랑, 그 안에서 받게 되는 상처를 통해 스스로 성장해나간다. 제비와 행복한 왕자의 사랑은 곧 관객들에게 ‘가치 있는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행복한 왕자’가 더욱 특별한 건 뮤지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1인극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배우 혼자서 화자인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해 행복한 왕자, 제비, 다락방 청년, 성냥팔이 소녀, 재봉사 엄마와 그의 아들 등 극중 등장인물을 모두 연기하며 80분간 무대를 책임진다. 배우 양지원, 홍승안, 이휘종이 번갈아 연기한다.
배우들의 호연에 바이올린, 건반, 베이스, 퍼커션 등으로 구성된 라이브 세션의 생생한 연주가 더해지면서 이야기가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6월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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