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원작…박호산·유태웅 출연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질투를 조심하십시오, 각하. 질투는 자신이 사냥한 이의 심장을 가지고 놀면서 비웃는 녹색 눈의 괴물입니다."
오셀로를 파멸로 이끄는 그의 부하 이아고는 무대 어딘가에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는 듯 경고한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무대 뒤편은 금방이라도 괴물이 튀어나올 것처럼 칠흑같이 어둡다.
이달 12일 개막한 2023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 '오셀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요소는 어둡고 차가운 질감의 무대다. 어둠에 덮인 무대는 모든 인간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면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박정희 연출은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이 연극의 배경인 지하 벙커에 대해 "가장 불안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인물에게 잠재된 불안을 바탕으로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사랑도 꽃피고, 이아고의 활약도 나온다"고 했다.
빛과 어둠의 대비는 인물들이 품고 있는 입체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박호산과 유태웅이 연기하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뛰어난 군인이지만, 마음속에 열등감과 질투를 품고 있다. 이설이 연기하는 부인 데스데모나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나이 많은 이방인인 자신과 젊고 아름다운 그녀가 어울리는 짝인지 불안해한다.
유태웅은 "오셀로는 자존심, 자존감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인물"이라면서 "용병인 오셀로가 품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까지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아고는 자신을 부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오셀로를 향한 복수의 계획을 세운다. 이아고를 연기한 손상규는 심장마저 바칠 수 있다는 충성스러운 모습 뒤에 분노를 숨긴 영악한 악당의 면모를 능숙하게 선보인다.
손상규는 "'오셀로'는 가장 고귀한 인간이 가장 평범한 인간에게 추락당하는 이야기"라며 "이아고는 가장 평범하고 저열하게, 멋있지 않은 방식으로 극을 작동시키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비극은 질투라는 괴물이 자신의 마음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시작된다. 극의 후반부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인물들은 '현대판 지옥도'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박 연출의 목표를 달성한다.
이아고는 오셀로가 연인을 의심하게끔 끊임없이 거짓 증언과 증거를 만들어낸다. 이아고의 계략에 넘어간 오셀로는 연인의 부정 탓에 자신에게 질투가 찾아왔으니 그를 죽이면 질투라는 괴물도 사라지리라 믿는다.
데스데모나의 무고한 죽음은 어둠이 드리워진 무대에 불을 밝히고, 훤히 드러난 무대 어디에도 질투라는 괴물은 보이질 않는다. 데스데모나의 시종 에밀리아에게 진실을 들은 오셀로는 그제야 자신이 이아고의 계략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좌절감에 몸부림치며 큰 소리로 데스데모나의 무고함을 알리는 이자람의 연기는 180분간 이어진 장대한 비극의 끝을 알리고, 괴물이 돼버린 오셀로는 자기를 심판하며 힘없이 무대 위로 쓰러진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공연은 다음 달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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