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한윤지 작가] 태양이 지나간 궤적에 상처가 난다.
내가 크리스 맥카우의 사진을 만난 건 사진 전문 서점인 닻프레스에서 진행된 다른 사진 전시를 보러 갔을 때였다. 보러 간 전시는 아쉽게도 와 닿지 않았다. 뜻밖에 크리스 맥카우를 소개하는 리플렛을 발견했을 때 보물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사진작가 크리스 맥카우(1971~)는 태양의 궤적을 찍은 인화 작품 ‘Sunburn’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린 시절 문화 센터에서 사진을 배운 이래로, 80년대에 스케이트 보딩 사진과 펑크 락 사진을 찍으며 점차 사진 세계로 들어왔다. 모든 사진 기법 중 대형 카메라로 찍는 사진과 고전적인 백금 인화가 그와 잘 맞았고 이를 활용해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에게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003년, 그가 친구들과 미국 유타주에서 캠핑하다가 잠에 들었을 때였다. 밤을 보내고 해가 이미 하늘 위에 떠 있을 때까지 실수로 카메라 셔터를 닫지 않았다. 카메라를 열어보니 태양의 경로에 따라 곡선을 그리며 필름이 타버렸다.
필름이 타버린 이유는 태양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인데, 강한 빛에 장시간 노출된 필름이 ‘솔라리제이션’이라는 현상을 겪은 탓이다. 솔라리제이션이란 네거티브 필름이 과한 노출 때문에 포지티브 상을 담는 현상을 말한다. 즉 이 필름은 현상해 포지티브로 바꿔 인쇄하는 일반적인 사진 과정을 거칠 수 없는 결과물이자 여러 장이 나올 수 없는 단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현상에 놀란 작가는 솔라리제이션을 작품화하기 위해 3년간의 괴로운 실험을 계속했다. 실험할 당시 마침 스튜디오에 있던 빈티지 인화지를 필름 대신에 넣고 더 많은 빛을 들이기 위한 거대한 공중 정찰용 렌즈를 사용했다. 사진을 확대해 인쇄하지 않고 한번 촬영된 네거티브를 그대로 작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큰 작품을 만들려면 그에 걸맞게 큰 카메라와 인화지가 필요했다.
작가는 직접 거대한 카메라를 제작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옮기며 촬영하기 위해 어디로든 갔다. 곡선을 그리는 샌프란시스코 태양의 경로도 촬영했지만, 직선으로 올라가는 태양을 찍기 위해서 적도로 갔다. 적도에서 찍은 태양은 일직선으로 올라가며 인화지를 강렬히 태웠다. 그는 “단지 종이에 선 하나 긋기 위해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적도까지 가는 행위가 좋은 의미로 제정신이 아니게 느낀다”고 말했다. ‘거대하고 고요한’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위해 알래스카에서도 작업을 했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의 물결 모양의 선, 비가 오는 날씨에도 이어간 촬영 때문에 물이 흐른 자국이 남은 화면은 그 상황과 날씨에 의해 만들어진 우연적이면서도 계획적인 결과물이다.
닻뮤지엄(닻프레스와 연계된 갤러리)에서 전시된 ‘Cirkut’은 회전하는 카메라를 이용한 작품이다. 최대 80시간까지도 이어서 촬영한 이 시리즈는 크리스 맥카우와 닻프레스가 합작해 만든 ‘Cirkut’이라는 사진책과 전시 ‘in to the sun’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세련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형식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닻프레스의 친절한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직접 책을 펼쳐 봤는데, 나무 상자 모양에 얇은 알루미늄 판이 끼워져 있고, 여기에 작품명과 전시명이 새겨져 있었다. 상자를 여니 아코디언 형태의 긴 사진이 나왔는데 검은색의 진한 밀도가 사진이기보다 나에게 다가온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질량 같았다.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수제 책으로, 책을 담는 상자가 대형 카메라의 필름 홀더와 비슷한 철제 슬라이드 미닫이 구조를 가진다. 이 책 안에는 카메라 노출로 태운 작은 종이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나 역시 그 작은 종이를 만져볼 수 있었다. 실제로 태양에 타버린 흔적이 눈앞에 있으니 비현실적이던 이야기들을 실제로 내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Into the Sun’ 전시에서는 두 벽을 가로질러 곡선형으로 이어지는 긴 프레임이 눈에 띈다. 카메라의 회전하는 움직임을 담은 듯한 이 긴 프레임은 공간과 시간을 담는 사진의 특성을 실제로 구현한 놀라운 설치 방식이다. 아쉽게 전시를 보러 가지 못했지만 사진으로나마 보며 감탄했다.
나는 크리스 맥카우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치열한 고민과 수행에 감탄했다. 사진은 프레임 내부에 담기는 이미지이기보다 프레임 외부의 과정이기에 그가 겪은 경험들이 관객에게 결과물로 전달된다는 사실이 참 멋졌다. 태양이 종이 위에 상처를 내며 지나가는 행위가 주는 ‘파괴적이며 강렬한’ 느낌과 ‘차가운 메탈릭한 분위기’가 주는 대조, 그리고 이 대조로 인한 긴장감이 아름답다.* 우주가 주는 아름다운 상처를 담은 그의 작품에 스스로 많은 자극을 받았다. 나 역시 프레임과 프레임 이면을 모두 바라보는 상처의 미학을 이해해야겠다. 언젠가 그의 작품을 실물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동경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크리스 맥카우를 내면에 기록하며 창작자로서의 마음을 다진다.
*전시 리플렛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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