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선생은 있으되 스승은 없다’는 세간의 찬 시선이 여전하다. 푸르른 5월에 스승의날이 다가왔지만 교육현장에선 한숨 섞인 자조가 현재진행형이다. 무릇 진정한 교육은 인류 역사를 잇는 일이며 지혜를 공유하는 길이다. 그런 공교육에 헌신하는 교사가 진짜 스승이 될 수 있는 법이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내 아이 출세시켜야 탁월한 교사라 믿는 그런 사회에선 진정한 스승이 설 자리는 없다. 학생과 교사·학부모가 스스럼없이 교육을 논할 때, 그리고 막힘없이 소통할 때라야 교사가 있고 교육이 존재할 수 있다. 교육의 질은 구성원 간 소통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육의 미래는 소통에 달렸다고 하지 않던가. 조숙형 대전송촌초등학교 교사가 미련하리만큼 소통하는 교육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를 빛내는 삶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詩 ‘너에게 묻는다’
세상 누구나 각자의 삶을 태워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비록 작은 불꽃이든 커다란 화염이든간에 그에게 삶은 빛내는 삶이다. 그러면서도 그 빛이 자신을 빛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세상을 밝히기 위한, 세상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불빛이라면 비록 연탄재 같은 삶이라 한들 이보다 고귀한 삶이 어디 있을까 싶다. 조 교사에게 교단에 서는 꿈은 작지만 뜨겁게 타올랐다.
“처음부터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특출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방면에 조금씩의 재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교직에 대한 꿈이 생겼고 교대를 나와서 선생님의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었죠.”
사람들은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자신의 성장기 고향을 찾는다. 나의 기쁨이자 슬픔, 나의 스승이었던 곳이 바로 고향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이미 다 만들어진 나에게 철들고 성장한 이후 만난 어느 곳도 고향이 될 순 없다. 나무가 아무리 가지를 뻗어 나가도 뿌리를 박은 그 자리에서 생명의 자양분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제 누군가의 스승이 된 그에겐 세월이 흘러도 뚜렷한 은사의 기억이 각인된 그때가 바로 고향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습니다. 늘 종례 때면 자작 시를 읊어주시거나 때때로 마음을 시로 들려줬거든요. 우리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시구 하나하나가 어린 제 마음에 꽂혔죠. 지친 제게는 그 시들이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사가 된 제게도 그런 영향이 컸는지 가끔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저를 종종 볼 때면 그때의 따뜻함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곤 해요.”
◆교사에게 필요한 ‘사명’
한때 교실은 넉넉한 포용의 공간이었다. 스승은 제자의 단점까지 소중히 여겼고 배움의 터인 학교에선 학생들의 허물마저 학습의 한 과정으로 끌어안았기에 웬만한 잘못이나 실수도 용서되곤 했다. 생존을 위해 남을 제쳐야 하고 심지어 짓밟기도 하는 경쟁을 강조하는 오늘의 사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때론 사회에서 외면되는 양보와 배려·관용과 희생·우정과 의리 등의 가치가 학교에서는 더욱 높이, 아니면 절대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조 교사가 교단에 서기로 맘먹은 건 하 수상한 시절, 그런 가치야말로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저는 사랑으로 제자를 양성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교사가 됐습니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늘 사랑을 베푸는 교사가 돼야겠다고 다짐하며 교단에 섰죠. 그렇게 2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했는데 요즘에 와서는 걱정스럽기도 한 게 사실이에요. 훈육하는 것조차 아동학대로 의심받기 쉽고, 교육자로서의 보람도 떨어지는 데다 사회적 지위와 주어진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교사의 동기부여가 잘 안되니 직업인으로만 살겠다는 분들이 너무 많아진 까닭이죠.”
당장 스승의날이 있는 5월이면 교단엔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다. 원치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면 좋으련만 으레 학교와 교사에 대한 질타만 더욱 거세고 가득하다. 이 과도한 관심망에 포획되지 않으려면 교사들은 알아서 몸조심하는 게 유일한 상책이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순수한 마음이 모여 스승의날이 만들어졌는데 교사·학부모·학생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날이 된 퍽 씁쓸한 풍경이 벌써 여러 해를 반복해 올해도 다가오고야 말았다.
“스승의날 본질이 퇴색돼 버렸어요. 저도 스승의날은 그냥 쉬고 싶어요. 주변에는 교사생활 하면서 입은 여러 상처 때문에 병가에 들어가거나 명예퇴직을 고민하는 분들이 흔합니다. 모두 훌륭한 교사들인데 안타깝죠. 굳이 스승의날을 유지한다면 학년 말로 하거나 2월에 하는 게 훨씬 낫다고 봅니다. 지금은 교사도 불편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설명하는 것도 지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참된 스승으로 사는 길
교육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이기적으로 기울 때 학교와 교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사로서 품은 고상한 이상을 추구하려는 교육행위는 냉소의 대상이 돼 버리기 일쑤다. 진정한 교육에 헌신하려는 교사들에게 돌아가는 건 인정과 존경이 아니라 세상 물정 모르는 덜떨어진 사람 아니면 고고하게 살려는 무모한 독불장군이라는 낙인이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그는 뚜벅뚜벅 힘겨워도 스승의 길을 포기 않고 걷는다. 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기준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인간을 가르치는 최고의 기여자라는 자부심은 아직 놓지 않아서다.
“교사 각자가 가진 무기와 강점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저는 아이들과 소통할 때 살아있음을,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낍니다. 교실에서 항상 아이들과 매일 책을 읽고 주인공의 감정을 공유하는 독서교육을 하며 꾸준한 소통으로 레포를 형성하죠. 또 주제별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과 생각을 나누고요. 아이들 마음을 읽다가 가끔은 울기도 합니다. 교사 생활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소통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요.”
학교에선 교사로, 집에서는 한 아이의 부모로 살다 보니 소통하는 교육자로서 조 교사의 그릇은 연차가 높아질수록 더욱 넓고, 견고해지고 있다.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주는 것조차 힘들게 된 2023년 스승의날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마냥 지쳐 좌절하고만 있진 않을 요량이다. 아직 ‘선생님, 존경합니다’라고 말하는 제자들이 많이 있고, 길을 가면 뒤에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뛰어와 주는 제자들이 있다. 무너졌다는 교권이라지만 이만하면 교사도 해볼 만한 직업 아닌가. 열정과 정성을 다하며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조 교사를 보는 내내 스승 가는 길에는 제자가 닦아줄 길도 있다는 괜히 외면하고만 있었던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이 교실에 내 마음 알아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걸 알아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곁에는 교사로의 아픔과 어려움을 가장 잘 알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전 끝까지 교단을 지킬 거예요. 이순간에도 교단에 선 수많은 교사들이 지성과 인성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교육현장엔 희망이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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