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먼트뉴스 김민서 인턴기자]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모든 가족 영화를 통틀어 현실 반영이 제일 무딘, 다정한 기운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접목(接木)된 가족, 대체 가족을 소재로 가족의 본질에 대해 되묻는 그의 여러 작품들을 상기시키는 지점도 분명 있지만, 보다 더 확장된 차원에서 채워지고, 포개어지고, 이어지는 삶의 모든 순환을 큰 배경으로 둔 채, 그 안에서 가족의 서사를 풀어낸 인상이 강하다. 삶과 죽음, 계절의 이동, 시간의 흐름에 따른 노화와 성장, 이별과 만남 같은 자연적인 섭리에 대해 담담한 톤 앤 매너로 그리는 것이다. 영화는 한 여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 동생 '스즈'를 만난 세 자매가 그를 거둬들인 후 다음 해 여름을 맞이할 때까지의 여정을 온기 어린 시간과 기억들로 담아낸다. 예외의 사건이라거나 소동 없이 무탈하고 소박한 일상의 기록이 다이지만, 계절의 흐름에 따른 공기와 습도의 변화, 음식을 나눠 먹고 추억을 채우고 되새기는 장면만으로도 담백한 재미와 잔잔한 여운이 보장된 작품이다.
영화는 다양한 차원의 순환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미시적인 차원에서 포착할 수 있는 건 부재한 자리에 채워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세 자매와 스즈의 만남에서부터 관찰된다. 아버지의 장례식장, 즉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이를 기점으로 또 다른 관계를 잇고 동행해가는 과정은, 얼핏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이별을 딛고 새 삶을 틔워가는 생의 원리에 대한 서정적인 구사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엄마의 공백 대신, 그와 동일한 나이의 든든한 고목이라거나, 떠나간 연인의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틈입하는 과정 같은 것들은 관계의 순환에 대한 자연스러운 묘사일 테다. 한편, 이어지는 것에 대한 감각도 극 안에서 섬세하게 다뤄진다. 극 중 많은 음식들이 등장하지만,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매실주일 것이다. 극중 자매들은 할머니의 10년된 담금주를 비롯해 계속해서 매실주를 저장하고 새로 담근다. 이는 가족적인 전통을 잇는 것(종적인 연결)처럼도 보이지만,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 것(횡적인 연결)에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예컨대 스즈가 언니들과 함께 매실주를 직접 만들고 시음하는 시퀀스는 이복동생인 스즈가 새로운 가정에 배어드는 과정과도 같고, 성원 간 크고 작은 갈등의 골을 누그러뜨리는 데 매실주가 긴요히 쓰이는 것은 관계를 다시 접착시키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한편 영화가 한층 더 사려깊게 느껴지는 지점은 보이지 않는 지나간 시간을 살피는 성숙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세 자매는 애어른 같은 스즈를 처음 본 순간, 가정을 파탄낸 여자의 아이라는 구획이 아닌, 어른들을 대신해 아이가 짊어져야 했을 무게에 대해 헤아리게 되고, 결국 스즈를 거둬들이는 결단을 하게 된다. 또 아버지에 대해 부분적인 기억과 원망을 지닌 채 성장해 온 세 자매들은, 아버지와 좋은 추억이 더 많은, 그래서 그를 그리워하는 스즈의 입장을 그대로 존중해주며, 때로는 겪지 못했던 시간을 스즈를 통해 공유받고자 한다. 예컨대 막내 스즈가 잔멸치 덮밥에 얽힌 아빠와의 추억을 고백하자 셋째 '치카'가 "네가 나보다 아버지 기억이 많을 거야. 언제 들려줘, 아버지 얘기."라고 반응하는 시퀀스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따스한 사람들만 가득한 이 영화를 두고, 혹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라 칭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 속 온기가 현실에서 보기 드문 것일지언정, 결국 현실에서도 보고싶은 아름다움에 대해 그린다는 점에서 폄하하고 싶지많은 안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내는 것도 물론 필요한 역할이지만, 현실에 없는 미덕을 창조해 사유를 이끄는 것도 영화의 중요한 몫일 테니 말이다. 큰 골자로 구분지으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해 식당 아주머니 '사치'의 장례식에서 종결되는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아버지와 아주머니 두 분 다 임종 전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음에 기쁘다'라는 말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 통찰은 네 자매들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관객이 느낄 어떤 깨달음과도 상통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가족 서사가 주요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일상에 널린 삶의 아름다운 순환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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