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영화 거장 다르덴 형제는 언제나 사회의 그늘을 조망했다. 그리고 칸을 넘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이제 일반 극장에서 유럽에 팽배한 이민자 문제, 그리고 아동 노동력 착취 및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유의 거친 다큐멘터리 필름 같은 연출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건 희망이자 우정이다. ‘토리와 리키타’는 그렇게 냉정한 현실을 따스한 온도로 풀어낸다.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중 하나인 다르덴 형제다. 두 번의 황금종려상을 비롯, 심사위원 대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그리고 지난해 75주년 특별상까지, 칸과 더불어 수많은 영화인들이 감독의 영화를 칭송해왔다. 형인 장 피에르 다르덴이 1951년생, 동생 뤽 다르덴이 1954년 생이다. 어느덧 70세를 넘나드는 나이이지만 거장의 작품 혼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토리와 로키타’를 보노라면 이제 다르덴 형제는 호흡마저 공기 대신 영화로 쉴 것 같다. 이미 영화라는 것을 그들 몸에 자연스럽게 체화한 느낌이다. 자신이 자라온 동네(벨기에 세랑)에서 바라본 것들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 과거엔 산업의 영화(榮華)를 누렸던 마을에서 점차 색이 바라져가는 곳, 자신이 체험하는 변화를 담기에 그들의 영화는 늘 진실의 지척으로 다가선다.
하여 거시적인 메시지도 일상처럼, 가장 영화로운 언어를 사용해 미니멀하게 접근한다. 내 주변에 있던 소재였지만 묵인하고 넘어갔던 것들의 본질로 관객을 이끌고 간다. ‘토리와 로키타’ 역시 그랬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 하지만 심각한 상황이 오히려 서스펜스를 안긴다. 주변의 어린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위험에 노출됐고, 그들의 위협은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이웃으로부터 시작됐다.
‘토리와 로키타’는 정녕 차고 넘침이 없다. 소위 요즘말로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한다. 장황한 서사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연기의 스킬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조율하지 않는다. 심지어 토리와 로키타를 연기한 파블로 실스와 졸리 음분두는 지금까지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일반인 배우였다. 카메라 워킹과 음악 역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절제가 돋보인다.
영화는 대안가족을 형성하고 있는 토리와 로키타의 관계, 우정과 우애의 감정을 그린다. 허나 두 사람에 대해 많은 설명이 없다. 전사가 될 첫 만남 역시 몇 줄의 대사로 치환된다. 같은 이민자이지만 서로 다른 체류 가능 여부가 극중 갈등을 야기한다. 바로 유대의 단절이 선사하는 공포다. 이에 따른 서로에 대한 갈급은 로키타의 공황 장애로 표현된다.
토리와 로키타의 관계는 결국 주변 상황 변화에 따라 휘몰아친다. 그 변주는 시간의 흐름 위에 카메라의 시선으로 비칠 뿐이다. 하여 두 사람이 어떻게 남매가 됐고, 왜 두 사람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울림을 선사하는 것, 그렇게 ‘토리와 로키타’는 진정한 시네마로 관객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시퀀스다. 이 부분만 떼어 단편이라 말해도 좋을 정도다. 도로에 두 대의 차량이 지나친다. 하나는 제노 포비아를 상징하고, 다른 하나는 주변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은유한다. 그렇게 감독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영화적 언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부여받고 관객들은 극장문을 나서게 될 터다.
영화 ‘토리와 로키타’는 현재 극장가에서 절찬 상영중이다. 89분. 15세 이상 관람가.
사진=영화사 진진
권구현 기자 kkh9@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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