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영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모두를 먹먹하게 했습니다.
2023년 5월 6일 방송된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가수 현진영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신 곳을 찾아갔습니다.
이날 현진영과 그의 아내 오서운의 집에 오서운의 가족들이 놀러 왔는데 오서운은 식구들을 위해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현진영은 조카들 앞이라서 최대한 안 흘리며 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진영은 조카에게 '살림남' 출연에 대해 주변 반응이 어떠냐고 물었고 조카는 실제로 진짜 흘리면서 먹는지 궁금해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진영은 창피했냐고 물었고 조카는 이내 아니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현진영은 댄서를 꿈꾸는 조카 은채에게 "살을 더 빼야 할 것 같다. 더 호리호리하거나 근육질이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진영은 "춤은 흠잡을 데가 없다. 살을 빼야 한다"라고 당근과 채찍을 줬고, 조카는 살을 빼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진영은 처가족들을 만난 뒤 부모님을 뵈러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현진영은 먼저 아버지의 봉안당을 찾아갔는데 현진영의 아버지는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 허병찬으로, 현진영에게 음악적으로도 삶에서도 친구 같으면서도 정신적 지주가 되어줬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현진영은 아버지에게 근황을 전하고, 신곡을 들려줬습니다.
현진영은 아버지가 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명동에 엄청 큰 커피숍을 열고, 친구들과 화투 칠 때는 아프지 않다는 어머니를 위해 별채를 마련했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진영은 "그 많던 재산을 엄마 병 낫게 한다고 다 썼다. 병간호에 관한 건 물불을 안 가리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도 아쉬워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어머니의 임종 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병간호로 3일 동안 밤을 새운 아버지가 깜빡 잠든 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갔는데 현진영은 묘비를 깨끗하게 닦고 잡초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챙겨 와 놓았습니다. 현진영은 "어머니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은연중에 기억을 떠올리면 흐릿하다. 그러다가 만든 노래가 '흐린 기억 속의 그대'다. 연인의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준형과 김지혜는 현진영의 얘기를 들으며 "그냥 댄스곡인 줄 알고 신나게 불렀는데"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현진영 '할아버지가 재벌 수준의 재력가였다'
한편 최근 가수 현진영이 부유했던 어린 시절을 방송에서 공개한 바 있습니다. "새롭게하소서CBS"에는 현진영이 출연해 인생이야기를 전했는데 영상에서 MC 주영훈은 현진영에게 "어린 시절 부유한 가정 속에서 자랐다고 들었다"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현진영은 "재벌 수준이었다. 재력가였던 조부모님의 재산을 아버지가 물려받았었다. 또 아버지가 우리나라 최초로 '트리플 에이'라는 미8군 빅밴드를 만든 1세대 재즈피아니스트였다. 당시 재즈 뮤지션들은 공연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사비를 들여서 밴드들에게 월급을 줬었다. 돈을 쓰시면서 음악을 하셨던 분이다"며 "당시 집도 부의 상징인 유엔빌리지에서 살았다. 집에 수영장도 있었고 일하시는 분들 별채도 따로 뒀었다. 저는 명문 리라초등학교에 다녔었다"고 과거를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까지만 자랑하겠다. 지금은 없는 거니까"라고 씁쓸하게 말하며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어졌다고 밝힌 그는 "어머니가 8년간 위암 투병을 하셨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어머니 병수발로 전 재산을 다 쓰셔서 반포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며 "어머니 키가 170cm가 넘었었다. 사진으로 보면 모델 같은데 제 기억 속에는 야윈 모습 밖에 없다. 좋은 기억이 없고 아픈 모습 밖에 없다"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이 기억나냐"는 질문에 현진영은 "학교에 있을 때 동생에게 어머니의 비보를 처음 들었다. 곧바로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 갔지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더라. 깨우고 옆에 눕고 그랬는데도 안 일어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첫눈이 내려서 첫눈 트라우마가 있다. 밖에도 안 나간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진영은 "어머니가 떠난 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신문과 우유 배달, 중국집에서 접시 닦기 등을 하며 생계 전선에 뛰어 들었다"라며 "그러다 우연히 대학로에서 흑인들에게 배운 춤을 추게 됐고 댄스팀 단장 눈에 들어오게 됐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공연을 시작했고 돈을 벌었지만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해 그는 좌절했다고 말했습니다.
낙심했던 현진영은 극단선택을 결심까지 했는데 그는 "다리를 건너다 뛰어내렸다. 물속에 들어갔는데 발에 뭐가 닿는 게 느껴지더라. 그 순간 갑자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물 밖으로 나갔다. 그때 내 선택이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잘하면서 왜 한강에서 죽으려고 했나 바보 같다고 느꼈다"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한편 현진영은 1990년 1집 앨범 ‘New Dance 1′으로 데뷔, 1992년에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히트를 치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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