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올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최대 화두는 ‘경기 시간 단축’이다.
MLB 사무국은 2023시즌을 앞두고 규칙 개정에 나섰다. 인플레이 타구를 늘리기 위한 수비 시프트 제한, 경기 속도를 올리기 위한 피치 클록, 주자 보호를 위한 베이스 크기 확대 등이 골자였다. 이중 가장 관심을 끈 건 피치 클록이다. 피치 클록은 투수가 주자가 없으면 15초, 주자가 있어도 20초 이내에 공을 던지도록 한 규정이다. 타자는 투구 준비 종료 8초전(주자가 없으면 7초, 있으면 12초)에 무조건 타격 자세를 취해야 한다. 투수가 어기면 볼 1개, 타자가 어기면 스트라이크 1개가 자동으로 주어진다. 이는 투수나 타자가 지나치게 준비 시간을 끌어 야구 경기가 전반적으로 길고 지루하다는 비판을 의식해 도입한 규정이다.
피치 클록 도입은 일부 야구인들의 반발을 불렀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AP통신은 2일(이하 한국 시각) “MLB가 개막 한 달 동안 9이닝당 평균 경기 시간 2시간 37분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3시간 5분보다 28분이나 단축됐다”며 “선수들은 물론 직원들도 가족들이 깨어 있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전했다. 피치 클록 위반은 지난달 총 425경기에서 313차례 발생해 경기당 0.74개를 기록했다.
MLB 사무국이 피치 클록과 함께 도입한 수비 시프트 제한, 견제 횟수 2회 이내로 제한도 경기 진행이 빨라지는 효과를 낳았다. 경기 시간은 줄고, 경기는 역동적으로 변했다. 베이스가 커지면서 도루는 25년 만에 최고인 40%나 증가했다. 경기당 도루는 지난해 1.0개에서 올해 1.4개로 늘었다. 도루 성공률도 지난해 75.5%에서 올해 79.2%로 향상됐다. 시프트 제한 등으로 타율도 상승했다. 좌타자 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0.229에서 0.247로 향상됐고 우타자는 0.234에서 0.250으로 올라갔다. 인플레이 타율(BABIP)은 좌타자가 9리 오른 0.292, 우타자는 7리 오른 0.302가 됐다. 타율이 증가하고 도루가 늘면서 경기당 득점 또한 지난해 8.1점에서 올해 9.2점으로 늘었다.
지속적인 인기 하락과 야구팬 노령화 조짐에 위기의식을 느낀 MLB 사무국은 수년 전부터 ‘시간과 전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4년 1차 스피드업 규정을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혁신적인 규칙들을 도입하며 경기 시간 단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MLB 사무국이 야구의 묘미와 전통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피드업에 목을 매는 이유는 흥행 때문이다. 늘어지는 경기 시간이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기 관람 시 지루함을 방지하고, 자꾸만 떠나가는 관중을 붙잡기 위해 경기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 KBO리그도 ‘경기 시간 다이어트’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 시즌을 앞두고 경기 스피드업 규정을 강화했다. 감독과 코치의 마운드 방문 시간이 25초로 기존보다 5초 줄어든다. 30초가 지난 시점에는 포수가 포구 준비를 마쳐 경기를 빠르게 진행하도록 했다. 심판 고과에 스피드업 평가를 추가해 스피드업 규정의 적용을 독려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유도하기로 했다. KBO는 올해 정규시즌 평균 소요 시간 목표를 지난해보다 6분 단축한 3시간 5분으로 세웠다.
다만 효과는 미미하다. 3일 오전까지 KBO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18분(이상 연장전 포함)에 이른다.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도 2020년(3시간13분), 2021년(3시간16분), 2022년(3시간15분)보다 오히려 길어졌다. 평균 경기 시간이 가장 긴 팀은 LG 트윈스로 3시간 28분에 이른다. 야구계에선 경기 시간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본지와 만난 한 야구인은 “시즌 초반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경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박진감이 떨어진다. 미국과 일본은 경기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 KBO리그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MLB처럼 혁신적인 규칙을 도입하고, 파격적인 실험을 하지 않는 한 KBO리그 경기 시간은 매년 제자리걸음 할 가능성이 크다.
프로야구가 유튜브, 넷플릭스, 게임 등 모든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유튜브 쇼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릴스 등 짧은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길고 지루한 프로야구 경기는 콘텐츠로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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