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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에 흰 블라우스를 차려입은 영정 사진 속 청년의 얼굴이 앳됐습니다.
2023년 4월 20일 오전 인천시 중구 인하대병원 빈소 앞에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이 놓여 있었습니다. A 씨를 포함해 남 씨 일당에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는 3명으로, 모두 20∼30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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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한 운동선수였던 고인을 기리고자 여러 체육 단체에서 보낸 화환들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빈소에서는 목 놓아 우는 애달픈 소리만 간간이 새어 나왔습니다.
전세 사기로 보증금 9천만원을 잃고 숨진 피해자 A(31·여)씨의 마지막 길은 유족의 끝없는 오열 속에 치러졌습니다. 슬픔에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아버지 B(54)씨는 다른 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딸을 배웅했습니다.
그는 비틀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주며 딸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영정을 두 손에 든 여동생은 내내 고개를 떨군 채 침통한 표정이었습니다.
'국대 출신' 전세사기 피해자 발인…'건축왕' 관련 세번째 사망자
20일 오전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서 100억원대 전세사기 행각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건축업자, 이른바 '건축왕'의 피해자 중 세번째로 세상을 떠난 육상 국가대표 출신 30대 여성의 발인이 엄수되는 도중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타지에 사는 아버지와 단둘이 일본 여행을 갈 만큼 평소 살뜰히 가족을 챙기던 딸이었습니다.
A씨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내 최연소 육상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돼 여자 해머던지기 종목 5위를 한 유망주이기도 했습니다.
국내외 대회에서 선전하며 선수와 코치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2019년 9월 인천 미추홀구에 정착한 뒤 '건축왕 전세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A 씨는 재작년 보증금 9천만 원에 재계약했는데, 지난해 아파트가 '건축왕' 남 씨의 사기 행각으로 경매에 넘어가면서 전세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이 집은 근저당권이 설정된 데다 전세보증금도 8천만 원이 넘어, A 씨는 최우선변제금조차 돌려받지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30대 청년에게 9천만원은 사실상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었습니다.
관은 A씨와 이웃이기도 했던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 등의 손에 들려 운구차에 실렸습니다. 아버지 B씨와 여동생, 대책위 관계자들은 차에 실린 관에 고개 숙여 목례하며 마지막 인사를 보냈습니다.
대책위 관계자는 "유족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언론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A씨는 지난 17일 오전 자택에서 손 글씨 유서를 남기고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으나 결국 숨졌습니다. 그는 세 번째로 숨진 전세 사기 피해자입니다.
앞서 지난 2월 28일과 지난 14일에도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피해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전세 사기꾼들 모두 신상공개 하고 사기친 액수 다갚을 때까지 구치소에 끝까지 감금해야된다 1인당 두채이상 소유못하게 하는 법도 발의해야. " ,"내잘못아닌데도 내가 다 감당해야하니 미치고 팔짝뛸 노릇이지 진짜 죽고십은 마음밖에 없다!" ," 여러분~! 전세사기범들,기업 횡령범들,마약 관련 모든 관련자들 신상공개 청원합시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전세사기 조문 김기현…항의에 “말꼬리 잡지말라” 마찰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왼쪽부터)·김기현 대표·박대출 의원이 19일 오후 인천지역 3번째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의 빈소에 조문하기 위해 인천시 중구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 연합뉴스
한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빈소를 조문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피해대책위원회로부터 항의와 질타를 받았습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김 대표는 유상범 수석대변인·박대출 정책위의장과 함께 19일 오후 9시쯤 인천 모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31·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습니다.
이어 빈소에서 만난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 등 회원 8∼9명과 비공개 접견을 했는데 서로 언성을 높이며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안 위원장은 "김 대표에게 전세사기 사태에 대한 생각을 물었는데 사태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며 "대책위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이번 사태는 사회적 재난이고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계속 얘기했는데 이조차 모르고 있어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고 연합뉴스에 전했습니다.
이어 "김 대표는 이번 사태를 사기꾼이 사기를 친 사건으로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며 "대책위의 질의가 이어지자 김 대표는 대화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꼬리 잡지 말라고 했고 급기야 마찰이 빚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애초 경매 중단부터 시작해 제도적 문제점을 보완해 달라고 건의하려 했는데 대화를 진전할 수 없었다"며 "뉴스 몇 개라도 찾아보고 왔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1시간가량의 접견이 끝나고 장례식장을 나온 김 대표는 대책위와 어떤 대화가 오갔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습니다.
접견에 동석했던 유 수석대변인은 "정부의 대책에 대해 부실한 부분에 대한 (대책위의) 질타가 있었고 충분히 들었다"면서 "대책위를 만나는 건 예정된 게 아니었고 조문만 하러 왔는데 (대책위가)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만났다"고 매체에 말했습니다. 박 정책위의장은 "(접견에서는) 각 아파트 동별 대표들이 각자의 사정을 말했다"며 "앞으로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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