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히든캐스트(127)] 김성현, ‘호프’로 배운 절제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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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히든캐스트(127)] 김성현, ‘호프’로 배운 절제의 미

데일리안 2023-04-15 09:42:00 신고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알앤디웍스 ⓒ알앤디웍스

무대에서 배우들은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보여지는 직업, 선택받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때때로 자신의 개성을 숨겨야 하는 이들도 있다.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호프’)에서 책갈피로 불리는 앙상블들도 그렇다. 책갈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 배우 김성현은 “에너지를 표출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게 가장 힘들다”며 이 작품을 통해 ‘절제의 미’를 배웠다고 말한다. 분명한 건, 그 안에 ‘존재’하는 책갈피들 덕분에 ‘호프’가 더욱 돋보인다는 것이다.

-뮤지컬 ‘호프’에 출연 중이죠. 어떻게 이 작품과 함께 하게 됐나요?

작년에 뮤지컬 ‘킹아더’에 참여했어요. 제작사 알앤디웍스와의 첫 작업이었어요. 그 후에 계속해서 인연이 돼서 작년 여름 ‘썸머브리즈: 더데빌콘서트’에도 참여하게 됐고, 너무 감사하게도 이번 ‘호프’까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아마 창작진 분들께서 지금까지의 작업을 통해 보여드린 저의 모습이 ‘호프’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도 이 컴퍼니와 그간의 작업들이 너무 즐겁고 좋았던 만큼 ‘호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이 작품에 참여하기 전, 김성현 배우에게 ‘호프’는 어떤 작품이었나요?

아무래도 초연된 해에 ‘한국뮤지컬어워즈 8관왕’이라는 수식어가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인식되어 있었어요. 제가 참여했던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에 자부심이 들 정도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호프’에 참여했던 다른 동료들에게 이 작품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는데 다들 ‘배우로서 너무 특별하고 행복한 작품이었다’고 입을 모았던 걸로 기억해요.

-작품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만큼, 직접 배우로서 참여하는 것에 각오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연습 전부터 이 작품에서 책갈피(앙상블)는 각자 중요하게 맡고 있는 역할들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참 배우로서의 성장에 대한 고민과 연기에 대한 갈망을 느끼던 시기라 ‘내가 무슨 역할을 맡게 되던 잠깐이라도 그냥 흘러가는 역할이 아닌, 나라는 배우의 개성과 창의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살아있는 인물들을 만들자’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첫 리딩 때가 기억나요. 이 작품에 처음 임하는 배우들은 대본을 자유롭게 탐험하는 게 느껴졌어요. 경력직 형, 누나들은 첫 리딩이지만 이 작품이 가진 힘을 모두가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도록 감정의 끈을 꽉 붙들고 있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리딩이 끝나고 한 명씩 소감을 얘기하는데, 각자의 소감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이 작품을 뜨겁게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번 2023년 ‘호프’라는 배가 도착할 목적지는 꽤 멋진 곳이겠구나. 내가 정말 위대한 사람들과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구나.

-현재 책갈피 역엔 김성현 배우를 포함해 네 명이 함께 하고 있어요. 서로의 합은 어떤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번 책갈피들은 제각각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 같아요. 나이는 비슷하지만 취미나 관심사, 좋아하는 것도 각자 다 다르고 배우로서 가진 색깔들도 다들 뚜렷해요. 하지만 연습할 때나 무대 위에서 열정의 온도는 모두가 비슷해서 놀라웠어요. 여태껏 했던 작품 중에서 공식적인 연습시간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함께 했던 책갈피들로 기억될 것 같네요.

ⓒ알앤디웍스 ⓒ알앤디웍스

-‘책갈피’로 불리는 ‘호프’의 앙상블은 사람이 아닌, 사물을 연기해야 하는 터라 더 연기하기에 까다로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 부분이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인 것 같아요. 사물로 존재할 때, 그리고 호프가 회상을 통해 과거로 전환될 때 우리는 무엇을 얼마만큼 표현해야 하는지가 가장 어려운 점이었죠. 대략 연습 중반까지는 다른 작품에서의 앙상블처럼 몸으로, 또 표정으로 열심히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방법은 이 극장의 크기, 이 작품의 무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창작진의 피드백을 통해 많이 느꼈어요. 연출님께서 해주셨던 코멘트가 생각이 나요. ‘들어주기만 해. 그걸로 충분해.’ 이게 아주 큰 힌트가 됐어요. ‘굳이 표현하려 들지 않고 열심히 들어주는 것’, 책갈피로서 존재할 때 핵심이 되는 마음가짐이 됐죠.

-서기, 독일군, 라빈 등의 역할도 맡고 계시죠.

법정서기는 법정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을 기록하거나 판사의 명령을 준비하는 일 등 법정에서의 많은 일상들을 책임지는 역할입니다. 기본적으로 법정에서의 모든 사실을 성실히 기록하는 객관성이 중요한 직업이지만 한편으로 호프라는 인물을 매우 궁금해 하는 인간적인 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판 장면 중간마다 그런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들을 고민했습니다.

독일군은 이 작품 속에서의 수용소에 유태인들을 관리하는 나치친위대장교입니다. 유태인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계획이 들어있는 종이로 교신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불시검문을 하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너무 잔인하기도 하고 눈뜨고 보기 마음 아픈 장면이지만 호프의 가장 큰 트라우마 중 하나로 보여야 하기에 기능적으로 흘러가기를 거부하고 나라는 배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철저하게 이 배역을 깊이 탐험하며 내면에 있는 어두운 본성 같은 것들을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라빈은 이 수용소에서 가장 빨리 병들고 노동 가치를 상실하여 제일 먼저 가스실로 불려 나가는 유태인입니다. 라빈으로 등장해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아서 그 시간 안에 병들어가는 연기를 빠르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다만 제가 실제로도 얼굴이 하얗고, 마른 편이라 ‘핏기 없는 새하얀 얼굴’이라는 가사에는 너무 적합해서 이미지 덕을 본 건 좀 있는 것 같아요(웃음).

-김성현 배우가 가장 애정하는 넘버(혹은 장면)는?

‘나의 집’ 넘버를 가장 좋아합니다. 단순히 음악이 너무 좋기도 하지만 담겨 있는 드라마가 너무 절절해요. 마리, 과거 호프, 베르트 세 사람이 현재 놓여있는 상황도 너무 잘 보이고 특히나 마리 인생에서 베르트와의 약속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처절하게 표현되어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연습실에서 장면연습 때마다 마리 역 누나들의 표정을 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는?

저는 호프의 원고처럼 누구에게나 각자의 무언가들이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의 관객분들이 저마다의 원고는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로 인해 일상에도 더 긍정적인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힘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넘버와 스토리 자체만으로 즐기기에도 충분하고요.

-이 작품에서 앙상블로 존재한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합니다.

앙상블이지만 주·조연들과 같이 안무하고 대사하고 호흡하는 장면이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다른 작품의 앙상블과는 달리 주·조연들과 연습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어요. 배우들끼리도 더 끈끈해지고 형, 누나들 보면서 공부도 되고 여러 가지로 의미가 컸습니다.

-앙상블로 참여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점은?

때때로 본인을 지우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게 가장 힘듭니다. 무대 위에서 에너지 넘치고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지만 종종 각자의 개성이 중요하지 않고 하나로 보여야 되는 장면들도 있죠. 그럴 때 에너지를 표출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게 좀 힘들어요. 마치 아무것도 안 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요.

-이 작품을 통해 배운 점, 느낀 점도 있을까요?

절제의 미덕을 배웠어요. 배우는 무대 위에서 본인이 느끼는 것들을 분출하고 싶어 하잖아요. 하지만 책갈피는 무대 위에 계속 존재하지만 중립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간들이 많아요. 굳이 표현하려 하지 않아도 바라보고 들어주는 것도 충분할 수 있다는 걸 배웠죠.

ⓒ알앤디웍스 ⓒ알앤디웍스

-‘호프’ 이전에 ‘세종 1446’ ‘킹아더’ 등 다양한 작품들에 함께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고르자면?

‘킹아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희로애락이 다 있었던 작품 같아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공연이 멈춰 모두가 힘들기도 했었고, 안무의 강도가 상당히 높아 공연하는 내내 살이 쭉쭉 빠지기도 했어요. 온갖 영양제와 에너지 드링크가 함께해야만 했었죠. 하지만 힘든 만큼 성취감도 큰 작품이었고, 배우들끼리 사이도 너무 좋아서 공연이 끝날 때 너무 아쉬웠던 기억이 있어요.

-올해 5년차가 됐어요. 데뷔 당시와 지금, 김성현 배우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자존감이요. 그 당시에는 저 자신을 잘 몰랐고, 배우로서든 사람으로서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감도 많이 없었고 좌절도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내가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김성현이라는 배우의 색깔을 내기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건강한 자존감이 많이 생겼어요.

-배우로서 최근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다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배우가 되기 위한 길목에 군데군데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들이 많아지는 걸 느껴요. 그럴 때마다 어떤 게 최선의 선택일지도 항상 고민이고요. 저도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더 이상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맞는 선택들을 꼭 하고 싶은가 봐요. 말하다 보니 꼭 ‘호프’가 하는 대사와 비슷한 것 같네요(웃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서울로 막 올라왔을 때가 가장 막막하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글에 내던져진 기분이었어요. 아르바이트 하면서 오디션도 많이 봤지만 전부 다 떨어졌죠. 정말 버티기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믿을 건 저 자신이었어요. 나는 결국에는 될 사람이라는 믿음 하나였죠. 당장의 거대한 성과보다는 눈앞의 목표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며 스스로를 북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반드시 변화하는 게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이 순간들을 버티고, 대중들 앞에 섰을 때 어떤 배우로 불리고 싶을까요?

‘와, 연기 진짜 잘하는 배우다’라는 말이요. 하하.

-앞으로 또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지도 궁금해요. 꼭 해보고 싶은 작품, 혹은 캐릭터가 있나요?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작품을 좋아해요. 원작인 영화도 좋아하고 뮤지컬로 초연 됐을 때 보러 갔었는데 한동안 이 작품의 넘버만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제작실습으로 이 작품을 올리게 됐는데 그때 주인공인 인우 역할을 했어요. 연기적으로 너무 재미있었고 배우로서 충만하고 행복한 기분이었어요. 시간이 흘러서 프로 무대에서 인우를 꼭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했었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김성현 배우의 최종 목표도 들려주세요.

그게 어디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평생 연기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드리며 살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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