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이 이렇게 연출까지 잘 할줄은 몰랐어요!”
인터뷰가 끝난 뒤 일부 기자는 덕담이라며 장항준 감독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영화나 작품보다는 예능에서 웃는 얼굴로 시청자와 주로 만나왔던 장 감독의 재능을 어쩌면 ‘리바운드’로 처음 봤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라이터를 켜라’부터 SBS ‘싸인’, 영화 ‘기억의 밤’ 등을 거쳐온 장 감독은 대부분 작품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다만 필모그래피가 폭넓게 쌓이지 않았을 뿐이다. 제안은 많았지만, 남이 다 짜준 판에 끌려가, 굳이 끌리지 않는 이야기를 굳이 찍고 싶은 성정이 아니어서다. 예능에서는 온갖 음해와 이간질로 범벅하지만, 그의 살아온 삶은 진실함에 있다. ‘리바운드’ 역시 장 감독이 삶에서 느낀 통찰을 진실하게 전하는 영화다.
마음을 다한 덕일까, 재능이었던 것일까 ‘리바운드’의 연출은 상당히 매력있다. 선수들이 진짜 농구시합을 하듯 뛴다. 땀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롱테이크가 쭉 이어진다.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다. 스포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어설픈 폼도 하나도 없다. 선수처 다들 잘한다.
“이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에요. 농구는 정말 빨라요. 골 먹히고 공격하고 골 넣고 돌아오는 데 10초가 안 걸릴 때도 있어요. 잠깐 놓치면 못 봐요. 코트가 작으니까. 선수들은 몇 달 전부터 합숙을 했어요. 농구 코칭은 조상현 감독님이 했고요. 이들이 이렇게 잘 하는 걸 모두 담아내고 싶었어요. 합이 있거든요. ‘몇 경기 몇 번째 합’이라고 하면 선수들이 다 알아요. 틀리는 게 없어요. 카메라를 여러 대 두고 찍은 거죠”
그의 연출이 빛나는 대목은 용산고와 대결을 하기 직전, 선수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찍고 간 뒤 ‘강양현’(안재홍 분) 코치의 얼굴에서 멈추고, 점프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선수들이 가진 비장한 면모가 아무런 대사없이 장면으로만 느껴진다. 그렇게 슬로우가 슬며시 걸려 있다가 경기가 속행하면서는 빠르게 달린다. 영화적 화법이 무엇인지 알 게 하는 대목이다.
“경기는 계속 벌어지는 데 그 감정을 대사로 하지 않는 게 제일 좋아요. 말이 필요 없이 선수들의 얼굴만으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들의 의지를요. 얼마나 갈구했는지, 얼마나 농구를 좋아했는지, 얼마나 이기고 싶은지를요”
전반전이 끝난 뒤 강양현 코치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지친 선수들에게 힘이 되주고 싶은 코치의 진정성이 담겨 있다. 요지는 ‘가짜 실패’를 이겨내고 극복하자는 것이다. 농구에 질 수 있어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것. 진다 한들 농구에서 진 것 뿐이고,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강양현 코치에게 물어봤죠. 무슨 얘기 했었냐고. 기억이 안 난데요. 청년 강양현도 기억이 없어요. 무슨 얘기를 할까 싶었죠.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죠. 교훈적으로 느끼지 않게 담백하게 했어요”
언제나 재밌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장항준 감독은 영화도 유쾌하다. 다만 노골적으로 코미디를 보여주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상황에서 그려진다. 꽤 고급 코미디가 ‘리바운드’에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강양현과 선수들이 지나가는 길에 어떤 아이가 ‘아저씨 어디가요?’라고 물어보면, 한참 있다 강양현이 “아저씨 아니다”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장면이다. 큰 품 안 들이고 관객을 미치게 하는 장면이다.
“노골적인 코미디보다는 자연스러운 걸 원했어요. 사실 안재홍 배우가 그런 면에서는 탑이에요. 아무리 살을 빼고 멋있는 척해도 그가 가진 독보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웃기려고 안 해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는 거죠. 저도 사실 그런 코미디를 선호해요. 의도를 읽히지 않는 유머요. 코미디든 이야기든, 메시지든 의도를 읽히면 재미가 없어지거든요”
그러면서 코미디 연출의 노하우를 전해줬다. 모두가 합을 짜지 않는 것이다.
“일부로 합을 안 짰어요. 그리고 우리끼리 알고 있으면 재미가 없어요. 핵심 배우가 애드리브가 있으면, 슛 들어가기 전에 저한테만 알려달라고 해요. 저는 적당히 다른 배우들에겐 에둘러 디렉션을 하죠. 그러면 진짜 리얼한 상황이 나와요. 진짜 웃음이 거기서 터져요. 배우도 사람인지라 알면 뻔해지는 게 있어요”
극 중 선수들은 학교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몸으로 부딪혀 성취를 얻어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의아한 포인트가 있다. 장 감독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김진수와 장현성이다. 김진수는 교감 선생님으로, 장현성은 용산고 코치로 나온다. 김진수의 경우 교감 선생님 역할과 부합하고, 필요하게 보인다. 반대로 장현성은 농구 코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젠틀하다. 실제 용산고 코치와 싱크로율도 닮아 있지 않다.
“현성이는 사실 제가 도움을 받은 거예요. 용산고는 싱크를 맞추기 어려웠어요. 애먹었던 캐스팅이에요. 연기도 잘하고 관록이 있는 프로페셔널한 코치, 승부욕과 자부심도 있어야 하면서 매너도 필요했죠. 그런 걸 소화할 배우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어요. 대사나 분량은 짧은데 10회차나 나와야 해요. 사실 병풍인데, 너무 많이 촬영을 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현성이한테 부탁한 거예요. 걔 성격이 무던해요. 흔쾌히 해줬죠.”
‘신이 내린 꿀팔자’로 평가받는 장 감독은 현재를 즐기고 있다. 온갖 예능에서 홍보하는 과정이 즐겁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장 감독은 예능에서 더 많이 알려졌지만, 그의 속마음은 영화에만 매달리고 싶어 한다. 영화 감독으로 촬영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심지어 연출까지 뛰어났다. 평탄한 인생에, 돈 많이 버는 아내와 화목한 가정을 뒀으며, 영화계 최고의 인사이더인 그가 영화까지 잘 만드는 건 반칙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법 하다.
“이제 장항준의 시대가 오나요? 하하. 저도 사실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에요. ‘라이터를 켜라’ 때는 정신이 없었고, 만족스럽지도 않았어요. ‘싸인’ 때는 즐기지 못했어요. 워낙 생방으로 제작되는 상황이어서요. 이번에는 잘 즐기고 있어요”
장 감독은 영화 ‘오픈 더 도어’ 개봉도 준비하고 있고,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 중이다. 예능과 영화 어떤 곳에서 그를 더 많이 볼 수 있을까. 답은 영화였다.
“진짜 신나고 미치는 건 영화예요. 강 코치의 대사에는 제가 많이 투영돼 있어요. 저는 60대까지 현장에 있고 싶어요. 예능은 사실 싫어요. 웃기는 거에 너무 소비되는 거 같아요. 똑같은 질문도 너무 많고. 팟캐스트는 또 얼마나 힘든데요. 만드는 건 정말 힘들어요. 예능은 보는 게 재밌어요. 하는 건 전쟁이에요. 같은 전쟁이어도 영화가 좋아요. 영화를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사진=바른손이엔티
함상범 기자 kchsb@hanryu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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