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50m 줄자로 사흘간 산성 둘레를 실측하고 '방호별감'의 명문 기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계룡산성은 지금까지 그저 큰 돌무더기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던 중 2008년 초파일이었던 5월 12일 연천봉 등운암에서 내려오는 길에 글씨가 새겨진 깨진 기와를 발견하는데 '계룡산성 방호별감(鷄龍山 防護別監)'이라고 쓰여 있었다.
(재)국원문화재연구원 김호준 부원장은 계룡산성이 고려시대에 축성돼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후대에 다시 내성을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후기까지 사용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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