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작은 오아시스, 르메르의 집

한남동 작은 오아시스, 르메르의 집

바자 2024-04-27 08:00:00 신고




하퍼스 바자 파리 다음으로 서울에 두 번째 플래그십을 오픈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중에서도 한남동의 구옥을 택한 이유는?
크리스토프 르메르 한국은 브랜드 초기부터 큰 성공을 거둔 시장 중 하나다. 이제는 브랜드의 세계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일 시기라고 판단했다.
사라 린 트란 우리의 취향으로 직접 고르고 정교하게 큐레이팅한 환경 안에서 르메르를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크리스토프 르메르 처음부터 ‘집’이라는 공간을 찾았다.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다. 집은 우리 디자인의 기반이 되는 일상생활을 담은 장소이자 옷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공간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가정적이고 친밀한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했다.
사라 린 트란 이 매장에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찾아와야 하는 숨겨진 곳에 위치한 점이 이곳을 택한 이유다.
하퍼스 바자 사라 당신은 “나에게 옷은 어떤 의미에서 작은 집과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집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하다.
사라 린 트란 집을 꾸미는 타입은 아니다. 빛이 잘 들고, 균형이 잘 잡히고 수납 공간만 많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가 요리다. 따라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은 주방이다. 요리는 컬러, 형태, 맛을 조합하는 일이고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패션 디자인과 닮아 있다. 집과 공간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이렇게나 단순하다. 우리의 옷처럼 장식적이지 않지만 매우 유연하고, 본질적인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퍼스 바자 파리와 한남, 두 플래그십 스토어의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크리스토프 르메르 베즈마트(Bejmat) 타일이나 아바카(Abaca) 카펫, 퀼팅 기법으로 만든 커튼 등 공통된 디자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의 지역성, 이 장소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임태희 소장과의 협업이 매우 즐거웠다. 그녀는 공간 디자인과 한국 전통 공예에 정통한 전문가다. 한남 매장이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현지 환경에 완전히 녹아들길 바랐고, ‘다양성 속의 일관성(Coherence in Diversity)’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었다.
하퍼스 바자 LTH스튜디오 임태희 소장과의 작업 과정은 어땠나?
사라 린 트란 임태희 소장은 르메르의 오랜 고객 중 하나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 하고자 하는 일을 오래전부터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간 그녀가 디자인한 공간을 보면 건축 소재와 빛이 차분하게 조화되어 있는데, 이런 감각이 우리와 잘 맞았다. 그녀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건축에 다가가고, 디테일과 마감에 대단한 공을 들인다. 이러한 접근법은 우리 디자인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단순하고 에센셜한 디자인을 추구하기에 만듦새가 디자인을 결정한다. 올바른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사실상 디테일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내내 임태희 소장은 사소한 마감도 꼼꼼하게 살펴보며 집요함을 발휘했다. 그리고 한지, 누비, 다양한 옻칠 기법 등 전통 공예와 재료를 활용해 한국적인 미감을 더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로 누비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세한도’ 커튼이 아주 마음에 든다. 추운 겨울에도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 같은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는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을 품고 있다. 그녀와 나눈 모든 대화가 영감을 주었다.
하퍼스 바자 파리와 서울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두고 진행한 프로젝트다. 한남 스토어에 처음 방문했을 때 놀라웠던 부분이 있나?
크리스토프 르메르 1층 남성복 공간에 놓인 침대형 소파를 꼽을 수 있다. 내부 가구 디자인에 대해서 논의할 당시 임태희 소장은 침대 디자인을 직접 하고 싶다며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이 가구를 제안했다. 깜짝 선물 같았다. 실제로 공간을 방문했을 때 이 침대가 주변 요소와 만들어내는 어떤 대조, 부드럽고 아늑한 터치에 감탄했다.
사라 린 트란 이 침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컬러가 한국의 승복과 같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딘가 신비로움을 풍기는 요소를 좋아하는데 이 회색이 그렇다. 공간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하퍼스 바자 한남 스토어에 들어섰을 때 느낀 점을 ‘따뜻한 환영’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곳을 가장 잘 설명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크리스토프 르메르 그렇게 느꼈다니 매우 기쁘다.(웃음) 우리가 매장을 통해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바다. 늘 정교함과 세련됨, 인간적인 따뜻함이 공존하는 옷과 공간을 만들고 싶다.
사라 린 트란 ‘Slow down’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모두 급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무언가를 더 알고, 실행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이곳에서만큼은 광적인 시간의 속도에서 벗어나 느긋해지는 기분을 느끼길 바란다. 또한 스스로에게 원하는 모습, 느끼고 싶은 기분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공간이 자기 자신과 조우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하퍼스 바자 단연 눈에 띄는 공간은 정원이다. 활용 계획이 궁금하다.
크리스토프 르메르 정원은 매장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사하는 것은 물론,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정원이 좀 더 야생적으로 변모하길 바란다.
사라 린 트란 사람들을 모으기에 정원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많은 모임이나 강연을 주최하고, 로컬 커뮤니티와 교류하는 장소로 만들어가고 싶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하퍼스 바자 온라인 쇼핑이 대세를 이루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이 공간을 꼭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를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사람들이 이곳에서 르메르의 어떤 점에 주목했으면 하나?
크리스토프 르메르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브랜드 가치와 미학을 표현하는 최적의 환경을 고민함과 동시에 우리의 옷이 어떤 문화적 맥락 혹은 예술적 영감 안에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물론 현재의 패션은 온라인 중심으로 변모해가고 있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방식 또한 크게 변화했다. 그럼에도 물리적인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공간이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를 조성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르메르의 작은 집’이 있기를 바란다. 현재 한남 매장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향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르메르 간의 만남의 장, 즉 ‘살아 있는 장소’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우리의 호기심과 흥미를 세상과 공유하고자 한다.
하퍼스 바자 이번 전시를 소개해달라.
사라 린 트란 전시에 대해서는 몇 시간도 얘기할 수 있지만 짧게 해보겠다.(웃음) 작년에 베트남을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옷을 입는 방식, 특히 스쿠터 위에서 패션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관찰하면서 매우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그들에게 옷은 멋을 냄과 동시에 뜨거운 햇빛과 비, 먼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기도하다. «A Sense of Place, A Sense of Time, A Sense of Tune» 전시는 핀란드의 사진가 오스마 하빌라티가 베트남을 두 차례 여행하며, 2023과 2024년 봄/여름 컬렉션을 입은 시민들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영상을 모은 것이다. 패션 화보가 아닌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장면을 포착한 것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전시 또한 사진과 옷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싶어 서로 다른 크기의 프레임이 끊임없이 중첩되도록 구성했다. 관객은 행인 혹은 사진가가 된 것처럼 이미지를 좇아 걷고, 다양한 군상과 그들의 실루엣이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가 스쳐지나가듯 곧 사라진다.
하퍼스 바자 한국과 르메르를 연결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크리스토프 르메르 여전히 그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오히려 당신이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한국은 고요하고 심플한 것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것 같다. 미학적인 연결 점이 분명히 있다. ‘소박함’ ‘거칠거나 기초적인’의 뜻을 갖고 있는 ‘rudimentaire’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LTH 스튜디오의 건축가이자 공간 디자이너 임태희 소장과 나눈 인터뷰.

플래그십 스토어는 현지 고객에게 브랜드를 온전히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공간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 매장 현관을 들어오면 신발장이 하나 있는데 음료 보관대 역할을 한다. 이 신발장만큼은 우리가 디자인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주택에 녹아 있는 고유의 문화에 주목한 것이다. 이렇듯 크리스토프와 사라 린은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존경을 보였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한국 문화의 안내자이자 르메르다운 한국적 표현을 고민하는 것이 나의 큰 역할이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따뜻함과 겸손함이다. 골목부터 담을 따라 걷다 매장 대문에 닿고, 그 문을 통해 들어온 고객을 어떻게 환영할 것인지, 공간에 들어오고 난 후에 어떤 행동들이 보여질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공간을 만들어갔다. 매장 직원들이 어떤 태도로 손님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졌다. 르메르 한남 플래그십은 매장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과 태도로 공간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에 녹여진 한국적인 이야기를 매장 직원들이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브랜드의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존경심이 돋보인다.
작업하는 데 있어서 르메르를 어떻게 탐구하고 접근했나? 브랜드와 일을 할 때에는 매우 원초적이고 무식한 방법을 선호한다. 마치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르메르와의 작업은 운 좋게도 공통된 가치관이 많았다. 원래부터 르메르를 좋아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더 많이 사용하고 착용하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거창하게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 ‘본질에 충실할 것’. 기교나 멋을 좇는 것이 아니라 기본을 다져가는 것이고,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것 말이다.
어떤 한국적인 요소가 담겨 있나? 한국 문화 속 기본적인 소재와 장인들의 솜씨로 이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특히 한복에 담긴 우리나라 고유의 방식을 이용해 공간에 옷을 입힌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솜을 넣은 누비 커튼은 장인들에게 부탁해 손으로 한땀 한땀 완성했다. 가구 위 러너도 깨끼 바느질 장인의 손길이 닿아 있다. 굳이 알아봐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고운 바느질이라고 먼저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그동안 한국적인 것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해왔고 나름대로의 표현도 해왔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한국적인 것이 굳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그 생각과 태도만큼은 모두가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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