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아동 발굴, 망지일목(網之一目)의 관점에서 돌아보자

가족돌봄아동 발굴, 망지일목(網之一目)의 관점에서 돌아보자

베이비뉴스 2024-04-22 07:45:00 신고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고령,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보살피는 아동·청소년은 성장을 위한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족을 돌보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매주 월요일 이에 관한 아이들과 복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말

좌현숙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초록우산 좌현숙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초록우산

망지일목(網之一目), ‘수 많은 그물코 중의 하나’를 뜻하는 이 말은 중국 전한(前漢)시대 회남왕 유안(劉安)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 <회남자> (淮南子)라는 책에 나온 새와 그물의 비유이다. 어떤 사람이 새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고 새가 날아 오기를 한참 기다렸다. 마침내 새가 날아와 그물에 걸렸다. 그런데 많고 많은 그물 중 한 코에 새가 걸려든 것을 보고 ‘새를 잡는데는 '망지일목(網之一目)', 즉 그물의 한 코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물 한 코만으로 새를 잡을 수 있을까? 수많은 코가 서로 연결되어 넓은 망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21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치료비와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해 방치, 사망에 이르게 한 한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장애나 질병 등이 있는 가족 성원을 돌보는 아동 및 청소년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국가적 차원의 관심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전국 13세 이상 34세 이하 약 4만 4000여명에 대한 「2022년 가족돌봄청년실태조사」에 나섰고 810명의 아이들이 1주 평균 21.6시간 가족을 돌보며, 돌봄기간은 평균 46.1개월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3년 서울시에서도 가족돌봄청(소)년 실태조사를 진행해 응답자 2,988명 중 900명을 가족돌봄청(소)년으로 추정하고 이들의 외부 지원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광주 서구, 서울 서대문구, 인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가족돌봄아동과 청(소)년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나아가 일상생활돌봄서비스와 교육비, 간병비, 의료비, 생계비 지원 등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지역 차원의 지원 사업도 다수 실시되었다.

이처럼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조사 실시, 자치법규 제정, 서비스 제공 등 여러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실상 파악조차 어려운 현장 상황을 지적하고,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짚고자 한다. 우선, 그동안 이뤄진 많은 실태조사, 면담 조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을 발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족돌봄 상황의 아동, 청(소)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하고자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또한, 당사자 입장에서 정부나 지자체의 발굴을 위한 각종 제도적 노력이나 지원 서비스가 충분하게 느껴졌을지도 의문이다. 실제 가족을 돌보는 아이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고, 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면 좀 더 많은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간의 아동의 가족돌봄 문제에 대한 발굴과 지원 노력이 무의미했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많은 아동과 가족들이 아동보호전문기관, 가정위탁지원센터, 학교, 행정복지센터, 복지관 등 현장 실무자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발굴되어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의 특수한 상황들을 좀 더 고려해 봐야 한다. 이들은 처한 가족돌봄 상황에 대한 자기 인식을 어려워 하며,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물론 서비스 제공자들에게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를 조심스러워 한다. 또한, 사회서비스 대상이 되었을 때 집에서 나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 하며, 상의할 만한 사회적 이웃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즉, 한두가지 제도나 발굴 노력만으로 이런 복잡한 상황에 놓인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만큼, 망지일목(網之一目) 관점에서 넓게 보고 크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에 대해 단순히 효자, 효녀, 철이 일찍 든 착한 아이의 시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을 하는지, 왜 그러한 도움이 필요한지까지 연결해서 아동을, 가족을, 가정을, 상황을 맥락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 일은 현장에 있는 실무자, 관련 분야의 전문가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듯,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족돌봄아동 및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상황을 자각하고 객관화하기 어려운 아동은 특히나 더 눈에 띄지 않는 취약한 집단이다.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 의한 발굴이 더 필요하고 실효적일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너와 나는 하나의 그물코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코가 모여 너른 그물망으로 엮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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