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감독이 만든 여성 서사, 이미랑 인터뷰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 〈딸에 대하여〉 이미랑  
김혜진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딸에 대하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오민애)와 그녀의 딸(임세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하윤경)이 한 지붕 아래서 지내는 이야기다. 김혜진 작가의 화두를 이어받은 이미랑 감독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이 가족을 통해 고민한다. 잠시도 쉴 수 없는 엄마의 지친 삶은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바라보며 서서히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한다. 감독의 말대로 이 작품은 ‘엄마, 딸 그리고 우리 모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고독한 인간들의 영혼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고자 한다.
 

Q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할 무렵에 소설을 읽었던 것 같아요. 소설 속의 엄마는 남의 일에 관심을 쏟고, 딸 그린도 남의 일에 관여를 합니다. 엄마가 딸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관점이 좋아 보였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조금씩 느리게 마음을 여는 과정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여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타인을 이해하는 데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네요. 아무래도 엄마의 마음이 많이 와닿았어요. 엄마가 혼자 늙어가는 삶에 대해 담담하게 고백하는 소설이니까요. 제목과 달리 ‘딸에 대하여’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엄마에 대하여, 딸(그린)에 대하여, 레인에 대하여, 우리 모두에 대하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라면 제가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엄마의 외로움, 혼자 늙어가는 두려움, 그런 마음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Q 주인공의 독백이 많은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일 텐데요.

A 물론 1인칭 화자 엄마의 내면 독백이 많아서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한 소설은 아니었죠. 서사가 뚜렷한 작품은 아니라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제 눈에는 나름 핵심적인 사건이 잘 보여서 그걸 구조화하면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소설이 장소의 내면적 독백이라면 영화는 액션의 매체니까 눈에 보이는 사건들을 구조화했죠. 충실하게 각색을 하다 보니 시나리오는 꽤 길게 나왔지만 영화로 만든 후에 편집하면서 많은 부분을 덜어냈습니다. 엄마는 요양원의 어르신 제희를 홀로 돌보면서 딸의 삶을 걱정합니다. 자신의 가까운 미래이자 딸의 먼 미래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더니 각색의 큰 어려움은 없었죠.

Q 소설과 영화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문학적 가치로서 의미가 깊은 소설이지만, 영화적 가치로 바꾸었을 때는 되레 퇴색되기 쉬울 수 있습니다. 영화적 표현으로 할 때는 말이 없는 엄마가 낫다고 판단했어요. 영화는 타인이 있을 때 액션이 나오고 정서가 발휘되는 매체죠. 엄마를 중심으로 두고 요양원의 캐릭터들인 권 과장, 제희 등을 붙였습니다. 거기서 발산되는 액션들이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구조화한 거죠. 소설이 1인칭 화자의 시점이라면 영화는 액션의 매체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들을 엄마에게 어떻게 붙일지 관건이었고 구조적으로 쌓아나가는 데 굉장히 공을 들였습니다.

Q 엄마 역을 오민애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독립영화에서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입니다.

A 오민애 배우는 독립 단편영화의 대모 같은 분이죠. 덕분에 영화 속 엄마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더 한 것 같아요. 오 선배님은 그 나이대 분들보다 여성성이 남아있는 분입니다. 워낙 여성성이 잘 유지된 분이라서 여성성이 부각되는 엄마 캐릭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엄마 캐릭터는 고집스러우면서도 미련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죠. 사실 영화 속 엄마 캐릭터는 오민애 배우와는 정반대입니다. 오 선배님은 열려있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스펀지 같은 분입니다. 반면 엄마 캐릭터는 돌 같은 사람이죠. 답답하고 폐쇄적인 엄마를 연기하면서 힘들어 하셨어요.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어갈까 함께 많이 고민했습니다. 분명한 건, 오민애 배우의 필모그래피에는 없는 엄마였다는 사실이죠. 그런 의미에서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확신이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선배님은 발산하고 소리치는 사람인데 엄마 캐릭터는 먹는 사람이죠. 그래서 연기하시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을 텐데, 제가 촬영하면서 계속 눌러야 한다고 말했죠. 선배님께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 테니 믿고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Q 영화 속 엄마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쪽잠’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영화 내내 엄마가 편히 자질 못하죠. 혼자 사는 엄마는 안방에서 생활을 안 하고 거실에서 생활합니다. 엄마는 딸 그린이 레인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간 후 그들의 목소리 들으면서 편히 잠을 자지 못하죠. 그렇게 계속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다가 장례식장 휴게실에서 처음으로 편히 잠이 듭니다. 자신의 작은 몸도 눕히지 못할 정도로 불편하게 살다가 찾아온 단 한순간의 휴식. 엄마는 미련해 보이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닌 사람이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사는 줏대 있는 사람입니다.

Q 일하는 여성, 노년기 여성의 노동 문제를 면밀하게 다룹니다.

A 혼자 사는 여성은 일을 하지 않으면 일상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집 한 채가 전부인 엄마는 일을 계속 해야 하죠. 그 나이대 여성의 일은 정해져 있어요.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보편적입니다. 우리나라도 돌봄노동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죠. 우리도 돌봄을 받아야 하고 돌봄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될 겁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취재한 것은 돌봄여성이었습니다. 돌봄노동을 대부분 50~60대 여성들이 하고 있어요. 가진 게 육체뿐인 여성이 할 수 있는 일, 평생 애들을 키우고 돌보고 나서는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이 바로 윗세대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죠. 우리 엄마와 저의 일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돌봄노동을 다루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편이 부재하고 자식에게 기댈 수 없는 엄마의 삶, 이런 삶의 반경. 저의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Q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의 신념과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A 영화 속 인물, 엄마, 제희, 그린, 레인 네 명 모두 뚜렷하게 자신의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타인이 보면 미련해 보이는 신념일 수 있겠죠.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전혀 이득이 될 게 없는, 무목적성! 무이익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 신념을 가진 여성들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쓴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지만 궁극적으로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 삶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보물 같은 사람들입니다. 네 명 모두 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념과 고집이 있지만 대단히 개인적인 고민으로 타인을 투영하기 때문에 다들 설득력이 있죠. 관객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Q 부모와 자식 관계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과 영화는 인간의 소통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A 소통을 위해선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겠죠. 소설 〈딸에 대하여〉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위한 마음으로 나가고자 김혜진 작가, 본인이 애를 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 때문에 영화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소설을 쓴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 말을 뒷받침하는 소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작가의 말에 울림이 있었고 작가의 마음이 제가 독자로서 소설을 읽었을 때의 마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진짜 가능한 일인지,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포기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거겠죠. 그런 점에서 딸을 이해하려는 작품 속 엄마는 대단하고 훌륭합니다. 다들 타인의 삶에 영향을 받거나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타인에게 관심조차 없고 철저히 고독한 1인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외로움을 극도로 느낍니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낀다고 해서 남에게 다가가거나 마음을 열지 않는단 말이죠. 지금의 폐쇄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영화를 통해 이런 사람들(주인공들)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인간이 고독한 섬이라면 예술은 이 섬에 사슬을 연결하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A 맞아요. 김혜진 작가도 〈딸에 대하여〉를 고독하게 썼을 겁니다. 그 고독한 마음을 독자인 나에게 사슬로 연결해주었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만든 저는 다시 관객에게 사슬을 연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관객들의 반응이 제일 궁금합니다.

Q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 영화의 엔딩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설보다 긍정적인 결말을 제시하고 싶었나요?

A 소설은 ‘나는 모르겠다, 너희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라는 식으로 끝나지만 영화에서는 엄마가 담담하게 레인(딸의 연인)에게 고백을 합니다. 그 말이 결국 나(자신)를 통해서 딸 그린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레인까지 이해해보겠다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례식 이후 소설에 없는 엔딩을 넣은 것은, 엄마가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내면적으로 자기고백을 하기 때문에 정서가 이해가 가고 닫혀있지만 열리고자 노력하려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습니다. 반면 영화에서 엄마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고 딸에게 말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엔딩에서 나를 통해 너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더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조금은 열린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죠.  

 

요즘 같은 시대에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쓴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지만 궁극적으로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 삶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보물 같은 사람들입니다. 네 명 모두 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리랜스 에디터/ 전종혁 사진/ 이우정(인물)，ⓒ 부산국제영화제(영화 스틸)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